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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 퇴계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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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동양사상’ 에서 다룬 조선학자 다카하시 도오루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 유학(儒學)을 대표하는 학자로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꼽는다. 1천원권과 5천원권 화폐에도 그 ‘상식’이 기록돼 있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 유학을 ‘주리’ ‘주기’로 단순 구분한 일제 어용학자의 주장과 잇닿아 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카하시 도오루(1878~1967)의 발자국이 우리의 지갑 안에 접혀 있다. 다카하시는 한국 사상을 처음으로 근대적 시각에서 연구한 학자다. 유교를 비롯해 불교, 금석, 서지, 민요, 민속, 한글 등 거의 모든 한국의 사상적·문화적 유산을 섭렵했다. 그가 조선총독부 문화정책의 기틀을 다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유학 대표하는 퇴계·율곡
주리파·주기파로 단순화해
당파싸움·국망 원인 몰아
이제라도 비판적 연구 통해
주체적 한국철학 출발점 삼아야 그는 “조선의 사상과 신앙사는 모두 중국의 사상과 신앙사에 종속된다”며 조선 사상의 특성으로 △옛 사상에만 머무는 고착성 △창조적 사상을 발생시키지 못하는 비독립성을 꼽았다. 조선인의 또다른 특징으로 당파성·형식존중·문약성·심미관념의 결핍·공사의 혼동·낙천적 성격 등을 지적했다. 일제 말기에는 ‘황도유학(皇道儒學)’을 주창했다. 반년간지 <오늘의 동양사상>이 최근호에서 다카하시 도오루를 정면으로 다뤘다. 8편의 논문을 통해 아직도 한국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다카하시를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한국 성리학사를 주리파·주기파·절충파(농암문파)로 분류하는 삼분법이 지금까지도 무비판적으로 답습되고 있다.”(최영성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몇몇 후학들이 이를 반성하긴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일본과 남북의 학자 대부분이 (다카하시의 방법론을) 그대로 수용하고, 조선 주자학의 요체를 표현하는 데 적절치 못한 ‘주리’와 ’주기’라는 용어를 어떤 의혹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이형성 전주대 강사) 이상호 계명대 교수는 중등 윤리 교과서에서 다카하시의 흔적을 건져 올렸다. “초기 윤리 교과서는 한국 주자학을 파쟁과 당파의 원인이자 국망의 원인으로 바라봤고, 70년대 말까지는 아예 한국 철학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며 “이는 토착화된 우리 사상에 대한 전반적 회의를 반영하는 것이자 다카하시의 영향력이 개입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의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도 여전히 “내용적 측면에서는 다카하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의 영향력은 왜 문제인가. 이성환 계명대 교수는 “유학을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민족적 에토스는 다카하시의 논리에 의해 ‘화석화’됐다”고 평가했다. 최영성 교수는 “(다카하시의 연구는) 한국인의 정신적 지주에 치명타를 가하려는 저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한국사 왜곡보다 한국유교 왜곡이 더 효과적이고 근본적”이라고 지적했다. 다카하시를 넘어서려는 노력은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윤사순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다카하시를 비판해왔다. 비판논리의 핵심은 다카하시가 한국 유학을 기계적으로 단순 구분했다는 데 모인다. 이형성 강사는 “조선 주자학자들이 방법론적으로 사용한 주리·주기를 차용해 이황과 이이에 연결시키고 이를 조선 주자학의 전 범주에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조선 주자학의 독창성을 무시하고, 양명학과 실학을 경시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식민사학 극복을 토대로 한국사학을 새롭게 정초했던 역사학계와 비교하자면, 철학계의 노력은 지지부진하다. 다카하시의 학문적 성취가 간단히 극복될 수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의 동양사상>은 ‘다카하시 극복’의 새로운 길도 모색했다. 김기주 계명대 강사는 “다카하시의 전체 틀을 무너뜨리고 ‘인성론’을 중심으로 조선 유학사의 새로운 계통도를 그리려는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희탁 글로벌컬쳐연구소 연구원은 “자기만족적 변명보다는 다카하시라는 ‘타자’의 눈을 통해 우리의 과거를 ‘타자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기주 강사의 표현을 빌자면 다카하시에 대한 비판적 연구는 “주체적 한국 철학의 출발점”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평생 조선학 몰두…언문 철자법 제정에도 참여 다카하시 도오루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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