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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19:25 수정 : 2005.12.16 15:48

<20세기 한국민중의 구술자서전> 이균옥의 지음, 소화 펴냄

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장삼이사가 풀어낸 그시절 살아온 얘기 6권에 가득히

어린시절, 어머니한테 유독 ‘인공때 얘기’ 해달라고 졸랐다. 고향 사람들은 6·25를 인공때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48년 여순사건때부터를 이름한다. 어머니가 해주는 그 인공때 얘기를 나는 무척 즐겼다(?). 밤에 산사람들을 피해 쌀뒤주 속에 들어간 일, 어머니가 정확히 알고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몰라도 나주돌격대부대가 ‘뿔갱이 찾아내라’고 동네사람들을 산으로 내몰던 일(결국은 그로 인해 외조부는 토벌대에 의해 학살당하고 말았다) 들이 다 내가 본 것마냥 눈앞에 훤히 떠오르고 어머니가 두 손을 불끈 쥐고서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 대한남아 가는데 초개로구나, 하는 노래를 부를 때면 나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나는 그러니까, 옛날간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직접 겪은 얘기, 옛날에 옛날에 백년묵은 여우가 사람 홀린 얘기가 아니라 어머니가 살려고 애쓴 얘기를 듣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밤이면 밤마다, 어머니의 역사를 애기하며 울며 웃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서울로 돈 벌러 가고 없는 기나긴 그 밤들을 그렇게 어머니는 견디었던 것이다.

그런 이력이 있어서인가. 나는 어딜 가나 노인들을 만나면 반갑다. 잘하면 내가 좋아하는 옛날 얘기, 그 양반들 살아온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이 어디 유명한 관광지를 여행하러 간다면, 나는 늘 사람들 얘기 들으러 가는 여행을 꿈꾼다.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며 천지사방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듣기. 그것도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 이야기를 그 시대를 직접 산 사람으로부터 육성으로 듣기.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차다.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은 그 어떤 스펙터클 영화보다도 더 스펙터클하다. 장강보다 더 유장하다. 수심가보다 더 한스럽고 남도 육자배기보다 더 흥겹고 ‘쏘주’보다 쓰다. 그맛을 내가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

부두 노동자로 한평생을 살아온 전북 군산 선양동의 서동호(72)씨의 아버지 회갑 기념잔치(위). 경북 영일군 죽장면 산간마을 팔순 농사꾼 김제수씨의 처 임귀순씨가 1975년 어느날 동네 아낙들과 함께. 소화 제공
나는 많은 자서전을 보았다. 돈 많은 사람들 자서전은 안 보았다. 유명한 사람들 ‘저전에세이’도 본 둥 만 둥하였다. 그러나, 많은 민중자서전을 보았다. 90년대 초반인가,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민중자서전을 보았는데, 거기에는 사공, 강강술레 하는 할머니, 베짜는 할머니, 남편 바래는(기다리는) 경상도 양반집 할머니, 옹기 만드는 전라도 할아버지가 입말 그대로 자기 인생을 이야기한다. 그 전에 입말로 된 책을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책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것은 그냥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채록자가 엮은 것일 뿐이다. 그것은 그 사람들 살아온 얘기가 아니다. 그 사람들이 들은 얘기를 한 것일 뿐이다. 구비문학대계도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민중자서전이 내게는 훨씬 재미있었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직접 살아온 얘기니까. 다른 사람의 생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는 언제나 손에서 땀이 난다. 신문에서 <20세기 한국민중의 구술자서전>이라는 책이 나왔다길래 나는 책방으로 달려가 여섯권이나 되는 책을 주저없이 사들고 집으로 왔다. 마치 만화책 사들고 집에 오는 아이들처럼 열에 들떠서.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이런 책을 엮는 사람들은 늘 ‘민중’의 고생담만을 부각시키는 것일까. 그리고 구술하는 ‘민중’들은 왜 유독 고생담만을 부각해서 얘기하는 것일까. 나는 언젠가, 전태일 열사에 관한 얘기를 누군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열사인 그도 인간이었고, 인간인지라 그에게는 엄숙한 면모도 있지만 재미있는 면모도 많았다는 얘기. 바보회니, 삼동회 친구들하고 어디 야유회 같은 데 가면 신나게 그리고 재미있게 춤도 추고 농담도 하고 낄낄거리기도 하고…. 나는 우리나라 ‘민중’들이야말로 정말 몸으로 웃음을 생산해 낼 줄 하는 ‘능력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조건이 혹독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몸 안 가득 ‘유모아’를 머금는다는 것을. 외조부 돌아가시고 유복자로 태어나서 초등학교 ‘졸업 맡고’ 서울로 올라와 평생 목수로 산 우리 외삼촌이 그랬다. 사는 게 힘들수록 사람은 ‘유모아’를 잃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고 보니 외삼촌이 바로 48년도생, 전태일 열사와 동갑이다. 어쨌든 <20세기 민중자서전>에 나오는 민중들에게서도 나는 사는 게 힘들어도 결코 잃지 않은 ‘유모아’, 달리 말해 삶을 향한 긍정을 본다. 가령 ‘장게맹갱외에밋들’ 사람, 최병호의 경우는 어떤가. 첫 번째 부인하고 사별하고 어디에 어떤 여자가 위가 아픈 채로 혼자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밥이나 줄 요량으로’ 그 여자한테로 가서 ‘맘에 들면 와라’고 한다. 그랬더니 여자가 일주일 만에 보따리 싸들고 그에게로 왔다. 그래서 최병호와 아픈 여자는 평생을 해로했다. 최병호가 ‘잔탁’을 먹이고 ‘암포젤엠’을 먹여서 여자는 86살까지 살았다. 남대문시장 사람 김관숙도 그 삶이 빈틈없이 고달픔의 연속이었지만 끝끝내 ‘평화의 기조’가 흐른다.

아무리 삶이 힘들고 괴로워도 ‘유모아’를 잃지 않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도 마음만은 여유로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그 구술의 주인공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 앞에서 하염없이 ‘정직’으로 일관했기 때문은 아닐런지.

공선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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