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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사상사
미셸린 이샤이 지음. 조효제 옮김. 도서출판 길 펴냄. 4만원 |
보편적 인권 의제 강대국 국익 도구로 전락 무력침공·국제고립화 정책 빌미로 신자유주의도 인권 위협인자 ‘전지구적 인권공동체’ 대안으로 제시
바야흐로 인권 만능의 시대가 되었다. 억압을 헤치고 인간이기 때문에 스스로 존엄하여야 한다는 인권의 열정은 어느새 세속정치의 수단으로 변질된 채 무력침공의 빌미가 되거나 국제고립화정책의 핑계가 되기도 한다. 인권의 담론들은 넘쳐나되, 인권의 잣대는 자의적인 수준에서만 넘실거리고 그에 따라 다른 사람들, 집단 혹은 국가를 재단하는 또 다른 억압의 권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인권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위한 배려보다는 타자에 대한 억압의 현실만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혼돈의 시대에 미셸린 이샤이의 <세계인권사상사>는 인권 본연의 의미와 이념을 성찰하게 하는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미국 덴버대학교에서 인권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이 책을 “억압받는 사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역사서”라고 정의한다. 그녀에 의하면 인권은 메시아처럼 누군가에 의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억압의 현장에서 권력에 균열을 내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현실에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축적된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이 “패배한 사람의 희망”을 보듬어내고자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권이란 일시적 투쟁에서 승리한 자가 갖는 전리품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억압의 권력 앞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고자 하는 패배자의 외침이며, 그 몸부림들이 “한 줄기 사라지지 않는 희망의 전갈”을 통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결과인 것이다. 억압받은 자들의 희망의 외침 인권은 피와 땀을 먹고 자란다는 말은 이 점에서 인권을 패배자들의 생활사이자 억압받는 자들의 외침으로 정의하는 것과 동일한 말이 된다. 인권의 역사는 곧 억압의 역사이다. 권력에 의하여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그 지점에서부터 휴머니즘이 태동하며 그 반성과 투쟁이 첩첩이 쌓여온 결과가 오늘날의 인권체계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책은 보편적 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고대의 잠언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을 넘나들며 다양한 종교들을 섭렵하고 여기서 평등과 정의, 박애에 관한 종교적·세속적 보편주의를 도출해낸다. 흔히 인권은 계몽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실제 그것은 이렇게 전시대에 형성된 보편주의가 세속화와 자본주의의 과정을 통하여 발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저자는 근대적 인권이 형성되는 요인으로 종교개혁, 과학의 발전, 중상주의의 발흥, 국민국가의 공고화, 해상 원장 및 혁명적 중산층의 대두 등을 들면서도 그 설명의 내용은 억압과 투쟁의 역사로 일관한다. 근대적 인권을 형성한 모티프는 스스로를 중세적 권력과 권위로부터 억압받는 피해자 집단으로 규정하는 의식의 변화였고 그것을 해방을 향한 투쟁으로 이어내는 의지의 구축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꺼지지 않고 살아남”는 혁명의 정신이 되었다. 동서양 넘나들며 보편윤리 추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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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인간이기에 스스로 존엄하다’는 인권의 본뜻은 인권을 바로세우려는 이들과 인권을 짓밟거나 인권을 정치에 이용하려는 이들 사이에서 어렵게 자라나왔다. 그림은 억압, 차별, 고문, 감금 등을 딛고서 인권의 참뜻을 바로 세우자는 뜻을 담아 ‘세계인권선언’ 50주년(1998)을 기념하는 앰네스티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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