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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1 20:12 수정 : 2005.12.02 14:03

시간의 이빨
미다스 데커스 지음. 오윤희 정재경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2만원

죽어가는 것들의 아름다움 백과전서적 지식 통해 유머러스하게 엮어내 인생도 진화도 특별한 목적은 없다 그냥 시간과 함께 늙어가는 게 본래의 나를 찾고 삶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데커스는 산산조각난 폐허와 녹슨 기차, 썩어 문드러지는 시체, 주름살 투성이 노년이 아름답고도 긴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역사와 생물학 전방위에 걸친 지식을 유머와 한데 묶었다.”

네덜란드의 저명한 생물학자 미다스 데커스의 <시간의 이빨>(영림카디널 펴냄)에 대한 <가디언>의 이런 평은 적절하다. 하지만 이 책은 딱히 노년으로 대상을 한정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인생이랄까, 삶 전반에 대한 차원높은 성찰쯤으로 읽힌다. 생물학이 중심이 되긴 했지만 역사와 물리, 천체, 지리에 이르기까지 분방하고 박식한 백과전서적 지식을 토대로 자유연상식으로 이야기하듯 풀어간 서술방식이 쉽게 읽히게 한다.

진보는 없고 퇴보 또한 없다

그는 인생이 무슨 특별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주어진 삶은 시간과 함께 녹슬어가지만(시간의 이빨!),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때가 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본래의 자기모습과 일체가 되는 ‘완성’이라고 설파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면 진부하기도 한 이런 추상적인 결론이 아니라, 이런 결론에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의 통찰과 박식, 그리고 시니컬한듯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한 삶에 대한 시선으로 종횡무진 풀어가는 ‘이빨’이다.

그가 보기에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진화는 그 어떤 것도 원치 않으며, 앞으로 나가느냐 뒤로 가느냐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인간이 고래보다 더 뛰어난 것도 아니고, 고래 또한 우리들 머리카락 속의 이보다 더 뛰어난 것도 아니다. 수백 년 동안의 진화를 통해서 이 세계는 결코 더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 …생물학적으로 봐서 인간은 그 어떤 목표도 갖고 있지 않다. …진보는 없으며, 또한 퇴보란 것도 없다. 오직 차근차근 걷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것에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

그가 일부 환경운동가들을 비판하는 대목을 보자. “그들은 자신만의 고정된 이상적인 자연의 상을 갖고 있으며,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러한 것을 이루려 한다. 네덜란드의 가장 오래된 자연유산인 나르데어메어 자연보호구역이 바로 이러한 환경운동가들의 오만, 즉 자신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자연의 순환을 방해한 오만의 좋은 예다. 그곳의 현재 모습은 그곳이 자연기념물로 지정될 때의 모습과 똑같다. 끊임없이 변하는 진정한 모습의 자연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이 바로 나르데어메어인 것이다. 만일 그곳을 자연 그대로 놔두었다면 그곳엔 이미 오래된 숲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기념물이기 때문에 그런 갈대가 자라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은 그곳을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는 곳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일이다.”


인생은 태어나서 희망 속에 한 계단 한 계단 정상을 향해 오르다가 곧 다시 늙음과 한탄 속에 한 계단 한 계단 내려가 결국 무덤 속에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다. 1640년께 유럽에서 그려진 ‘삶의 여정도’. <시간의 이빨>에서
결국 내버려 두라는 얘기다. “건물들도 있는 그대로 놔두어야 한다. 자연환경, 조각물, 숲, 에스키모, 작은 소녀, 이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놔두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냥 내팽개쳐 두라는 건 아니다. “우리 몸을 돌보듯 집을 돌보고, 그들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라. 드디어 마지막 시간이 되면 그들이 벽 하나 무너지고 또 다른 벽이 무너지듯 차근차근 편안하게 죽어가도록 하라.”

모든 것이, 그리고 누구나가 다 먼지로 돌아간다. 바로 엔트로피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엔트로피는 자발적으로 항상 증가한다. 온 세상은 부단히 ‘열의 사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몸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폐차해야 하는 자동차와 다를 바 없다. “예전에 우리들이 사라져 가는 다른 것들의 자리에 삶의 터전을 잡았듯 우리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재의 자리도 머지않아 다른 것들이, 아마도 다른 종의 생명체가 차지하게 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삶의 원칙이다. 바로 이것이 종족보존의 원칙이다.”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환경운동가의 오만이 망친 자연

우리 몸의 세포 분자들은 이미 생멸을 거듭하면서 과거의 것들은 남아 있지도 않다. “당신의 청년기 때의 당신은 당신 자신이 아니며, 단지 당신이 잘 알고 있는 그 누구일 뿐이다. …남아 있는 것, 당신이 젊었을 적의 자아와 결부시키며 앨범에 들어 있는 사진이 모두 똑같은 인물이라는 환상을 갖게 하는 유일한 것, 그것은 바로 당신의 기억이다.” 삶은 바로 기억 그 자체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간직한 세포도 때가 되면 분열을 멈춘다.

그러나 그것은 파멸이 아니다.

“현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 인간은 역사를 필요로 한다. 이반 일리치의 말을 빌리면 우리 인간은 현재를 과거의 미래로 바라다볼 수 있어야 한다. 오래된 도시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준다. …모든 오래된 집에서는 어떤 분위기가 풍기는데, 그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 분위기란 다름 아니라 경외심이다. 경외심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것이 나이와 함께 자란다는 점이다.”

“노인이 된다는 사실이 날 흥분시켜”

“경외심은 시간에 대한 승리다. 그것은 파멸의 반대다. 그것이 바로 완성이다. …사람은 나이가 일흔이면 일흔다워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도저도 아니어서 나이를 헛먹은 것이다. 모든 나이에는 각각의 역할이 있다. …경외심을 풍기기 위해서는 중요한 일을 하거나 근사한 여름모자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에 자부심을 느끼고 존중하는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나 소설의 가장 근본적인 구성요소가 바로 끝이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노인이 될 수 있다. 아직 노인이 되어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노인이 된다는 사실은 나를 아주 흥분시킨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내가 되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자기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네덜란드의 학자 P. 올링가의 박사학위 논문에 나오는 하나의 테제다.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기며, 그러한 흔적은 사람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무덤을 향해 가면 갈수록 사람들은 본래의 자기 모습과 비슷해지고, 결국에는 본래의 자기 자신과 일치하게 된다. 그러면 더 이상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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