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15 18:41
수정 : 2005.12.16 15:47
|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임헌영 지음. 한길사 펴냄
|
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민족 운명을 닮은 삶이 도달한 진실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은 지난 반세기에 걸친 리영희 선생의 지식인으로서의 내적 성장과정에 관한 자전적 회고록이자 우리민족의 시대적 수난사의 진실에 관한 증언이다. 칠순을 넘긴 나이에도 언제나 뜨겁게 되살아난다는 고향땅 평북 대관에서부터 낯설고 물선 남한 땅 진해로, 서울로, 삼팔선 최전방으로 떠돌았던 선생의 유랑은 일제식민지와 해방, 미군정과 6·25로 인한 우리민족의 뼈아픈 이산의 역사와 바로 닿아있다. 또한 <합동통신>과 <조선일보> 외신부 기자에서 대학교수가 되었다가 군사정권에 의해 해직과 복직을 거듭해온 선생의 이력은 4·19와 5·16, 뒤이은 군부독재와 광주항쟁이라는 우리시대의 격변의 역사적 현장에 직결되어 있다. 한 개인의 지적 성장사가 한 민족의 시대적 운명과 이토록 밀착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생의 일평생이 얼마나 치열한 저항의 연속이었는지가 쉽게 드러난다.
물론 억압의 시대에 선생이 걸어온 길은 언제나 이 땅의 풀뿌리 민중이 강요당해왔던 비참한 삶과 한 길이었다. 일제 말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던 학창시절은 가난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모습 그대로였고, ‘여수·순천 반란사건’과 6·25 전쟁 때 선생이 목격했던 산야에 널린 시체들은 바로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힘없고 무고한 민중이 바쳐야 했던 희생의 모습이었다. 군부독재시절 감옥을 드나들면서 선생은 독재타도를 외치는 민중의 저항과 늘 함께 있었고, ‘광주폭동 배후조종자’로 몰렸을 때 또한 선생은 자기들을 보호해주리라 기대했던 자국군대에게 배반당한 광주의 민중과 함께 있었다. 선생은 언제나 이 땅의 억압받는 민중과 함께하면서 시대의 진실을 통찰해왔던 것이다. 그 진실이란 다름 아니라 한반도의 민중에게는 지배자의 모습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굴종을 강요하는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해방과 이승만, 박정희 정권의 몰락, ‘서울의 봄’과 같은 몇 번의 반전 계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번번이 민중의 염원은 좌절되고 사회변혁은 실패해왔던가?
|
“굴종의 여사 고리를 깨라” 웅혼한 일갈 <대화: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임헌영 지음. 한길사 펴냄
|
굴종의 역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평생에 걸친 국제정세 연구를 통해서 선생이 깨닫게 된 두 가지 근본적 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먼저 미국의 본질에 관한 진실이다. 그것은 베트남 전쟁에서 지금의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지배집단의 본질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에게 약소국가들에 대한 국제조약이나 협정의 준수를 기대한다는 것은 아예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선생은 힘주어 말한다. 왜냐하면 미국 자본주의는 그 본성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잔인무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약소민족에 대한 전쟁 없이는 그 제국주의적 경제, 정치, 군사, 과학기술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확신”이 바로 선생이 얻은 국제관계의 진실이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약소민족들이 조금이라도 민주적 복지와 자립적 경제정의를 추구하려고 하면 바로 미국이 자신들이 지원하는 반동적인 군부로 하여금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조종해왔던 아시아와 남미의 역사가 증언해주고 있다.
굴종의 역사가 계속되는 데에는 “대한민국은 독립국가가 아니라 반식민지”라는 이 시대 우리 민족이 처한 상황의 본질도 관계하고 있다. 미군정 시절부터 지금의 평택미군기지 이전 확장에 이르기까지, 또 베트남 참전에서 지금의 이라크 파병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군사, 문화적으로 지속되고 있는 대미종속적인 상황이야말로 우리의 운명을 근본적으로 좌우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종속성이 반복, 심화되는 핵심에는 한국사회 지배엘리트들의 종속적 성향이 자리 잡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정권은 말할 것도 없고, 문민정부마저도 모두 본질적으로 대미종속적인 정권이었고, 그 권력의 끄트머리에서 충실한 통역자 역할을 자청했던 한국의 지배엘리트들은 한결같이 토착 민중과는 유리된 집단이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국의 다수 동포들에게는 주인노릇을 했지만 제국의 지배층에게는 종노릇을 해왔다. 한국사회가 겪어왔고, 또 겪고 있는 총체적 난국의 핵심에는 늘 이러한 엘리트 계층의 해바라기적 속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은 간혹 우리 민족의 유전자적 결함을 들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이 두 가지 역사적 요인 때문에 한국의 현대사가 파행을 면치 못함을 이 회고록에서 명확히 밝힌다. 이런 점에서 선생의 회고록은 단순한 후일담이 아니며, 선생의 일생도 과거의 민주투사들이 오늘날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박제된 전리품일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도 여전히 한국과 미국의 지배세력의 본질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선생은 책의 말미에서 이런 상황을 생각할 때 당신의 여생이 길게 남지 않은 것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긴다고 하신다. 선생에겐 축복이라지만 앞으로도 이 땅을 살아갈 후손들에겐 비통한 현실이다. 선생이 일생을 두고 깨달은 두 가지 진실 앞에서 우리의 미래를 타개할 어떤 방안이 있는가? 갈수록 극심해지는 생존경쟁의 상황에서 점점 더 그악스러워지는 탐욕과, 개발광풍으로 파헤쳐지는 이 산야와, 그 와중에 마른 낙엽처럼 굴러 떨어지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이 상황이 변경될 가능성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이것은, 한국 현대사를 가장 떳떳하게 살아온 한 고결한 지식인의 감동적인 회고록의 마지막 페이지를 닫으면서 우리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쩔 수 없는 물음이다.
박혜영/인하대 영문과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