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1.24 19:05
수정 : 2005.11.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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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박일 지음. 전성곤 옮김. 범우 펴냄.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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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독서
영웅을 갈망하던 패전국 일본의 스포츠 영웅 역도산. 1940년 함남에서 태어나 17살 소년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스모선수와 프로 레슬러로 입신한 김신락은 그렇게 조선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성공한 일본인으로 행세하다 63년 말 나이트클럽에서 폭력단원의 칼에 찔려 숨졌다. 그를 일본인으로 만들어야 했던 일본과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남북한 모두 안쓰럽다. 48년 오사카에서 재일 한국인 3세로 태어난 박경재.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고 “폭풍우처럼 뭔가가 엄습해 옴을 느꼈던” 그는 10대 때 귀화한 뒤 일본인보다 더 철저한 일본인 되기에 매달렸다. 마침내 도쿄대와 대장성 엘리트코스를 거쳐 자민당 중의원 의원까지 됐으나 단지 뿌리가 조선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결정적인 국면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98년 현직의원 신분으로 목매 자살했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대부호가 된 48살의 동포 3세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드물게도 본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걸 끝까지 거부한 채 일본으로 귀화했다.
49살의 효고현 출생 동포 3세 박일 오사카시립대 조교수가 지난 10년간 수백곳의 학교와 민족조직 등을 찾아다니며 현장의 ‘재일 코리언’들과 대화하고 토론하고 강의한 실증적인 내용을 <재일 한국인>(범우 펴냄)이란 책으로 묶었다. 책은 롯데의 신격호, 방림방적의 서갑호, 신한은행의 이희건 등 모국 투자 재벌 동포들 명암도 실었고 가파르게 동화돼 가면서도 신세대일수록 다시 모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는 동포들의 의식조사, 총련의 역사와 참정권 논쟁, 민족교육 현실도 담았다. 65만7천여명의 각 시대 재일 코리언의 ‘사는 법의 틀’을 읽을 수 있다. 이데 노부유키, 산노, 미쓰즈카파 등의 용어 옮기기에 보이는 약간의 흠이 아쉽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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