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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17:21 수정 : 2005.12.09 14:03

세계인권사상사
미셸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4만원

보편적 인권 의제 강대국 국익 도구로 전락 무력침공·국제고립화 정책 빌미로 신자유주의도 인권 위협인자 ‘전지구적 인권공동체’ 대안으로 제시

바야흐로 인권 만능의 시대가 되었다. 억압을 헤치고 인간이기 때문에 스스로 존엄하여야 한다는 인권의 열정은 어느새 세속정치의 수단으로 변질된 채 무력침공의 빌미가 되거나 국제고립화정책의 핑계가 되기도 한다. 인권의 담론들은 넘쳐나되, 인권의 잣대는 자의적인 수준에서만 넘실거리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들, 집단 혹은 국가를 재단하는 또 다른 억압의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인권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위한 배려보다는 타자에 대한 억압의 현실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미셸린 이샤이의 <세계인권사상사>는 인권 본연의 의미와 이념을 성찰하게 하는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인권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억압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사서”라고 정의한다. 그녀에 의하면 인권은 메시아처럼 누군가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현장에서 권력에 균열을 내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현실에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축적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이 “패배한 사람의 희망”을 보듬어내고자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이란 일시적 투쟁에서 승리한 자가 갖는 전리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억압의 권력 앞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고자 하는 패배자의 외침이며, 그 몸부림들이 “한 줄기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전갈”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결과인 것이다.

억압받은 자들의 희망의 외침

인권은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는 말은 이 점에서 인권을 패배자들의 생활사이자 억압받는 자들의 외침으로 정의하는 것과 동일한 말이 된다. 인권의 역사는 곧 억압의 역사이다. 권력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휴머니즘이 태동하며 그 반성과 투쟁이 첩첩이 쌓여온 결과가 오늘날의 인권체계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보편적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대의 잠언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다양한 종교들을 섭렵하고 여기서 평등과 정의, 박애에 관한 종교적·세속적 보편주의를 도출해낸다. 흔히 인권은 계몽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것은 이렇게 전시대에 형성된 보편주의가 세속화와 자본주의의 과정을 통하여 발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저자는 근대적 인권이 형성되는 요인으로 종교개혁, 과학의 발전, 중상주의의 발흥, 국민국가의 공고화, 해상 원장 및 혁명적 중산층의 대두 등을 들면서도 그 설명의 내용은 억압과 투쟁의 역사로 일관한다. 근대적 인권을 형성한 모티프는 스스로를 중세적 권력과 권위로부터 억압받는 피해자 집단으로 규정하는 의식의 변화였고 그것을 해방을 향한 투쟁으로 이어내는 의지의 구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꺼지지 않고 살아남”는 혁명의 정신이 되었다.

동서양 넘나들며 보편윤리 추출


‘인간은 인간이기에 스스로 존엄하다’는 인권의 본뜻은 인권을 바로세우려는 이들과 인권을 짓밟거나 인권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어렵게 자라나왔다. 그림은 억압, 차별, 고문, 감금 등을 딛고서 인권의 참뜻을 바로 세우자는 뜻을 담아 ‘세계인권선언’ 50주년(1998)을 기념하는 앰네스티의 포스터.
저자가 현대적 인권개념이 자유시장적 자유주의로 환원될 수 없음을 애써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억압이 편재하고 그에 대한 인간성의 자각이 존재하는 한 인권을 향한 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19세기 산업화시대의 모순을 공격하였던 사회주의가 현대 자유주의 인권관의 중핵을 이루게 되는 것은 그 단적인 예가 된다. 유럽 계몽주의가 세속적이고 보편적인 인권언어를 창출하였다고 한다면, 이 언어로부터 노동자들은 보통선거권과 사회정의 및 노동자의 권리를 만들어 내었고 그것이 오늘날 주류 자유주의 사상의 핵심영역에 편입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이 책에 의하면 각각의 인권들은 이렇게 시대적으로 서로 연동되어 있으며 심지어 현대적 인권이라 지칭되는 자결권이나 문화적 권리 또한 19세기의 민족주의 담론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리고 여기서 제1세대 인권과 제2세대 인권 혹은 제3세대 인권의 구분과 그 우선순위를 두고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들은, 한 시대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인권담론을 제대로 현실화시키지 못한 역사적 과오에서부터 파생되는 것이라는 이 책의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인권의 보편성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보면 시련과 모순에 대항하는 역사 속에서 “계급, 소수민족, 성별의 차이를 초월하는 보편적 인권 인식의 합의된 총체”가 만들어짐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라크전쟁과 같이 인권의 보편담론을 빌미로 또 다른 억압을 강요하는 현재의 국면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의 권력관계를 고려하지 않는 보편적 인권의제는 강대국의 국익을 추구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시장의 압력”과 “전지구적 경제세력의 악영향” 앞에서 국가의 완충기능을 줄이고자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오늘날의 인권현실에 대한 위험요소가 된다.

저자는 이 문제들을 “지금보다 더 활성화된 시민사회”를 통해 풀어내고자 한다. 그녀는 전지구적·국지적 인권운동을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서로 다른 공간적 차원들을 계속 포괄하는 인권공동체의 형성을 제안한다. 나아가 한국어판에서 추가된 마지막 장은 좌파와 우파로 양분된 인권담론들을 성찰적으로 반성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들을 유엔과 다자간 국제기구와 현지 인권 NGO(비정부기구)들을 통하여 통합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론과 실제 인권연구 지평 넓혀

요컨대, 이 책은 인권연구가 국제정치나 법학의 부속물로만 여겨졌던 우리의 전통에 비추어볼 때 인권의 발전사뿐 아니라 역사적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인권의 이론과 실제를 실천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본격적인 인권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옮긴이가 정성스럽게 수집, 편제한 한국의 인권연대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질과 양의 책 내용을 정확한 우리말로 옮겨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인권교과서로 승화시켜 놓은 그의 의지와 노력과 함께 우리 인권의 지평을 한 단계 확장하는 너무도 소중한 디딤판이 되고 있다. 혹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향한 인권논쟁이 미국의 관타나모수용소에 내재된 패권주의를 은폐·엄폐하는 이 현실의 답답함을 깨치고자 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곰씹어 읽어야 할 책일 듯 싶다.

한상희/건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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