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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업지구 내 봉동관에서 <겨레말큰사전> 편찬위원들이 제4차 회의를 열고 있다. 개성/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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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위원 40여명 개성서 4차 회의 어문규정 작성 요강 등 4개항 합의 예정
아직도 <겨레말큰사전>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사상 첫 남북 공동 국어사전이다. 지난 2월 금강산에서 남북 국어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공동편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7월 평양 회의를 거쳐 8월 서울에서 사전편찬의 큰 원칙인 ‘공동편찬요강’을 발표했다. “과연 되겠느냐”는 일부의 의구심을 비웃듯, 지금 개성에서 또 한번의 의미심장한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 40여명의 남북 편찬위원들이 24일부터 사흘 일정으로 개성공업지구내 봉동관에서 4차 편찬회의를 열고 있다. 회의 첫날인 24일 △단일 어문규범 작성 요강 △올림말 선정을 위한 작업 요강 △어휘 조사 요강 △컴퓨터 정보화 요강 등 사전편찬의 4개 핵심과정에 대한 원칙에 사실상 합의했다. 최종 합의안은 26일 오전에 발표되겠지만, 남쪽에서 준비해간 4개 세부요강 초안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쪽 위원장인 문영호 북한사회과학원 언어과학연구소장은 초안에 대해 “우리 생각과 다르지 않다”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남쪽 위원장인 홍윤표 연세대 교수는 “예상보다 일찍 합의에 이르게 돼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 남북 편찬위원들은 25일부터 실무 작업 진행을 위한 세부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남쪽 초안을 중심으로 이번 합의안의 대강을 살펴보면 이렇다. 우선 가장 큰 쟁점인 단일어문규범 마련 방법에 대한 의견 접근을 이뤘다. 단일규범의 성격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목적으로 작성하지만 … 단계적인 수정·보충·완성 과정을 거쳐 민족어 통일규범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자모(이름 및 순서), 형태표기, 띄어쓰기, 문장부호 등은 “반드시 단일규범으로 정하고”, 말다듬기, 문법용어, 발음 등은 “여유를 주거나 허용 한계를 두고 조절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다만 앞으로 마련될 이 단일규범은 “남북의 현행 어문규범에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남과 북이 현재 쓰고 있는 규범은 그대로 둔다는 말이다. 또다른 쟁점인 사전 올림말 선정에서도 큰 장애물을 넘었다. “남쪽 <표준국어대사전>과 북쪽 <조선말대사전>을 토대로 올림말을 우선 정하고, 방언 등 어휘조사 사업을 통해 민족 고유의 어휘를 올린다”는 게 큰 원칙이다. 여러 세부 원칙 가운데 하나지만 “각종 고유명사(인명·지명·사건명·단체명 등)는 올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남북이 서로 껄끄러운 정치적·이념적 어휘들을 피해나가는 길을 틔운 셈이다. 이밖에도 남북 각지의 방언과 문학 등 문헌자료를 대상으로 한 어휘조사 요강과 전자사전 편찬을 염두에 둔 컴퓨터 정보화 요강 등도 큰 이견없이 최종 합의에 이를 전망이다. 남쪽 위원장인 홍윤표 교수는 “세부 요강에 대한 합의는 사전편찬을 위한 고속도로를 뚫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문영호 소장은 “이제부턴 실제 작업에 대해 논의하자”며 의욕을 보였다. 공동편찬위원회는 앞으로 올림말을 구체적으로 선정할 ‘어휘조’와 단일어문규범 마련을 위한 ‘규범조’를 큰 축으로 삼아 편찬 실무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남쪽에서는 권재일 서울대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어문규범 위원 5명을 따로 구성했다. 올림말 선정의 기본이 될 방언조사를 위해 국립국어연구원과도 협력관계를 맺었다. 홍윤표 교수는 “북쪽에서는 이미 40여명의 연구인력이 이 일을 전담해 실제 작업에 들어갔지만, 정작 남쪽에서는 마땅한 재원과 조직이 없어 애를 먹고 있다”며 “내년부터 본격 작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법’ 제정이 급하다”고 말했다.
개성/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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