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산고양이/<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 <탄산고양이 집 나가다>의 저자
|
난 여행기가 별로다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왜 자꾸 짐싸나? 가슴 두근거리는 이유 바로 이 책에
나는 이렇게 읽었다/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여행기라. 실은 이런 종류의 책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이다. 서점에 나와 있는 여행에세이 중 2권의 표지에 자기 이름을 올려놓은 주제에 이런 말은 하다니. 도리에 좀 어긋나는듯하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건 말건, 여행에세이 코너는 꽤 많은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이다. 아마도 그들은 책을 통해 그곳으로 떠난 여행자의 마음과 공감하고 싶은 사람들이리라. 실제로 여행기를 즐겨 읽는 이들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라고 했다. 나의 책을 읽어준 독자들 역시 고맙게도 종종 그런 말을 해준다. 그러나 그들 중 몇몇은 “여행, 별로 안 좋아하는데요”라는, 소위 여행기 저자라는 사람의 황당한 멘트에 약간 배신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여행기가 별로다. 그런데 내가 여행을, 그리고 특히나 여행기를 그닥 좋아할 수가 없는 건 매사에 무덤덤하고 잘난척하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정반대로 나는 몹시 촐싹맞고 무식함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여행과 여행기가 내게 보장해주는 부분이 의외로 초라하기 짝이 없다는 뜻밖의 사실 때문이었다. “나의 기대 속에 공항과 호텔 사이에는 진공밖에 없었다.”- 24페이지.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눈에 들어온 이 문장 때문에 나는 많은 이들처럼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의 열렬한 독자가 되었다. 확실히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여행을 상상할 때 그 사이 사이에 “가장자리가 달아빠진 고무 매트가 깔린 짐 회전장치”나 “입국장 안에서 돌아가는 거대한 선풍기”등이 있다는 것을 감히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을 수시로 하는 나 같은 부류들은 이런 생각도 들 것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 외에도 많은 것이 있는’ 여행의 실재에서 과연 여행자가 보장 받을 수 있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을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강제로 규정할 수 있을까…. 내게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혹은 여행을 상상할 때마다, 또 여행의 한가운데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들이 있었다. 미치도록 꿈꿔온 여행이건만 왜 막상 가이드북이 친절하게 지시한 명소에 가고 싶지 않아 호텔방에서 늦도록 뒹굴거리는 것일까. 왜 여행을 떠나기 전에 상상했던 일들을 모두 잊고 엉뚱한 곳에 정신을 팔게 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의 깊은 인상이 대개 여행과 관련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컨대 여행은 마치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경험과 비슷하다. 그림을 보면서 받게 되는 인상은 비이성적으로 부여되는 것이기 때문에(문외한이건 아니건) 타인의 감상이 어땠는지 시시콜콜 참고하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왜 이 그림에 감동을 받게 되는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림을 감상하며 기쁨을 느끼는가, 라는 부분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여행의 기술> 은 그런 의미에서 정말 완벽한 여행에세이였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행을 떠나게 되는가. 여행의 무엇 때문에 감동을 받는가. 무엇 때문에 실망하고 맥없는 여행이 되는가. 그리고 어떤 것을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최근 나는 자꾸만 맥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낯선 곳에서 떠나는 일이란 사람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주 용이해졌고 게다가 이동하지 않아도 알 수 있으며, 카메라를 통해 그곳의 아름다움을 소장하는 일도 순식간에 일어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런 편리함은 나에게 규격화된 감상을 강요하는 것 같아 어쩐지 시시하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며 저항하게 된다. 여행에서 받게 되는 무엇은 결코 보장된 것이 아니며 여행기를 통해서는 더더욱 교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와 함께 나는 여행에 대한 생각 역시 떨쳐버릴 수가 없는데 결국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다음 여행을 위해 짐을 꾸리는 제멋대로의 행동을 일삼는 것이다. 이런 나를 보면서 혹시라도 논리가 너무 난잡한 것 아니냐며 따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에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여행을 떠나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러나 <여행의 기술 >을 읽어보지 않겠냐고 권할 수는 있을 것이다.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