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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자스 주 뉴턴에서 독립기념일에 벌어진 불꽃놀이는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있는 듯한 기분을 불러일으켰다. 데이비드는 이렇게 어지러운 불꽃놀이는 자신도 처음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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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의 아메리카 자전거여행 (26)
데이비드가 오기는 왔다. 걱정이 돼서 다시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기다린 지 1시간 만에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레카부터 오늘 목적지인 뉴턴(Newton)까지 123㎞. 그는 “하루에 100㎞ 넘게 달린 게 오늘이 처음이어서 힘이 들었다”면서 “앞으로는 더 잘 탈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 일찍 들어올 게 라고 말하는 외박한 남편의 어조다.
다리 밑에서 뉴턴까지는 불과 8㎞. 그러나 반도 못 가 돌아보니 보이지 않을 만큼 그는 뒤로 쳐졌다. 뉴턴으로 들어오고 길이 엇갈리지 않도록 갈림길에서 다시 기다리면서 그의 문제점에 대해 생각해봤다.
많은 짐을 달고 가는 것 외에 라이딩 자세가 문제다. 그는 사람들에게 손 흔들어주느라고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캔자스는 바이크 라이더들 사이에서 가장 우호적인 주로 꼽힌다. 비우호적인 미주리 주 옆에 있어서 더욱 대조적이다. 주의 경계를 넘으면 갑자기 손을 흔들거나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려 환영하는 운전자들이 많아진다. “사실 나도 자전거 혁명 대의에 동조해. 시절이 하수상해서 지금은 차를 타고 있지만. 무사히 잘 끝내길 바래.” 그렇게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나한테는 그렇게 해석되는 메시지를 보낸다.
1시간 지나 데이비드가 따라붙었다
하루 100km 넘기긴 처음이라며
처지고 또 처지는데
‘치어리더식 오버인사’만 안해도 될걸!
빌어먹을 개소리 때문에
잠설쳐 멀리 못가겠단다 하룻만에
언젠가 픽업트럭이 맞은 편 차선 옆 빈터에 멈춰서더니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나를 기다리는 게 보였다. 맞바람이 세게 부는 허허벌판에서 검문하려는 듯 서 있는 그의 모습에 더럭 겁이 났다. 방어할 아무런 무기도 없고 자전거로는 도망칠 수 없고 도와줄 행인도 없다. 그냥 태연하게, 얼굴에는 세상에서 가장 친근한 표정을 지으면서 지나치려는데 그가 길을 건너서 내 차선 쪽으로 왔다. 60대의 중늙은이. 무기만 없다면 맞장떠도 될 듯. 인상착의는 나쁘지 않은 편. 그에 관한 신상정보가 빠른 속도로 처리된다.
캔자스 인심지수는 플러스
그는 악수를 청하며 “캔자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민 내 손바닥에 25센트짜리 동전인 쿼터를 쥐어 주며 “바람 때문에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차선을 건너갔다. 그가 차에 올라타 손을 흔들고 가는 동안 나는 쿼터를 그대로 손에 쥐고 선 채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무슨 뜻일까. 그 동안 카페에서 밥값을 대신 내준 할아버지도 있었고 먹을 것을 싸준 아주머니도 있었지만 25센트 적선의 의미는 알 수 없다. 다음 나온 마을에 마침 25센트짜리 탄산수를 파는 자판기가 있어서 이 동전을 썼는데 음료수를 마시면서 혹시 그 쿼터가 액운을 방지하는 부적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마시면 갈증만 더 나는 싸구려 음료수와 바꿔버리다니…
캔자스에서도 라이더에게 야박하게 구는 운전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개발한 인심지수에 따르면 압도적으로 플러스다. 팀 슈락 목사의 말에 힌트를 얻어 만든 이 인심지수는 라이더를 박대한 사람 수는 마이너스, 환대한 사람의 수는 플러스로 계산해서 두 숫자를 합산해 -3이 넘으면 인심이 험한 동네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캔자스에서는 경례하듯 손을 이마에 가볍게 댔다가 떼는 화물차 운전사까지 목격됐다. 라이더들은 보통은 목례만 하거나 한 손을 빨리 들어서 답례하고 다시 핸들을 잡는다. 나는 아직도 두 손으로 핸들을 잡지 않으면 불안해서 고개만 끄덕이거나 웃어주거나 유바에 상체를 기대고 주행할 때는 엄지손가락만 들어 보인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환영하는 운전자를 만나면 왼손을 뻗어 허리에서 머리 위까지 90도 각도로 들어올리는 동작을 몇 차례나 되풀이한다. 투르드 프랑스에서 결승선을 통과한 랜스 암스트롱도 열광하는 관중들에게 저렇게는 팔을 펄럭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때로는 그냥 코를 파려고 손을 드는 건데 그가 격렬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 인사하는 동작으로 바꾸는 운전자도 있었다. 