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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7 17:14 수정 : 2005.11.18 13:56

역사로 보는 한주

1963년 11월22일 오픈카(무개차)를 타고 텍사스주 댈러스 중심가를 달리던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대낮에 총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4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밝혀진 진실은 없고 갖가지 억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논란거리 가운데 몇가지. 연방수사국(FBI)은 모두 3발이 발사돼, 첫발은 케네디를, 두번째는 앞자리에 앉아 있던 존 코널리 텍사스주 지사를 맞혔고, 그리고 세번째 총알이 케네디의 머리를 관통해 치명상을 입혔다고 정부 암살진상규명위원회(워런위원회)에 보고했다. 10개월 뒤에 나온 워런위원회 보고서 역시 3발이 발사됐다고 했으나 내용은 달랐다. 한 발은 빗나갔고, 한 발은 방향을 이리저리 틀면서(무려 7차례나!) 케네디와 코널리를 한꺼번에 뚫고 지나갔고, 또 한 발은 케네디 두부에 치명상을 입혔다는 것이었다. 두 보고서는 3발을 쏜 범인이 리 하비 오스왈드(24) 혼자였다는데는 일치했다.

그러나 하원 암살조사위원회 보고서는 또 달랐다. 발사된 총알은 모두 4발이며, 그 가운데 적어도 한 발은 제3의 가담자가 쏜 것이며 사건에는 모종의 음모가 개입돼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총알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조차 규명되지 않았다. 정부위원회들은 차 뒤쪽에서 날아온 것으로 결론지었으나 당시 사건현장을 찍은 필름(의류제조업자 에이브러햄 자프루더 촬영)을 보면 총알은 앞쪽에서 날아온 듯하고 옆에 앉아 있던 부인 재클린의 대응행동도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보인다. 앞쪽 언덕 위에서 총성이 울렸고 화약냄새도 그쪽에서 났다는 증언들도 있다. 하원 조사위는 검증실험에서 오스왈드가 있던 뒤쪽에서 그와 같은 저격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병대원 출신으로 소련에 망명했다가 결혼한 뒤 가족을 데리고 62년에 다시 미국에 온 오스왈드는 체포 이틀 뒤 어처구니없게도 댈러스 경찰서 지하에서 구치소로 이송되던 도중 경찰관계자들과 기자들 및 카메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잭 루비라는 댈러스 나이트클럼 주인한테 사살당했다. 루비는 마피아와 중앙정보국(CIA), 쿠바 반카스트로 망명자그룹 등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오스왈드와도 아는 사이였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는 케네디가 베트남전 개입정책을 수정하고 카스트로 정권 전복에 소극적이었으며, 군축을 추진하는 등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배반한 데 따른 내부 반대세력의 조직적인 음모에 희생당한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한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B. 존슨은 64년 대선 직전 케네디 암살사건과 관련된 문서들을 2039년까지 공개하지 말도록 행정명령을 내렸으며, 1976-79년에 활동한 하원 암살조사위원회는 2029년까지, 그리고 92년의 암살기록검토위원회법은 2017년으로 공개 시기를 앞당겼다. 왜 비공개로 했을까? 공개되면 밝혀질까?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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