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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욱/대한주택공사 도시정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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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계획 전문가 20여년간 쓴 기고글 모음 시청광장·청계천 복원… 수십년전 혜안 놀라워
나는 이렇게 읽었다/강병기 ‘삶의 문화와 도시계획’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 시민연대(도시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있는데, 그 이름이 좋아 무작정 평생회원이 되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도시를 고민하는 전문가연하면서 단체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즈음 ‘걷고 싶은 도시’와 비슷한 ‘살고 싶은 도시’ 또는 ‘살기 좋은 도시(마을)’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1990년대 중반 민선 지방정부 시대가 열리면서 확산된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개념은 주민들이 바라는 도시의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삶의 문화와 도시계획>의 저자 강병기 선생은 도시계획 전문가로 일찍이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지금도 도시연대 대표로서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이 책에는 글쓴이가 도시·건축물을 바라보는 마음이 그대로 담긴 듯하다. 건축가·도시계획가들은 건축물이나 도시를 물리적 대상으로 보기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도시를 늘 못마땅하게 보는 듯하다. 이에 대한 답으로 글쓴이는 “도시 계획에서 높은 하늘 위의 시점에서 접근하는 것과 지상의 보통사람 눈높이에서 접근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면서, “비행기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듯이 지도 위에서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 그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도시계획이 무엇인가를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고 대갈하고 있다. 이 책은 글쓴이가 19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도시계획전문가로 활동하면서 기고한 글 가운데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골라 낸 50여개의 토막글을 모은 책이다. 복개된 옛 서울 문리대 앞 대학천에 맑은 물이 흐른다면 진정 문화의 거리에 걸맞았을 것(사라진 시냇물, 1985)이라고 아쉬워하는데, 20년이 흘러 청계천을 뒤덮었던 도로가 뜯겨지고 시원한 물이 청계천을 다시 흐르고 있으니, 글쓴이의 혜안이 놀랍다. “무주택 서민들의 주택문제를 해소한답시고 그나마 아쉬운대로 살 수 있는 잠자리를 빼앗아 가는”(병주고 약주는 아파트식 재개발, 1989) 상황에 안타까워했지만, 지금도 되풀이 되고 있는 산등성이의 고층아파트 건설에 대한 해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3~4분이면 될 직선거리 3~4백m의 거리를 20~25분 걸려 길을 찾고 헤매며 계단을 오르”는 상황을 비판(‘시청앞’에서 시청까지, 1971)하면서 “광장에서 시민들이 지상을 유유히 건너게 하라”고 해법까지 제시했다. 글쓴이는 도시연대와 함께 시청앞 광장만들기 운동을 오래 동안 이끌면서 2004년 광장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다. “근대 도시계획의 이념이 시민사회 중산층의 사회이념을 바탕으로 한 가치관과 철학에서 유래”되었음을 지적하면서, 도시정부와 계획가는 지역과 주민이 가려워하는 데를 긁어 주어야 하며(논높이 도시로 가는길, 1990), 도시의 주인은 인간이어야 하고, 도시를 만들어 가는 것은 도시계획가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아니고 주민이어야 한다고 설파(앞으로의 도시계획, 1985)했다. 내 마을(도시)을 주민의 눈으로 보고 주민의 손으로 만들고자 벌이고 있는 살기좋은 마을 만들기나 살고 싶은 도시 만들기를 20여년 전에 이미 예견했나 보다. ‘관제가 아닌 최초의 민간주도형 이벤트’를 통해 한옥 보존지구 주민들이 시 당국과 ‘신뢰적인 관계’를 형성한 것과 ‘사회적으로 절실한 건축적 문제에 발 벗고 나선 건축가 집단’이 생긴 것을 기뻐했는데(가회동 주거계획의 의의, 1991), 이러한 관심은 현재 도시연대가 ‘인사동 가꾸기’의 중심에 서서 활동하는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자신의 삶터를 ‘살고 싶은 도시(마을)’로 스스로 가꾸어 가려는 주민에게, 주민참여형 마을가꾸기에 관심이 있는 시민단체 활동가나 계획가·행정가들에게 계획의 철학과 전문성을 높여줄 수 있는 좋은 가르침이다. 안상욱/대한주택공사 도시정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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