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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18:48 수정 : 2005.11.12 00:30

공희정/스카이라이프 커뮤니케이션 팀장

서지학자 이종학 선생이 사재 털어 갈무리한 1900년대초 일상 391점 디카로 찍은 ‘2005년’도 낯선 과거가 되겠지

나는 이렇게 읽었다/글 노형석·사진자료 이종학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제목부터 매혹적이지 않은가. 1920년대 서울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경성상가지도를 준다는 광고 문구에 마음이 동(動)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한 세대만 지나면 기억속으로 사라져버릴 우리의 역사. 그 시간의 아련한 추억은 빛바랜 사진 391점으로 생생히 기억되고 있었다.

사진 때문이었을까. 난 책을 읽고 한동안 환상에 시달렸다. 시내 곳곳에서 하얀 도포자락 휘날리는 갓 쓴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고, 신작로를 따라 수줍은 듯 개량 한복 곱게 차려입고 나들이 나선 신여성을 보기도 했다. 맥고모자의 백구두 신사는 모던의 향취를 흠뻑 즐기는 듯도 했다. 어디 그 뿐인가. 지금은 사라진 전차가 서울 시내를 달리고, 화려한 일본어 간판들로 치장한 혼마찌 (本町) 충무로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서울역에는 수하물들을 가마니째 잔뜩싣고 달려온 전차가 보이고, 아현동 고개 넘어 중림동에는 정겹게 이어진 초가집이 가득했다. 근대의 시간속으로 서둘러 들어가던 1900년대 초 우리 모습이 내 눈에는 그대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 얼마나 흥미로운 경험인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의 모습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재미, 그것이 역사책을 읽는 즐거움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일제시대, 고급 휴양지였던 해운대 골프장 사진이 나온다. 까까머리 캐디소년이 둘러맨 골프 가방과 그 옆에서 홀인원의 꿈을 골프공에 실어 날리는 사람들. 어딘지 촌스러워보이지만, 그들이야 말로 모던 한량이였을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점점 무거워짐을 거둬낼 수 없다. ‘세상만물의 기운과 이치의 얽힘’에 따라서 이뤄진 근대화가 아니라 어떤 집단의 필요에 의해 획일적으로 이뤄진 근대화의 모습은 슬플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웃지 않는다. 찍히기만해도 혼을 앗아간다는 두려움 때문에 카메라 앞에서 굳어버려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효과적인 식민통치를 위해 사진을 찍어댄 일본인들에 대한 말없는 저항 때문인지, 사진에 등장한 우리 선조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무표정하기만 했다.

비록 전기가 들어와 밤이 낮처럼 밝아지고, 소나 말대신 쌩쌩 달리는 자동차와 전차가 공간 이동의 속도를 바꿔놓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계 제패를 꿈꾸는 일본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기에 우린 행복하지 않았다. 외세의 군사기지, 수탈의 교두보가 될 수 밖에 없었던 1900년대의 한반도는 그렇게 씻을 수 없는 우울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 책의 진귀한 사진 자료는 독도박물관 초대관장을 지낸 이종학씨가 사재를 털어 모은 자료라고 한다. 어쩌면 낡은 사진이라고 그냥 버렸을 수도 있는 것들이 추억여행의 소중한 티켓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종학씨는 알고 있었나 보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상화된 요즘, 나는 디카를 꼭 갖고 다닌다. 길을 걷다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마음에 와 닿는 2005년의 일상을 찍는다. 언젠가 이 사진들이 오늘을 살지 못한 세대들에게 과거를 둘러보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복원된 청계천변을 걷다보면 추억여행을 나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쉼없이 달려온 근대화의 시간속에서 묵묵히 모던의 유혹을 감내해온 그분들의 눈물이 바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아닐까. 난 오늘도 일상의 삶이 나태해질 때마다 <모던의 유혹, 모던의 눈물> (글 노형석, 사진 자료 이종학. 생각의 나무 펴냄)속에 아로새겨져 있는 지난 시간속 풍경과 조용히 삶을 이야기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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