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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발명한 청진기로 환자의 증상을 살피고 있는 라에네크의 모습을 그린 그림. 아우엔브루거의 타진법 발명 이후 등장한 청진기는 개선을 거듭한 끝에 오늘날과 같은 청진기로 발전해 임상의사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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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오줌으로 병 원인 찾던 중세 의학
어떻게 과학적 의학으로 바뀌었을까
질병 증상 관찰해 체계적 분류한 시드넘
타진법 발명한 아우엔브루거
현대 임상의학 이어지는 두 흐름 원류 돼
의학속 사상 (8)/근대 임상의학의 사유양식:시든햄과 아우엔브루거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가 먹고 입고 살아가는 방식은 모두 그 과학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다. 병이 생기면 당연히 현대과학의 총화인 병원에 간다. 병원에서는 우리의 몸을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소리를 들어보고 피를 뽑거나 사진을 찍어 몸의 상태를 확인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 다음 수술을 하거나 약을 써서 그 원인을 ‘제거’한다.
하지만 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과거의 의사들이 했던 진료행위에 빠져들다 보면, 이와 같은 우리의 일상이 무척 새롭게 느껴진다. 중세 서양의 의사들은 몸속에 담겨져 있거나 밖으로 분비되는 액체의 상태에서 병의 원인을 찾았으며 치료 또한 그 액체의 균형을 맞추어주는 것이었다. 진단은 주로 환자의 오줌을 유리병에 담아 눈으로 관찰하고 손에 묻혀 비벼보고 맛을 보거나 하여 몸의 상태를 ‘추론’하는 것이었으며, 치료는 그러한 추론에 의거하여 지나치게 많은 체액(혈액, 점액, 흑담즙, 황담즙)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엄청난 양의 피를 뽑아내고 약을 써서 먹은 음식을 토해내게 하며 이뇨제나 하제를 쓰거나 관장을 하여 찌꺼기 액체를 제거하는 등이 일상적 의료행위였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전근대적 의학은 어떻게 지금과 같은 과학적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둘 사이에는 수많은 징검다리가 있었지만 여기서는 17세기 이후에 마련된 두 가지 계기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한다. 놀랍게도 그 계기 중 하나는 시대를 거슬러 고대의 히포크라테스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중세와 근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고대와의 대화에 있었던 것이다. 물론 새롭게 탄생한 히포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가 아닌 17세기 영국의 시대정신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영국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리는 토머스 시든햄(1624~1689)은 청교도 혁명에 가담한 의회군의 장교였으며 당시의 대 철학자 존 로크와 화학자 보일의 절친한 친구였다는 점에서, 다양한 신들을 모시는 신전이 즐비한 거리에서 소피스트들이 격론을 벌이는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를 히포크라테스로 부르는 것은 굳어진 이론에 빠지지 않고 질병현상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경험을 의학의 중심에 두었으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학은 중세적 도그마와의 단절인 동시에 고대 그리스와의 대화였으며 과학적 임상의학의 출발이었다.
영국의 ‘히포크라테스’로 불려
그렇다고 그가 아무런 생각 없이 관찰과 경험에만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의 과학철학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떠한 관찰도 이론과 독립적일 수는 없다. 시든햄의 의학을 하나의 사상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가 경험주의 철학자 존 로크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하나의 열쇠가 된다. 시든햄 의학사상의 핵심은, 각각의 질병은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펼쳐나가는 식물이나 동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의 의학방법론은 이러한 질병의 자연사를 면밀히 관찰하여 완벽하게 기술하는 것이다. 동식물에 서로를 구분하는 종(species)의 구분이 있듯이 각각의 질병에는 다른 것과 구분되는 나름대로의 특징(증상과 경과)이 있다.
이러한 사상은 그를 질병분류학(nosology)으로 이끈다. 이렇게 그는 질병의 증상과 경과를 자세히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겼으며 그 기록이 600쪽짜리 8권에 이른다고 한다. 정확한 관찰을 통해 증례를 기록하고 유사한 증례들을 묶어 유형을 구분한 다음 증례와 증례, 유형과 유형을 비교 검토하여 질병분류의 체계를 완성해 간다. 부검을 통해 질병의 자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오늘날의 질병분류와 거의 일치한다.
질병의 기후조건까지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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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청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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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익/인제대 교수·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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