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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08 18:29 수정 : 2005.12.09 14:02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신여성
‘수유+너머’ 근대매체연구팀 지음. 한겨레신문사 펴냄. 1만7000원

일제시대 잡지 ‘신여성’ 통해 본 근대 여성 풍속사 힘센 일제 앞세선 벌벌 기면서 애꿎은 모던걸에 화풀이한 식민지 남성에 대한 신랄한 비판 담겨

젊은 박사급 여성들이 떼로 모여 일제시대에 나온 도색잡지를 읽는다. 도색잡지라고 했거니 <선데이서울>에 비하면 아주 근엄한 표정인 <신여성>이다. 하긴 <선데이서울>이 이제 당대를 읽은 텍스트가 된 터니 <신여성>에서 근대 여성 풍속사를 읽겠다는 시도는 그럴 법하다.

<신여성>은 어떤 잡지인가. 1923년 9월~1926년 10월, 그리고 1931년 1월~34년 6월 천도교 계통에서 낸 월간지로 70~76권 발행됐다. 영화, 말장난 수준의 담화, 이혼 연애 정사 등 실화와 가십 등 일반인의 흥미를 끌 내용이다.

명동은 동경·유혹·허영의 장소

호별로 그럴 듯한 주제 - 결혼, 의복 개량, 신여성 고민거리. 여학생, 제2부인, 직업부인, 부부생활 등을 정해 폼을 잡지만 역시 흥미 위주다. 여기에 여성계, 여학생 소식 등 자잘한 이야기를 더하고 중간에 우스개와 정보성 상자 넣고 말미에 문예물을 버무려 놓았다. 볼거리 사진을 화보로 곁들여 화사한 여인 그림으로 표지로 둘렀다.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내세움으로써 당국의 검열에 걸릴 염려 없지, 돈도 쑬쑬하게 들어오지 아주 괜찮은 아이템의 잡지다. 처음 낼 때 30전, 복간 때는 10전 더 낮춰 20전. 찾는 이가 하도 많아 다 읽은 것을 값을 쳐주고 돌려받아 다시 팔았다. 믿거나말거나.

젊은 여성 학자들이 이 잡지에서 읽어낸 것은 뒤틀리게 그려진 신여성 뒤에 도사린 남성성이다. 거대한 제국주의 앞에 한없이 쪼그라든 식민지 남성! 기껏해야 전체 여성인구 가운데 0.03%에 불과한 3천명 정도의 여학생을 가학적인 시선으로 잡아내어 돈벌이 수단으로 삼은 남성성이라니 오죽하겠는가.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 신여성>(한겨레신문사 펴냄)은 속이 거북할 정도로 신랄한 식민지 남성 비판서다. 큰 깡패 앞에서는 벌벌 기면서 골목길에서 여성을 괴롭히며 힘자랑하는 동네깡패임을 폭로한다. <신여성>이란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들이대며 현장검증을 하는 여성 수사관 앞에서 남성들은 죄나 지은 것처럼 쪼그라들어야 한다. 신여성한테 가학적이었던 식민지 남성만큼이나 신랄하다. 자~ 원산폭격 준비.


<신여성>은 여학생의 순수가 침해되는 것을 걱정하고 대안을 내는 식의 대양한 담론을 도출함으로써 거꾸로 순수로서의 여학생을 환기한다. 여학생에게 교복은 신분 표지이기도 하고 기생과 쉽게 구별하여 타락에 빠지지 않도록 감시의 시선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연애와 문학취미를 넘어 유행가 부르기, 짧은 치마, 굽높은 구두, 다리꼭지, 목도리, 혁대 등으로 휘갑한 모던걸이 등장하자 남학생들과 공유했던 정신적 취약성과 미숙성은 여학생만의 것으로 비난한다. 여성이 근대성의 체현자로 등장하자 실패한 존재로서의 식민지 남성들이 여성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다는 거다. 일종의 두려움.

