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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17 17:51 수정 : 2005.11.18 13:56

대담
도정일·최재천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2만5000원

인문학과 자연과학 두 ‘지성’이 만났다 도정일-최재천 교수 4년간 방대한 대화 생명복제 등 핫이슈 경계 넘나들며 ‘교직’ 도 “타인을 이해하는 게 인문학적 삶의 제1조” 최 “인간이 살아남을 무기는 다른 생물과 공생뿐”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는 부제를 달고 있는 <대담>(휴머니스트 펴냄)의 주인공은 도정일 교수(경희대 영어학부, 비평이론)와 최재천 교수(서울대 생명과학부, 생물학)다. 기획자가 “출판 미디어 매개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는 최초의 사건”이라고 의미부여를 한 616쪽 짜리의 이 방대한 작업물 서두에 도 교수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생물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하고도 놀라운 연구 분야입니다. 현대 생물학과 그 연관 분야들은 그동안 인문학이 ‘인간’에 대해 말하고 생각해왔던 방식들에 일대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인문학의 인간 그림이 온통 바뀌어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학문으로서만 그런 게 아닙니다. 줄기세포, 복제인간, 맞춤아기, 유전자 지도, 성격 개조, 인간 개량 등 생물학 분야가 내놓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들은 지금 당장 우리 눈앞에 놀라운 신세계의 도래를 알리고 있습니다. 먼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을 생물학이 이처럼 빨리 끌어다 우리의 ‘현재’ 속에 실현하게 될 줄이야, 인문학이 미처 몰랐던 일입니다. 그래서 생물학과 인문학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4년 전인 2001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이어진 10여 차례의 대담과 4차례의 인터뷰를 주제에 따라 13개의 장으로 재구성한 책은 ‘황우석’으로 상징되는 최근 생명과학의 놀라운 성취와 논란을 예견이나 한듯 실로 적절한 시기에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더할나위없는 사유거리를 선물한다. 연구자와 교육자로서 오랜 체험과 고민을 거친 “두 먹물이 드디어 보따리를 풀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화려한 대화는 깊고도 풍성하게 펼쳐진다. 사회생물학·진화생물학과 인문학의 경계, 우연과 필연, 신화, 동물-인간의 유비, 프로이트 평가 등을 둘러싼 치열한 논전엔 긴장감이 감돈다.

10여차례 대담·4차례 인터뷰

‘기적의 도서관’ 건립운동, ‘문화연대’ 활동 등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시민운동가 중 한사람”이라는 도 교수는 “(포스트 모더니즘에 맞서 싸운) 도정일 비평이 없었다면 1990년대 문학비평은 다소 지루하고 사소해졌을지도 모른다”는 평을 듣는 인문학계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사람이다. 저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개미 연구 등을 통해 동물행동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은 최 교수는 과학을 과학자들의 커뮤니티 바깥으로 끌고나와 대중 및 인문학과의 소통을 실천하고 있는 “귀한 학자”다.

최 교수 역시 우리 시대 ‘인간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화두가 생물학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며 화답한다. “과학도 인문학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분석은 어떨지 몰라도 종합을 하려면 결국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합니다. 저는 우리나라, 혹은 동양의 과학자들이 세계 과학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걸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산은 바로 언어로 대표되는 인문학적 소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기 위해 인간의 난자에 체세포 핵을 넣는 장면. 핵 이식 뒤 4~5일 동안 시험관 배양을 거치면 인간 배아 줄기세포가 된다. 연합뉴스
이들이 때론 긴장하고 때론 유쾌하게 주고받는 13개의 화두들은 다음과 같다. 즐거운 몽상과 끔찍한 현실-인문학적 본성과 자연과학적 본성, 생물학적 유전자와 문화적 유전자-인간의 탄생을 어떻게 설명할까, 생명복제 이제 인간만 남은 것인가, 인간 기원을 둘러싼 신화와 과학의 격돌, 유전자(DNA)는 영혼을 복제할 수 있는가, 인간 거짓말과 기만의 천재, 예술과 과학 진화인가 창조인가, 동물의 교미와 인간의 섹스, 판도라 속의 암컷 이데올로기 속의 수컷,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소설인가 과학인가, 다양한 생명체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상, 21세기형 인간 호모 심비우스의 번식을 위하여.

풍요롭고 긴 여행 끝에 도 교수가 내린 결론의 하나는 “두터운 세계, 두터운 세계를 위한 윤리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타인을 이해한다. 타자를 이해한다. 우리말로 하면 역지사지, 바꿔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건데, 기본적으로 타자를 긍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것은 내가 나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를 열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거나 내가 나를 버리고 타인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나는 예술이 수행하는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은 고통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인문학적 삶의 제1조예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그런 점에서 “세계를 (자기 입맛대로) 너무 얇고 투명하게 만드는” 위험한 짓이다.

최 교수의 얘기도 닮아 있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도 하고 호모 폴리티쿠스이기도 하지만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공생인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성공한 비결이 예전에는 호모 사피엔스, 즉 현명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겼죠. 우리가 잘나서 잘 살게 된 거라고 자화자찬해온 거죠. 그런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인간이 똑똑한 건 사실이지만, 현명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자연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무기는 공생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합니다. 혼자서 살아남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멸망할 겁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무차별적 전투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생물들과 동맹을 맺은 생물들이 더 잘 살아남았죠. 저는 우리 인간이 이번 세기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다시금 공생인간, 즉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두터운 세계를 위한 윤리학 필요”

그것은 곧 다양성으로 통한다. “지금 시대의 인간이 모르는 문제,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문제들이 미래에는 얼마든지 제기될 수 있어요. 그 미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소리없이 저장해놓고 있는 것이 생태계입니다. 그런데 그 생태계의 다양성을 파괴해버리면 인간은 제 손으로 미래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잃어버리게 되죠.”(도) “예, 소스(source)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요즘 광우병이나 조류독감의 위력이 엄청나잖아요. 옛날이라고 가축의 병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요즘은 한 번 명이 나면 전 세계가 흔들흔들하잖아요. …소들의 다양성이 없어져서 그런 겁니다. …닭도 마찬가지죠.”(최)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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