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1 18:54
수정 : 2005.12.02 14:08
역사로 보는 한주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1758-1831)가 1823년 12월2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남북 아메리카에 대한 유럽의 간섭을 거부하는 상호 불간섭 원칙을 선언했다.
“아메리카 대륙은 그들이 지금 취하고 또 유지하고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조건으로 말미암아, 이후로는 어떤 유럽 열강에 의해서도 신민으로 간주되니 않을 것이다.” “유럽 열강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두고 벌인 전쟁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우리의 권리가 침탈당하고 심각하게 위협받을 때만 우리는 우리가 당한 피해에 분노하고 우리의 방위를 위해 준비할 것이다.”(이삼성의 <세계와 미국>에서 재인용)
이른바 먼로독트린, 먼로선언, 먼로주의, 미국 고립주의 등으로 알려진 이 선언은 미국 외교사에 하나의 획을 그었다. 그러나 흔히 제국주의적 팽창주의나 개입, 간섭주의에 대비되는 고립주의의 전형처럼 알려진 이 선언의 본질은 상식을 배반한다. 그것은 적극적인 팽창·개입주의와 표리일체를 이루고 있다.
먼로주의는 나폴레옹 전쟁 직후인 1814-15년에 성립된 유럽의 빈체제, 즉 ‘4국동맹’이나 ‘신성동맹’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 빈체제는 프랑스혁명으로 해체위기에 직면한 전통적 군주체제를 복원하고 옛 영토와 지배자, 옛 질서를 되살리려는 보수복고체제였다. 먼로주의는 스페인 등의 쇠퇴로 촉발된 중남미 식민지들의 유럽 이탈 움직임에 대한 유럽의 간섭과 알래스카를 지배하고 있던 러시아의 남하정책 등에 대처하면서 아메리카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우월권을 선포한 것이었다. 즉 자신이 열세였던 유럽에 대해서는 고립주의를 내건 간섭배제를, 상대적으로 우월한 아메리카 등 비유럽권에는 강력한 개입·팽창정책을 초지일관 추구했다.
흔히 미국이 고립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미서전쟁)이고 결정적인 전환은 1941년 12월7일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기습 이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은 1841년에 이미 먼로선언의 적용범위를 하와이까지 확대했고 1853년에는 페리 제독 함대가 일본에 개항을 요구하는 포함외교를 벌였으며, 1867년에는 알래스카를 사들이고 1880년에는 남태평양의 사모아 섬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까지 각오했다. 미국은 미서전쟁을 통해 쿠바와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를 빼앗았다.
대동강을 거슬러올라가 통상을 요구하며 횡포를 부리던 미국상선 제너럴셔먼이 평양 주민들의 역습으로 불타버린 게 1866년이었고, 이를 기화로 미국이 군함 5척을 보내 강화도를 공격해 일시 점령한 신미양요가 일어난 해가 1871년이었다. 미서전쟁 때 미국의 쿠바 점령전쟁에서 영웅이 됐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돼 필리핀 지배를 보장받는 대신 일본의 조선지배를 보장해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건 1905년이었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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