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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1.25 18:08 수정 : 2005.11.25 19:38

개성공업지구 내 봉동관에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들이 제4차 회의를 열고 있다. 개성/연합뉴스

편찬위원 40여명 개성서 4차 회의 어문규정 작성 요강 등 4개항 합의 예정


아직도 <겨레말큰사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상 첫 남북 공동 국어사전이다. 지난 2월 금강산에서 남북 국어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공동편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7월 평양 회의를 거쳐 8월 서울에서 사전편찬의 큰 원칙인 ‘공동편찬요강’을 발표했다.

“과연 되겠느냐”는 일부의 의구심을 비웃듯, 지금 개성에서 또 한번의 의미심장한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 40여명의 남북 편찬위원들이 24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개성공업지구내 봉동관에서 4차 편찬회의를 열고 있다. 회의 첫날인 24일 △단일 어문규범 작성 요강 △올림말 선정을 위한 작업 요강 △어휘 조사 요강 △컴퓨터 정보화 요강 등 사전편찬의 4개 핵심과정에 대한 원칙에 사실상 합의했다.

최종 합의안은 26일 오전에 발표되겠지만, 남쪽에서 준비해간 4개 세부요강 초안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쪽 위원장인 문영호 북한사회과학원 언어과학연구소장은 초안에 대해 “우리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남쪽 위원장인 홍윤표 연세대 교수는 “예상보다 일찍 합의에 이르게 돼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 남북 편찬위원들은 25일부터 실무 작업 진행을 위한 세부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남쪽 초안을 중심으로 이번 합의안의 대강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인 단일어문규범 마련 방법에 대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 단일규범의 성격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목적으로 작성하지만 … 단계적인 수정·보충·완성 과정을 거쳐 민족어 통일규범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모(이름 및 순서), 형태표기, 띄어쓰기, 문장부호 등은 “반드시 단일규범으로 정하고”, 말다듬기, 문법용어, 발음 등은 “여유를 주거나 허용 한계를 두고 조절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앞으로 마련될 이 단일규범은 “남북의 현행 어문규범에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남과 북이 현재 쓰고 있는 규범은 그대로 둔다는 말이다.

또다른 쟁점인 사전 올림말 선정에서도 큰 장애물을 넘었다. “남쪽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쪽 <조선말대사전>을 토대로 올림말을 우선 정하고, 방언 등 어휘조사 사업을 통해 민족 고유의 어휘를 올린다”는 게 큰 원칙이다. 여러 세부 원칙 가운데 하나지만 “각종 고유명사(인명·지명·사건명·단체명 등)는 올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남북이 서로 껄끄러운 정치적·이념적 어휘들을 피해나가는 길을 틔운 셈이다.

이밖에도 남북 각지의 방언과 문학 등 문헌자료를 대상으로 한 어휘조사 요강과 전자사전 편찬을 염두에 둔 컴퓨터 정보화 요강 등도 큰 이견없이 최종 합의에 이를 전망이다. 남쪽 위원장인 홍윤표 교수는 “세부 요강에 대한 합의는 사전편찬을 위한 고속도로를 뚫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영호 소장은 “이제부턴 실제 작업에 대해 논의하자”며 의욕을 보였다.

공동편찬위원회는 앞으로 올림말을 구체적으로 선정할 ‘어휘조’와 단일어문규범 마련을 위한 ‘규범조’를 큰 축으로 삼아 편찬 실무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남쪽에서는 권재일 서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어문규범 위원 5명을 따로 구성했다. 올림말 선정의 기본이 될 방언조사를 위해 국립국어연구원과도 협력관계를 맺었다. 홍윤표 교수는 “북쪽에서는 이미 40여명의 연구인력이 이 일을 전담해 실제 작업에 들어갔지만, 정작 남쪽에서는 마땅한 재원과 조직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며 “내년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 제정이 급하다”고 말했다.


개성/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북남통일 앞서 ‘말의 통일’ 이 중요 북쪽서도 ‘깨지만 마라’ 관심많아”

북산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문영호 소장

“북남통일 앞서 ‘말의 통일’이 중요 북쪽서도 ‘깨지만 마라’ 관심많아”
지난 2월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 결성식 때, 문영호 북한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장은 한사코 언론 접촉을 거절했다. 남쪽 위원들과 대화 중에도 기자들이 다가오면 아예 입을 닫았다. 이번에는 달랐다. ‘우회적’인 방식이지만 인터뷰에 응했다. 홍윤표 교수가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미리 받아 대신 묻고 문 소장이 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북쪽 편찬위원장이자 조선언어학회 위원장이기도 한 문 소장은 이 사업을 낙관하고 있었다. 지난 2월의 긴장감이 이제 적극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겨레말큰사전> 편찬의 의미는 무엇인가.

=북남통일에 앞서 정신문화의 통일, 그 중에서도 말의 통일이 중요하다. 정신·문화적 차이, 특히 언어의 이질화가 심각하다. 먼저 말의 통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북쪽 사람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북에서도 많이 알고 있다. 상급(장관급)회담에서도 발표되고 신문·잡지에도 소개돼 잘 알고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것(사전편찬)만은 깨지 말아라”는 당부다.

­주위의 우려도 있을 텐데.

=사실 초기에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전이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결과가 만족스러울까에 대해 여전히 우려가 있다. 현실적으로 규범이 다른데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하는 주위의 걱정도 있지만 관심과 기대가 더 크다.

­사전편찬의 방향은.

=북과 남의 차이를 넘어 제3의 생각을 하자는 토론을 많이 하고 있다. (사전 편찬을 위한) 기초가 어느 정도 이뤄져 있으며 실제 만들 수 있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제일 어렵고 중요한 문제는 어문규범 단일화다. 이번에 남쪽 어문규범조가 결성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북에서는 관련 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나.

=현재 43명의 전문가들이 어휘를 정리하고 있다. 8월부터 각 도마다 방언 수집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고 있다. 사회과학원 국어사전편찬실을 중심으로 연구소, 대학, 전문가와 연계를 이루고 있다.

­전자사전 제작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미 프로그램 개발조를 운영하고 있다. 폭넓은 어휘를 담을 수 있는 전자사전을 다목적용으로 만들 수 있다. 입력자료는 남쪽이 더 많을 것이다. 전자화된 목록을 교환하고 비교, 보완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국어는 농후한 민족성 자체다. 효율이 문제인데 양쪽이 계속 합의해 나갈 것이다. 내년부터 짭잘하게 만나 속을 터놓고 얘기하면서 진행해 나갈 것이다. 우선 같은 것부터 해결하고 이론보다 실제 차원에서 접근할 것이다.

개성/글·사진 안수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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