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08 17:20
수정 : 2006.02.2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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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음사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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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이책
나는 이용우가 쓴 <백남준 그 치열한 삶과 예술>을 2000년에 출판하였다.
누구나 백남준의 이름을 들어보았고 또 그를 안다고 생각할 만큼 그는 유명하다. 그리고 그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도 다양하다. 전위음악가, 비디오 예술가 등…. 그러나 그의 삶과 예술 활동을 이야기한 책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우리는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실정이었다. 그와 우리 사회가 가진 공통분모는 고작 같은 한국 태생이라는 것이 전부이지 않았을까. 나는 이 책이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여전히 오독과 오해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80년대 말 그리고 90년대까지도 유수한 미술 전문지의 평론가들이 “백남준의 작품은 어린애 장난이지 예술 작품이 아니”라는 등의 비난을 공공연히 했고, 또 민중 진영에서는 그에게 “민족이 불행을 겪는 동안에 외국에서 편안한 도피생활을 한 반동적 부르주아”라는 멸시를 서슴지 않았다.
진정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이것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전통 예술을 소개할 때 공식처럼 언급되는 말이다. 그때마다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판소리와 전통 무용 같은 몇 가지 장르로 도식화하기 일쑤다. 이 도식은 한국 예술가들에게 비빌 언덕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예술가로 인정받는 데에는 방해가 되는 걸림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백남준에게 붙는 수식어 중에 하나인 ‘한국 출생의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의 정의와 의미는 무엇일까. 그 속에 한국이 존재하기나 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그의 작품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며, 그 한국적 정체성은 어떻게 세계 문명과 만나 백남준을 세계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것일까.
백남준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한 작가와 그의 예술을 이해하려는 차원을 넘어서, 점차 글로벌화하는 세상과 마주해야 하는 한국 문화의 비전을 찾아내는 일이다. 또한 예술을 통해 동시대 세계인들과 소통하기를 꿈꾸는 문화 창조자들에게 더 없이 훌륭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인 미술평론가 이용우는 어려운 예술담론과 언론의 단편적인 소개만을 통해 알려진 백남준을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서문에서 밝힌다. 또한 백남준을 우리 문화의 틀로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동네 사람들을 아무개라고 쉽게 부르는 것처럼 백남준을 대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용우의 바람과는 달리 한국 문화를 등 뒤에 두고 태어나 서양의 전위예술 속에서 성장한 백남준에 관한 이 책은 여전히 난해한 모양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서양 예술의 현장에서 한국 태생인 백남준 같은 예술가(FROM NOWHERE)가 아방가르드적인 표현 형태를 취한다는 것은 난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백남준은 자신을 둘러싼 조건, 즉 서양의 예술적 전통이었던 거대한 예술적 정전들(CANON)에 대해서는 냉소적이었지만, 언더그라운드를 표방한 다양한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따뜻하고 이해가 깊었다. 한국적인 이 따뜻함, 마치 동대문시장처럼 굳건하고 한없이 열려 있는 그의 가슴이 앞으로 꾸준한 독자들을 견인해올 것으로 믿는다.
김수경/열음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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