답례의 수준을 넘어서 치어리더처럼 환영을 선도하는 인사법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많고 저혈당인 그로서는 그럴수록 자주 보충해줘야 하니 자연 여행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알레르기에다 저혈당, 여행을 중단해야 했던 뜻밖의 개 사고까지 딛고 직장도 관두면서 꿈에 그리던 일을 하루하루 성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암스트롱 못지 않은 작은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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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뉴욕시민들이 뉴욕 양키스를 응원하고 양키스 로고가 붙은 모자를 쓰고 다니듯 미국인들은 성조기를 좋아한다. 옥외 화장실까지 성조기로 도배를 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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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참 있다가 따라붙은 그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 다짜고짜 “오늘 저녁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다”라고 외쳤다. ‘서브웨이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의, 타협의 여지가 없는 말이었다. 머릿속에 그 샌드위치를 그리며 마지막 킬로미터를 견뎌온 듯 했다. 중국 식당에서 저녁 먹기로 한 약속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잊어버린 듯했다. 나로서는 오늘도 아침 빵, 점심 빵, 저녁 빵이니 죽을 맛이다. 조리 도구를 다 집에 보낸 버린 이후 중국 식당은 단맛과 짠맛이 아닌 맛을 볼 수 있는 맛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내가 발견한 또 하나의 법칙은 인구 3천명이 넘는 마을에는 중국식당이 반드시 한 곳 이상 있다는 것. 뉴턴의 인구는 1만8000명이나 돼 나의 중국식당 분포법칙에 따르면 서너 집은 될 것으로 보고 입맛을 다시고 왔는데… 쩝.
맛의 오아시스 중국식당
모처럼 다시 시립공원에서 야영을 했다. 미국 독립기념일이 다가오면서 그 동안 폭음탄과 폭죽 때문에 눈귀가 따가웠다. 독립기념일인 오늘은 그 절정이다. 미국에 몇 년 살았지만 뉴턴처럼 요란하게 불꽃놀이하는 동네는 처음이다. 시가 주관하는 불꽃놀이 외에도 개인들이 수백달러씩 들여 폭죽을 쏘아 올린다. 축하라기보다는 스트레스 해소 또는 화풀이 차원의 불꽃놀이로 보인다. 여기저기서 수류탄처럼 던지는 폭죽이 터지고 공중을 향해 발사하는 포화와 같은 폭죽도 퍼붓는다. 화염이 피아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피어 오른다.
그 무정부상태에서도 나는 숙면을 취하고 아침 6시 반에 일어났다. 이미 깨어 있던 데이비드는 “바그다드에 있는 것 같았다”면서 자기도 이곳처럼 어지럽게 불꽃놀이하는 동네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말하자 다리 건너편 집에서 개 한 마리가 밤새 짖었는데 그 소릴 못 들었냐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그 소리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새벽에 일어나 300m쯤 떨어진 다리까지 걸어가서 “씨팔, 입 닥쳐!”라고 말하고 오기까지 했다는 것. 그 말을 들은 개가 잠시 잠잠하다가 다시 짖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계속 짖고 있다면서 진짜 소리 안 들리느냐고 물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희미하게 개 소리가 들린다. 누구 보고 짖는 소리가 아니라 아파서 낑낑대는 소리 같다. 병원에 데려가야 할 환견이다. 잠을 깨울 만큼 소리가 큰 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니 지금은 주위가 소란해서 그렇지, 밤에는 두 배쯤 더 시끄러웠다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는 조금 있다가 누가 찾아와서 말을 붙일 때는 개 짖는 소리가 간밤에는 세 배쯤 더 시끄러웠다고 말했다. 이래저래 그는 개와 악연이다.
아침을 나눠먹으면서 그는 뜻밖의 말을 했다. “잠을 이틀 연속 설쳐서 오늘은 멀리 못 갈 것 같다”면서 “네가 혹시 혼자 가더라도 책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말이 묘했다. 자전거를 같이 타기로 한 지 하루 만에 멀리 못 가겠다고 자빠진 게 누군데 내가 그냥 가도 책망하지 않겠다니! 그는 빨리 라이딩을 끝내고 여관에서 푹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쉴 곳으로 불과 40㎞ 떨어진 불러(Buhler)를 짚었는데 거기에는 여관이 없다. 그래서 쉬려면 뉴턴에 여관들이 몇 개 있으니 여기서 쉬고 가라고 조언했고 그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동행은 하루 만에 끝이 났다.
