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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외과의사 제너가 소들만 걸리는 질병인 우두 균을 팔에 접종함으로써 천연두를 예방하는 종두법을 아이에게 시술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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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인도서 ‘콧구멍’ 예방법 개발 아랍인들 칼로 상처내 균 넣는 인두법 영국으로 넘어와 우두법으로 거듭나 동서양 의학 구분 불필요 보여주는 사례 다른 동물종 넘나드는 질병 연구 계기도
의학속 사상/⑨ 제너와 종두법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했지만 질병과의 전쟁에서 인간은 여전히 열세이고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그러나 인간이 완전한 정복을 선언한 유일한 질병이 있다. 그것이 바로 천연두다. 1980년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천연두의 근절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인류는 비로소 이 무서운 질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난 것이었다. 천연두는 오랫동안 모든 인류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질병에 걸리면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앓으며 고열, 두통, 요통, 구토 등에 시달린다. 사나흘 지나면 붉은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기 시작해 며칠 안에 고름으로 가득 찬 농포로 바뀐다. 이 병변은 대부분 얼굴에 생기지만 눈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환자가 살아남으면 딱지가 형성되었다가 다음 몇주 안에 떨어지면서 흉터를 남기게 된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의 20~40퍼센트가 사망하며 살아남은 사람도 얼굴이 얽어 흉하게 외모가 변하거나 눈을 침범한 경우는 그로 인해 눈이 멀기도 한다. 17, 18세기 동안 전체 런던 인구의 3분의 1이 천연두의 흉터를 갖고 있었으며 눈이 먼 사람의 3분의 2가 천연두로 인해 시력을 잃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불과 2, 30년 전까지만 해도 천연두로 얼굴이 얽은 사람을 보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 많은 전염성 질병이 그러하듯이 천연두도 언제 처음 인류사에 나타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집트에서 발견된 미이라의 얼굴에서도 얽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천연두는 이미 오래 전에 인류사에 모습을 드러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사들은 이 무서운 질병에 대해 오랫동안 치료법을 찾아왔다. 고대 중국과 인도의 의사들은 한번 천연두에 걸리면 그 뒤 다시는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만약 약하게 천연두를 앓게 하면 나중에 심하게 앓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천연두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딱지를 취해 가루로 만든 다음 은으로 만든 관을 사용해서 이 가루를 한쪽 콧구멍 안으로 불어 넣었다. 만약 대상이 남자이면 가루는 왼쪽 콧구멍으로, 여자이면 오른쪽 콧구멍으로 불어 넣었다. 가루가 6개월이 넘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흡입한 사람은 대개 약한 천연두를 앓았다. 이러한 예방적 조처를 목격한 영국의 상인 조셉 리스터는 왕립협회의 회원에게 편지를 써서 이 방법을 영국에서도 실행할 것을 권고했지만 이 회원은 이 방법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라 얼굴서도 천연두 흉터 그러는 사이에 아랍인들은 다른 방법을 개발했다. 그것은 건강한 사람의 팔에 칼로 작은 상처를 내고 천연두의 농포에서 얻은 물질을 절개한 부위 안으로 밀어 넣는 방법이었다. 콘스탄티노플에 살던 터키 의사 엠마뉴엘 티모니는 이 방법에 큰 매력을 느끼고 영어로 이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책을 썼다. 그는 1715년 이 책을 영국에 배포했으나 이 책은 영국 의사들에게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인두법이 서구에 소개되고 널리 사용된 데에는 몬테규 부인의 구실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터키의 영국 대사로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 터키에 갔는데 1717년 거기서 천연두에 걸렸고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흉하게 얽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안 터키 의사 티모니는 몬테규 부인에게 그 해에 태어난 몬테규 부인의 첫딸에게 천연두를 예방하는 방법을 시술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설득했다. 몬테규 부인은 동의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인두법의 효과를 확인한 몬테규 부인은 이 방법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런던의 왕립의사회원 세 명을 초대해 인두를 접종받은 자신의 딸을 보도록 했다. 그 딸은 본 이들은 당시 왕립의사회의 회장에게 인두법을 지지하도록 주장했다. 대중 매체에 대한 감각도 있었던 몬테규 부인은 영국에서 이루어진 첫 번째 인두시술에 신문기자들을 불러 이 사실을 널리 알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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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 완치 혁신의술 그 출발점은 동양의학 ‘제너와 종두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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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석/연세대 교수·의학철학 isyeo@yumc.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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