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11.10 18:31 수정 : 2005.11.12 00:29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연말이 다가오면서 한해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올해 혁혁한 성과를 낸 책이나 출판사를 꼽아보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나 역시 책을 추천해달라는 전화를 이미 여러 통 받았다. 하지만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그런 물음에 답할 책을 별로 찾지 못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한국생활사박물관>(사계절)이라는 걸출한 출판물이 완간되어 모든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나는 책의 1·2권이 출간된 2000년의 연말, 한 신문에 기고한 출판계를 결산하는 칼럼에 “문자와 영상이미지가 상생하는 종합예술로서의 책을 지향하는 <한국생활사박물관>과 같은 책은 촉각에 대한 주목과 발견을 통해 컴퓨터가 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이 찾아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썼다.

2004년 초에는 <한국생활사박물관>의 아트디렉터인 김영철씨에게 ‘역사물 논픽션의 이미지 활용법’에 대한 글을 청탁했다. 그리고 그 글을 한가지 테마로 구성되는 출판전문잡지 <북페뎀>의 ‘논픽션’ 편에 실었다. 마침 그해 4월에 열린 도쿄도서전에서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을 만나게 되어 그 책을 드렸다. 책을 훑어보던 스기우라 선생은 김영철씨의 글에 사용된 도판을 보시더니 도판만 보아도 참 좋은 책으로 보인다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 권만이라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사계절에 전화해 한 질을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 10월9일과 10일 파주 출판도시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 ‘동아시아 책의 교류 2005 : 동아시아 책의 현재와 미래’에 참석차 내한한 스기우라 선생은 한 자리에서 <한국생활사박물관>을 일일이 넘겨가며 그 책의 탁월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중국인 참석자 뤼징런은 중국 출판 100년을 슬라이드로 보여준 다음 중국출판이 지난 20년 동안 상당한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 <한국생활사박물관> 같은 책은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이 책의 우수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그 책의 아트디렉터인 김영철씨가 최근에 디자인한 책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전2권, 전국역사교사모임, 휴머니스트)다. 이 책에는 이미 전작들을 만들면서 정립된 그의 디자인 철학이 생생하게 살아 있어 책을 넘겨보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 출판계는 이런 책들을 펴내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 출판시장은 죽어라고 ‘싼’ 김치만 요구하는 수입업자 때문에 납이나 기생충이 검출돼 난리가 난 김치파동과 닮아 있다. 인터넷서점들은 책의 입고율을 심하게 낮추고 있다. 게다가 경품, 쿠폰, 광고 등 인터넷서점이 요구하는 조건을 모두 들어주면 출판사는 책을 팔아봐야 적자다. 실제로는 출판사들이 죽을지 뻔히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낮춰주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다보니 책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지고 있으며, 출판시장에서 다양성과 창의성과 혁신성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한 해를 대표하는 출판물을 뽑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판계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제안한 도서정가제를 위한 공동 대책위의 구성마저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출판진흥위원회의 설립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진흥위는 절실하다. 하지만 그 전에 자구노력부터 함은 어떨지.



광고

관련정보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