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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0 18:58 수정 : 2005.11.12 00:31

안경의 에로티시즘
프랑크 에브라르 지음.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펴냄. 1만1000원

에로티시즘의 눈으로 본 안경이야기 “코위에 얹힌 안경은 남성 성기의 메타포” “침실서 안경벗기는 건 애무 위한 암호” 보기와 감추기, 명료함과 흐릿함 넘나드는 안경의 매력 수많은 작품속에서 끄집어내

오쟁이진 남자. 끼면 나신이 보인다는 안경을 5천 프랑에 샀다. 길거리에서 관능적인 몸매를 실컷 훔쳐보았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친구와 자기 아내가 있었다. 물론 나체로 보였다. 안경을 벗었는데 둘은 여전히 옷을 벗은 채였다. “빌어먹을. 5천 프랑이나 준 게 벌써 고장이야.”

<안경의 에로티시즘>(마음산책 펴냄)에 나오는 우스개다.

안경은 시력 보정기구로서, 렌즈와 안경테 그리고 코안장(또는 코받침)으로 구성돼 있다. 기본적으로 근시, 원시, 난시 등 눈이 나쁜 사람이 끼고 노안이 되어 일종의 틀니처럼 끼기도 한다.

애초 안경은 안 쓰는 것이 좋았다. 눈이 비정상이라는 표지이고 여성의 경우 ‘네 눈’은 미적인 핸디캡으로 인식됐다.

단순 쓰임새 넘어 사회적 지위 상징

그러나 안경은 단순한 쓰임새를 뛰어넘어 사회적인 지위를 드러내는 장치로 진화했다. 생김새도 다양해지고 변종도 생겨났다. 대표적으로 선글라스는 으레 글래머 모델이 썼다(낀 게 아니다). 하여튼 안경은 하나의 기표가 되어 예술성을 부여하는 대상이 되었다. 각종 사진과 광고, 영화의 장치가 되고 각종 문학작품의 소도구가 되었다.


이 책은 소설, 영화, 연극에 소도구로 등장하는 안경에 얽힌 ‘핑크색’ 이야기다. 지은이는 온갖 듣도보도 못한 작품 가운데 야릇한 안경 대목을 뽑아서 자신의 ‘썰’을 푼다. 책을 많이 읽은 이는 “아하!” 할 터이고 생짜배기는 짜증이 날 법하다. 한가지 주제로 자료를 그러모은 뒤 다시 잘게 나누어 의미를 부여하면서 잘 난 척하는 게 천상 프랑스적이고, 말을 하되 에돌고 비트는 것 역시 프랑스적이다. 우아함을 위한 우아함.

샤를 보들레르, 장 보드리야르가 나오지만 그들은 자신의 얘기를 끌어가는 미끼일 뿐이다.

“안경은 타인의 시선을 몸의 특정부위로 끌어들이는 관능적인 기표가 된다. 위쪽으로 이동하여 성을 감출 수도 있고 허리띠 아래로 내려감으로써 성을 자극하는 신체 부위의 존재를 알릴 수도 있다. … 특히 코 위에 올려지면서 상징적 성적 의미를 갖게 된다. 긴 코위에 얹힌 안경이 꿈에 나타나는 것은 남성적 성기의 메타포로 해석된다.” 우아함과 관능의 줄타기.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에 이르면 뭔가 폼나는 얘기를 하는 것 같다.

“검은 안경은 열정을 감춤으로써 말하고 드러내는 비언어적 언어를, 사랑하는 주체가 사랑받는 관객에게 무언가를 감추려고 하고 있음을 신호로 알려주는 언어를 구성할 가능성을 허용해준다.” 저자의 별것 아닌 말 비틀기에 역자가 넘어진 모양새다.

알리나 레이의 <문 뒤에서> 가운데 ‘비서’를 인용하면서는 점잔을 빼면서 한껏 애로틱한 얘기를 한다.

안경은 관능의 유리창
선글라스는 으레 글래머 모델이 썼다

“안경은 틀어올린 머리와 엄격한 정장과 마찬가지로 빗장을 걸어 잠근 채 닫힘과 수직적 코드에 대한 엄중한 복종을 의미하는 옷의 올타리의 일부를 이룬다. 동시에 사회적 소통에 관능성을 부여하는데도 일조한다.”

레몽 장의 <안경>이란 작품에서 저자는 오르가즘에 이른 느낌이다.

“침대에서 안경의 중요성은 두 연인이 안경을 벗은 뒤 안경다리를 접어 머리맡 탁자에 올려놓는 결정적인 순간에 있다. 타인의 눈을 벗긴다는 건 애무를 요구하기 위한 연인 사이의 공모의 암호가 된다. 그리고 안경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관계의 내밀화를, 사회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으로의 이행을, 관능의 세계로 들어섬을 일러주는 이행 의식이 된다. 두 사람만이 함께한 상황에서 안경이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이며 내는 소리가 그만의 에로티시즘 신화에 속하는 신호가 된다.” 이쯤이면 ‘와우’다.

‘한 여자가 윈드서핑하는 게 그의 안경에 비쳐 보였다. 그녀는 뒤로 넘어져 물에 떨어지곤 했는데 음모가 넓적다리 위로 길게 나와 있었다’는 소설대목에서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을 운위하는 데서는 지은이의 위악적인 표정이 눈에 선하다.

프랑스스런 지은이의 안경을 벗기면 요점이 금방 드러난다.

안경은 쓰고벗고 하는 것. 눈과 대상물의 경계에 존재한다. 안경을 쓰면 형태와 경계가 뚜렷히 보여 불안한 혼동, 육체적 존재의 불명료함이나 망설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안방공사’를 깬다는 얘기다. 안경을 벗은 눈은 그 반대. 현실과의 연결선과 투명성을 제거함으로써 시각의 초월과 시선의 위반을 허용한다. 옷벗기의 마지막 과정인 안경벗음은 탈사회화, 자연으로의 복귀, 원초적인 성으로의 복귀인 동시에 또다른 효과를 낳는다. 안경을 벗은 눈은 결점없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결점을 보여주기 때문에 강한 효과를 낳는다. 동공이 열린 채 흐릿하고 모호한 눈을 가진 톱모델들이 섹시하게 보이는 게 그런 이유다.

안경벗은 눈 결점 보여줘 강한 효과

책의 대부분은 젊은이의 근시에 할애되어 있다. 하지만 노안의 나이라고 관능과 무관하겠는가.

“책들이 거리를 두더니 내게서 멀어지더군요. 내 눈과 책 사이의 간격이 점차 커졌어요.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 눈에서 책을 멀리 떨어뜨리게 되었지요. 가장 잘 보이는 거리를 유지하자니 이제는 내 팔이 자래지 않더군요. 안경을 쓰는 수밖에 없었지요. 못된 책들 같으니.” 안경없이 전화번호부를 읽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치자. 그러나 안경없이는 여자 엉덩이 사진을 보고도 흥분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충격이지 않겠는가. 책에 나오는 말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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