실망스러웠지만 한가지 기특한 것은 그가 짐을 몇 가지 부치기로 했다는 점. 매일 싸는 데만 한 시간 반이 걸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캔자스까지 끌고 온 짐을 정리한다는 것은 대단한 결심이다. 그는 그 많은 짐이 자기한테는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말해왔다. 보내는 짐에는 녹음기가 있어서 사람들 인터뷰도 해왔느냐고 물으니 그의 말이 걸작이다.
“사람도 아니고 마이크를 잡고 혼자 수다를 계속 떠는 게 겸연쩍어서 며칠 하다가 그 동안 안 하고 있었거든.”
그는 매일 겪고 느낀 점을 쓰는 게 귀찮아 말로 녹음하려고 녹음기를 가져왔던 것. 전화기도 아닌 녹음기에 대고 혼자 얘기하기는 낯간지러울 것 같다. 물통도 5개여서 내가 생각하기에는 부칠 짐들이 더 많아 보였지만 아무 말 안 했다. 그는 “오늘부터는 새 여자를 찾아봐야겠다”고 선언했다. 계속 정리하는 모드다. 새 여자를 사귀어서 ‘괘씸하기 짝이 없는’ 여자친구에 복수하겠다는 의지가 쉰셋이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헤어지기 전 도심에 있는 다방에서 마지막 커피를 마셨다. 간밤 독립기념일 축제의 피로가 잔뜩 묻어나는 두 여자가 아침 커피를 끓였다. 그 중 한 여자가 괜찮아 보이는데 그는 벌써 작업에 들어간 듯 주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다방에는 달콤한 이탈을 유혹하는 노라 존스의 ‘컴어웨이 위드 미(Come away with me)’가 흘러나왔다.
독립기념일 폭죽 수류탄처럼
오늘 아침에도 구름이 잔뜩 끼었다. ‘곳에 따라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다. 무책임한 일기예보다. 가야 할지, 그와 함께 하루를 여기서 보내야 할지 헷갈린다. 그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번개칠 때 주행하는 게 가장 위험한 일이라면서 같이 머물 것을 권했다. 나로서는 몸이 멀쩡한데 그냥 하루를 노닥거리기가 싫어서 계속 가기로 했다.
그는 여관을 찾아 갔고 나는 길을 찾아 떠났다. 우리는 서로 다시는 못 만날 것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멈추지 않을 테고 그는 빈둥댈 테니까. 그는 언제 여행을 마칠지 기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돌아갈 곳도 없어 특별히 끝낼 날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통장 잔고가 매일 줄어들고 있어 마냥 자전거를 타고 손을 흔들고 다닐 수만은 없다고 했다. 다니면서 살기 좋고 일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아예 주저앉을 거라고 말했다.
우리는 다시 못만날 걸 안다
그는 빈둥댈테고 나는 멈추지 않을 테니까
먹구름은 동진하고 나는 서진하고
구름밖으로 쌩쌩 달렸다
내가 백수를 자처하며 여행하고 있지만 빈둥대는 것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 끊임없이 뭔가 일을 찾아서 하고 있다. 이 여행도 글을 신문에 연재하면서 한편으로 일이 돼버린다. 그는 빈둥댈 줄 아는 사람이다. 미국을 빈둥대면서 자전거로 횡단할 수 있다면 백수로서 사부 급이다. 그게 진정한 놀이고 여행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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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은택/〈블루 아메리카를 찾아서〉의 저자 hongdongz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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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다. 한번 동행을 겪은 터라 외로움이 더 크다. 거기다 먹구름까지 밀려오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는 방법은 주행에 집중하는 것이다. 불안해서, 외로워서 자전거를 세게 몰았다.
자전거를 타고 구름 밖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건 희한한 경험이었다. 그 넓은 구름이 어느 새 동쪽으로 밀려나 있다. 시속 16㎞로 구름이 바람을 타고 동진하고 내가 시속 20㎞로 서진하면 시속 36㎞의 속도로 우리는 서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직경 100㎞의 구름장이 하늘을 덮고 있다고 해도 세 시간이면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빗방울 한 방울 안 맞고 니커슨(Nickerson)을 거쳐 스털링(Sterling)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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