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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16:54 수정 : 2005.12.09 14:04

김찬호/한양대 강의교수·문화인류학과

틈만 나면 노래 돌리는 한국사람
91년 부산 상륙 노래방 급팽창
어른들의 유쾌한 놀이방으로
가면 벗고 망가지면 ‘호모루덴스’ 충실
그 밀실에선 누구나 삶의 주인공

생활속의 문화사회학

“요사히 웬만한 집이면 유성긔를 노치 안흔 집이 없스니 저녁때만 지나면 집집에서 유성긔 소리에 맛추어 남녀 노유의 [기미고히시]라는 노래의 합창이 이러난다.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그리워한다는 말인지? 부모처자 모다 [기미고히시-]라니 여긔에는 오륜삼강을 찾지 안해도 조흘가?” (조선일보 1929. 9.1일자 일요만화. (신명직 [모던 보이 경성을 거닐다]에서 재인용)

어느 문화에서나 음악은 중요하다.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한국인은 그 점에서 좀 유별나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어릴 때는 노래를 많이 부르지만 나이가 들면 급격하게 빈도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른이 되어도 노래를 자주 부른다. 뒤풀이 자리 같은 사석에서 불쑥 노래시키기가 일쑤고(특히 벌칙으로), 유원지나 관광버스에서도 쉽게 노래판을 벌이며, 종종 ‘고성방가’도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축제에서 공식적인 행사로 노래 자랑 대회가 종종 열린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노래 실력은 대단히 높은 편이다.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는 외국인들을 위한 안내 책자를 보면 한국인들과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노래 몇 곡쯤은 연습해두어야 한다고 귀띔해 주고 있다.

고대부터 이방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한국인들의 음주가무, 그 노래 사랑의 문화유산은 오랜 역사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온 듯하다. 위에 인용한 글에서 알 수 있듯이, 1930년 무렵 비싼 유성기를 사들여놓고 일본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당시 경성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도 삼삼오오 모여앉아 늦은 밤까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댔다고 하니, 동네방네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어렴풋이 짐작된다. 한국인의 유성기 수용은 애당초 노래방의 형태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열창의 에너지는 반세기를 지나 진짜 노래방의 폭발적인 신장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가라오케가 변형되어 91년 부산에서 처음 출현한 노래방은 현재 전국에 3만 5천여 점이 성업 중이다. 노래방은 식사와 술자리에 이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찾아가는 패키지 코스다. 그 놀이판에서는 지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적당히 망가져야 한다. 딱딱한 공식 질서에서 이완되어 여흥의 정서로 일체감을 느끼는 ‘커뮤니타스’의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화이트칼라의 여가 공간으로 출현한 노래방은 소비자층이 서서히 확대되어 이제 청소년들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즐겨 찾는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남녀가 부담 없이 어우러진다. 노래방은 성, 세대, 지역 그리고 계층의 차이를 가로지르는 국민적 오락 공간인 셈이다.

노래방의 매력 포인트는 무엇인가. 그 필수 요건을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 째 방이라는 폐쇄공간이다. 그 속에서는 아는 사람들끼리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놀아재낄 수 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음향인데, 그 핵심은 에코마이크다. 마이크가 없다든지, 있다 해도 에코가 되지 않는다면 환상적인 분위기는 절대 연출될 수 없다. 그리고 또 다른 음향 효과로서 곡에 따라 가미되는 코러스는 고음 부분의 힘겨운 발성을 보완해준다. 세 번째는 영상이다. 노래방이 처음 나왔을 때 붙여진 이름은 ‘비디오케’였다. 가사를 잘 아는 노래를 부를 때도 우리는 화면을 보면서 노래를 한다. 왜 그럴까? 시선 처리의 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아는 사람들끼리지만 ‘청중’들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노래한다는 것은 왠지 쑥스럽게 때문이다.

일본에도 ‘가라오케박스’라는 곳이 있지만 거기에서는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은 사람은 편안하게 구경만 해도 상관이 없다. 그에 비해 한국의 노래방에서는 거의 모두 예외 없이 ‘무대’에 서야 한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주인공으로 세워 놓고도 팬들의 대접은 시원치 않은 경우가 많다. 각자 자기의 노래를 찾느라 부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오로지 노래 실력만이 중요하다. ‘카수’는 환호를 받지만, 음치는 괴롭다. 그래서 회식자리를 기피하는 이들도 있고, 그런 이들을 겨냥해 ‘음치 클리닉’이라는 업종까지 등장했다. 그런가 하면 노래방과 함께 이비인후과 환자도 늘어났다. 시끄러운 곳에서 고함치듯 대화를 하고, 고음으로 무리하게 노래를 많이 부르다가 성대에 탈이 나는 것이다.

노래방은 어른들의 놀이방이다. 첨단의 디지털 장비와 노래자랑의 전통이 융합되어 신체의 쾌락을 증폭시키는 유흥 공간이다. 아직도 남성지배문화의 관성이 남아 있어서 노래방 도우미라는 새로운 업종이 등장했고, 이따금 일행들 사이에서도 성희롱의 시비가 붙기도 한다. 하지만 룸살롱으로 대표되던 방/밤 문화의 틈바구니에서 노래방은 비교적 ‘건전한’ 밀실로 출현하여 이후 다양한 방 문화 증식의 기폭제가 되었다. 최근에 젊은이들을 겨냥하여 등장하는 노래방들은 음습한 기운을 걷어내고 깔끔한 이미지를 내세운다. 호텔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실내 디자인, 가발과 선글라스 같은 이색적인 소품의 대여 서비스 등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현란한 건물 외양과 ‘럭셔리’한 감각으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그런 업소들을 선두로 노래방은 하나 둘씩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다.

우리는 왜 노래방을 찾는가. 축제가 실종된 사회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유희 충동이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노래방은 모두가 오로지 유쾌한 기분으로 단장하고 그 에너지를 마음껏 분출하는 순수한 놀이공간이다. 소리의 즐거움 (音樂)으로 가득 채워지는 그 시공간은 체면이라는 가면을 벗고 호모루덴스에 충실할 수 있는 자기 완결적인 가상현실이다. 외부와 차단된 그 오붓한 파티장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젖힐 수 있다. 매일 밤 그 수많은 캡슐들에서는 단란하고도 화끈한 라이브이벤트가 펼쳐진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나르시시스트가 되어 비좁은 연희(演戱) 무대에서 열창하면서 고달픈 현실을 잊는다. 저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더 넓은 세상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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