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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4 19:22 수정 : 2005.11.25 14:15

말글찻집

한자말 뒷가지 -적(的)에 버금가는 말로 성(性)을 빼놓을 수가 없고, 뒷가지는 아니로되 뒷가지처럼 쓰이는 ‘주의’(主義)란 말도 재미있다.

‘주의’는 학문·정치·예술 분야에서 ‘특정한 이념이나 이론’을 뜻하는 온전한 개념을 지닌 말이긴 하되 요즘은 홀로 쓰이는 일이 드문데, 서양말 ‘이즘’(-ism)의 영향인듯 주로 뒷가지로 쓰는 형편이다. ‘주의·주장, 원칙·주견·사상’이란 말과 통한다. ‘주의자’와 함께 한때 무척 유행하던 말이다.

“지금 누가 돈 천은 고사하고 돈 백 주어 보슈. 주의구 사상이구 가을 바람의 새털이지.” “그런데 주의를 가지고 있으면 고자가 된답디까?” “딸을 팔고 주의를 팔고 동지를 팔고 ….” (염상섭 ‘삼대’에서)

성(性)은 성질·경향·성향 따위를 뜻하는 뒷가지로 많이 쓰이는데, 앞말의 적확함을 누그러뜨리는 한편, 그 사물의 주변부까지 아우르는 성금도 있다. ‘대륙기후’, ‘가십기사’면 되는데도 ‘대륙성 기후’, ‘가십성 기사’ 식으로 쓴다면 본디 지칭이 분명하여 이를 좀은 흐리멍텅하게 하려는 속셈이 드러난다. 인성·심성·성정·상성·물성처럼 예부터 ‘성’이 붙은 말이 많고, 믿음성·먹성·굽성·견딜성 …처럼 고유어와도 잘 어울려 쓰인다.

요즘 특히 ‘가능성’을 유행처럼 많이 쓰는데, 번역투 영향이 짙은 말이다. 이를 빼면 말이 잘 안 될 지경이다. 이는 ‘높다/낮다, 많다/적다, 크다/작다, 있다/없다’ 들과 어울린다. 그 가운데 ‘가능성’이 특히 ‘크다/커’와 주로 어울려 쓰이는 현상은 사람들이 ‘많다/적다, 크다/작다’의 구별을 혼동해 쓰는 현상과 아울러 좀더 깊이 살펴봄직하겠다.

‘주의자’(-ist)는 어떤가? ‘-이스트’는 ‘가·자’(家·者)로 주로 번역되지만, ‘주의자’ 하면 전날에는 통상 ‘공산주의자, 공화주의자’를 일컬었다. 그 주변 말로는 ‘마르크스 보이(~ 걸),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벌겅이 …’ 들이 있겠는데, 이는 의지가지 없던 나라잃은 시절에 의식있는 백성들에게 항일운동과 함께 등불이 됨직했다. 광복 뒤 억지스레 ‘빨갱이’로 뭉뚱그려지기도 했고, 80년대에 이르면 민중민주(피디), 민족해방(엔엘), 주체파 …들로 분화한다. 그러는 사이에 홀로 쓰이던 ‘주의, 주의자’는 사라지고 국어사전에나 남는다. ‘당’이나 ‘파’는 학벌·문벌·학연·지연 따위에 허술한 이론이 얽혀 패거리 문화를 이루는데,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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