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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18:04 수정 : 2005.12.08 18:04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국소설 때문에 크게 낙담한 적이 있었다. 문학으로 세계관을 형성했고 대표적인 문학출판사에서 15년 동안 일한 적이 있던 터라, 우리 소설의 위기 징후를 읽었을 때 다소 흥분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주례사 비평’이 사라져야 문학이 산다고, 아니 죽지 않는다고 외쳐댔다.

내가 그렇게 외쳐댄 이유는 일간지와 문학전문지 등이 지면을 사유화하고 평론가들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작가들만을 일방적으로 찬사하는 일이 조금 더 지속되면 문학은 곧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불난 줄도 모르고 잔치판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고 지르는 소리니 목소리가 다소 거칠었다. 그렇다고 해도 ‘명예훼손’으로 고발까지 당하고 나니 더 화가 났다. 그래서 진취적인 평론가들과 함께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란 책까지 펴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는 한국문학이라면 되도록 모르쇠 했다. 주변의 평론가들에게 재미있는 소설을 추천받아 읽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서점에 들를 때면 언제나 부아가 났다. 서점의 서가에 집중 진열돼 있는 소설책 가운데 우리 소설은 그야말로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나는 우리 소설이 부활하는 것 같은 징후를 여러 차례 느꼈다. 일본에서 만난 한 친구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고 너무나 많이 울었다고 했다. 논픽션 저자로 한때 명성을 날렸고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 소설을 수십 명에게 선물했다고 했다. 주변에 알아보았더니 이 소설을 읽고 울었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산울림소극장에서 윤석화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사로 ‘읽어본’ 김별아의 <영영 이별 영 이별>은 구어체 문장이 가진 힘을 한껏 느끼게 했다. 죽어서야 너무나 사랑했던 단 한사람의 정인에게 돌아갈 수 있었던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숨 한 번 끊지 않고 굽이굽이 쏟아내는 애절한 사연에 나는 종종 손수건을 꺼내야 했다. 계단까지 꽉 찬 가운데 벌어진 공연에서는 관객들의 훌쩍거림이 적지 않았다.

최근 한국일보문학상 최연소 수상작가인 1980년생 작가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가 다시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올해 창비 신인소설상 수상작가인 김사과는 1984년생이다. 이 두 사람은 영상문법을 주로 익히는 극작과 출신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들의 당찬 모습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나는 그들의 소설을 읽어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은 완숙미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새로운 ‘문법’이 돋보였다.

일본에서는 지난해에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의 와타야 리사와 <뱀에게 피어싱>의 가네하라 히토미가 각기 19살과 20살의 나이로 아쿠타가와상을 공동수상해 화제가 되었다. 그것을 소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영상세대를 소설로 되돌리기 위한 고육책으로 본 사람이 없지 않았다.

김애란과 김사과가 ‘등장’한 배경도 그와 같을지 모른다. 이유야 어쨌든 이들의 소설은 기존의 소설문법으로 보면 가볍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영상세대의 경쾌한 상상력은 가득하다. 우리 문학이 ‘절망’의 긴 터널을 지나 제대로 된 도약을 하려면 이들처럼 새로운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가들이 더욱 많이 등장해 새 시대를 주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달려라 아비>는 이미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두 작가의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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