‘신여성’에 실린 안석주의 만문 만화 ‘처음 상경한 여학생의 공부’. 여학생들이 공부는 뒷전인 채 허영과 사치를 일삼는다며 비난하고 있다. <매체로 본 근대 여성 풍속사-신여성>에서
두려운 여성은 ‘못된 걸’ 즉 모던걸로 표상된다. 그들은 다르게 차림으로써 ‘구’가 아닌 ‘신’이었고 자유연애, 신식가정이 가능했다. 흰 저고리와 검정 통치마, 트레머리 또는 단발, 굽높은 구두가 상표였다. “단발요? 꼴도 보기싫습니다. 소위 모던 걸이라는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나요.” 총각 좌담회에 나온 한 남자의 말이다. 신여성이 애용하는 전차와 버스는 신여성의 얼굴에 까맣게 붙은 게 코딱지가 아닌지 살피고, 가방에서 군밤이 굴러나오거나, 지갑에서 궐련이 떨어져 얼굴 붉히는 것을 보며 고소해 하는 장소가 된다.

33년 봄 창경원 야간 입장객 26만명

진고개(지금의 명동)는 동경의 장소이자 유혹과 허영의 장소. 무엇을 사느냐보다 그곳에서 사는 일이 중요한 곳이었다. 데파트는 여점원이 초점. 사장한테 유혹당하거나 거스름돈을 잘못 계산한 것이 빌미되어 주임한테 정조를 빼앗기는 곳이다. 허영의 공간이자 여성을 타락시키는 사악한 공간으로 기술된다. ‘함께 데리고 산보하는 여자’를 뜻하는 ‘포터블’이란 유행어가 있을 만큼 산보가 유행했다. 33년 봄 창경원 야간 입장객 26만명. 청량리, 노량진, 흑석리, 신촌은 휴식처였다. 피서는 남녀가 눈 맞아 연애하는 장소로 이해됐다. 짧은 운동복의 여학생은 좋은 눈요깃거리였다.

<신여성>에서는 가장 치사스런 꼭지는 ‘색상자’와 ‘은파리’.

색상자는 신여성에 대한 견문을 전하면서 평을 곁들이는 형식. 미끄러지면서 치마가 찢어지거나 다리꼭지가 빠져 망신당한 여학생, 극장을 매일 드나들어 기생취급 받았던 여선생, 성적 불만을 이유로 이혼소송을 낸 젊은 아내, 부자의 첩이 되었다가 접대부가 된 미모의 여인, 여우털 목도리 때문에 배추장수한테 망신당하는 모던걸 등을 등장시켜 조롱하고 창피를 준다. 방정환 등이 필자라는 ‘은파리’. 미행을 가장해 객관적인 척 하지만 주관적이고 관음적인 시선이 드러날 뿐이다. “가늘고 어여쁜 종아리” “목구두가 치마 끝을 얄근얄근 쳐가면서 걷는 맵시” 등등. 신여성을 대상으로 ‘본다’와 ‘보여준다’를 넘나들며 쾌락을 즐기는 극소수 식민지 남성의 도착성이 드러난다. 이밖에 신여성의 허영을 꺼리로 하는 우스개, 사전, 어록, 십계명 등에는 눅눅한 남성의 시선이 묻어있다.

신여성이 대중문화의 소비자로 끊임없이 호출되는 것도 특징. 극장은 서양의 쇼윈도. 새 감각을 일깨우는 요술경이자 퇴폐와 소문의 온상이었다. 그럼에도 매혹적이어서 <신여성>은 영화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신여성은 유행가에 열광하여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라는 ‘사의 찬미’가 10만장 대박을 터뜨린다.

신여성 훔쳐본 ‘색상자’·‘은파리’

그들은 몸소 스타의 대열에 나아갔으니 칠칠치 못한 남성들에게 얼마나 위태롭게 보였겠는가. 여학생들의 동성애는 미숙한 이의 과도기 욕망으로 치부하고 나혜석, 윤심덕, 김원주 등 신여성들의 연애 비화를 보도하여 관찰하는 남성들에게 낯섦을 넘어 불쾌감을 불렀다. 그러나 젊은 연구자들은 <신여성>이 과학적인 사고를 장려하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강조한 것은 일제에 의해 암암 조장된 측면이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들은 신여성을 둘러싼 식민지 남성들의 깽판이 ‘오래된 현재’로서 지금도 반복됨을 암시한다. 미국이 강요하는 세계화 앞에 주눅든 남성들이 만만한 여성을 식민지 삼아 횡포를 부리지는 않는지. 쪼그라든 남성들은 반성할지니.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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