등록 : 2005.11.10 17:33
수정 : 2005.11.12 00:28
역사로 보는 한주
1983년 11월17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EZLN)이 결성됐다. 그들이 멕시코의 가장 가난한 원주민 거주지역 치아파스에서 일어나 세상을 놀라게 만든 것은 1994년 정초, 미국 주도 아래 캐나다, 멕시코가 가담한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 발효 다음날부터 시작된 그들의 반정부 반세계화 무장봉기였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데는 예전에 그곳으로 들어간 학생운동세력과 가톨릭 그룹 등 여러 운동세력들의 10여년에 걸친 피땀이 서렸고, 그들이 그 조직을 결성하기 훨씬 전부터도 그런 저항운동의 전통은 이어져 왔다. 그 연원은 1492년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고 유럽의 제국주의적 약탈이 원주민 사회를 급격히 유린·파괴하기 시작한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이 조직의 이름을 멕시코 혁명 영웅 에밀리오 사파타(1879-1919)에서 따오고, 스스로를 사파타의 이념적 후예이자 500년에 걸친 원주민 반제국주의 저항운동의 상속자로 자처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약 2주간에 걸친 94년 초의 무장봉기 뒤 군사력 및 테러를 동원한 전면대결방식을 버리고 언론매체를 활용한 평화적인 선전전에 주력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2000년 72년만에 선거로 정권교체를 이룬 비센테 폭스 정권 역시 직접 진압을 피하는 저강도전쟁 방식을 택하고 있다. 2001년 멕시코 시티로의 사파티스타 비무장 대행진과 대표들의 의회 토론, 대학 방문 등은 그런 변화를 상징한다. 이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부사령관 마르코스는 조직과 함께 시대의 총아가 됐다. 대변인 역할도 맡고 있는, 복면차림에 파이프를 문 중년 나이의 수수께끼 사나이 마르코스는 아직도 그 정체가 불분명하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트로츠키스트, 아나키스트, 사회주의 등 갖가지 이념지형의 잣대를 들이대며 그들을 평가하려드는 전세계 좌파 그룹들에게도 매력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화, 신자유주의 전령사인 북미자유무역지대, 거기에 편입된 국내경제체제 등 오늘날 지구상의 주류 흐름에 반대하면서 주민 자치를 핵심가치로 삼고 있는 그들은 여전히 독특하다. 위성전화·인터넷 등 첨단기술들을 적극 활용해 멕시코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농촌뿐만 아니라 도시민들로부터도 광범한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다. ‘최초의 포스트 모던 혁명’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재 치아파스 지역엔 독립적인 32개 사파티스타 반군 자치공동체가 자리잡고 있다. 23명의 사령관과 부사령관 1명으로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그들이 주력하는 것은 원주민 빈곤문제 해결이다. 아울러 새로운 정치문화 수립을 위한 개헌운동을 벌이면서 노동자와 농민, 학생, 교사들을 묶어냄으로써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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