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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1 19:05 수정 : 2006.02.22 19:43

현암사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아깝다 이책

사생아로 태어나고, 유년시절 결핵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는 훗날 소설가가 되었다. 유수한 문학상을 받을 만큼 작품세계를 인정받은 그이지만 소설을 발표할 때마다 ‘나를 묘사해 명예 훼손했다’며 소송이 일고, ‘조국을 더럽힌 놈’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그는 국가 최고문학상 시상 자리에서도 “세상엔 찬양할 것도 없고 다만 우스꽝스러운 것이 많을 따름”이라는 소감을 밝힌다.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한 문화부장관은 자리를 박차고 떠난다. 결정적 대목. 그는 죽기 이틀 전 이러한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은 뒤 70년 동안 이 나라(조국)에서 내 작품만 아니라, 메모 한 장도 출간할 수 없다. 내가 쓴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일도 당연히 안 된다.”

잉게보르흐 바흐만, 피터 한트케와 함께 오스트리아 3대 작가이자 독일어권에서 중요한 작가로 꼽히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비트겐슈타인의 조카>가 출간된 날은 대한민국이 공식적으로 ‘아이엠에프’를 선언한 날이었다. 광복이나 한국전쟁 뒤보다 더없이 ‘애국심’이 강요되는 시기였다. 사람들은 여투어둔 금을 너도나도 내놓았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눈치껏’ 등을 돌렸다. 광기에 가까운 ‘한핏줄’의 연대와 국민성이 화두인 때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등장은 ‘용감한 바보’의 퍼포먼스였다.

‘작품’은 또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행갈이가 없는데다 도대체 ‘소설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죽음과 질병을 외투처럼 걸치고, 선병질적인 어조로 가족을 부정하고,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는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형무소’로 규정하며 나아가 자신조차 부정하는 이방인에게 ‘애국심’이라는 광기어린 종교에 빠진 아이엠에프 시대의 한국인 중 누가 그에게 살가운 눈길을 주었겠는가.

아마 그가 대한민국 산(産)이었다면, 그의 언어는 23개 언어로 번역되기는커녕 마녀사냥으로 만신창이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베른하르트를 대한민국에 소개하는 첨병으로서 적잖이 들뜨고, 어떤 방식으로든 그의 이름이 호명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베른하르트는 잊혀졌고, 우리는 여전히 가족과 나, 조국 앞에서는 기꺼이 눈멀어 있다.

그렇게 10여 년이 흘렀다. 우리는 그의 마지막 소설 <소멸>을 준비하고 있다. 칼날 비난보다 무관심이 상처로 남아 초조한 이즈음 눈밝은 독자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그 이름은 김규항. “내가 인간이란 얼마나 가망 없는 존재인가,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베른하르트를 좋아한다는 걸 희한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베른하르트야말로 모든 이상주의자의 의지처일 수 있다. 이상주의자는 그 이상 때문에 단순해지는 속성이 있다. 그 단순함은 다시 이상주의를 단순하게 만들고 혁명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럴 때 필요한 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혐오다. 혐오를 모른다면 혐오를 넘어설 수 없으며 진정한 건강성과 아름다움을 구할 수 없다. 이렇게 가망 없는 인간들을 상대로 대체 내가 뭘 하겠다는 거지?, 이렇게 중얼거릴 줄 모르는 이상주의자는 위험하거나, 적어도 경박하다.” 그 독후감은 그동안의 응어리를 단박에 풀어주었다. 그래서 10년 만에 젖이 돌 듯 마음이 설렌다. 너무 염치 바르고 눈치가 잰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제대로 된 문제아를 세상에 내보내고 이러저러한 논쟁을 벌이는 일이 훨씬 즐거운 일임에는 분명하리라. 베른하르트는 영원한 파이터다. 파이팅!

형난옥/현암사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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