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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신영복 지음. 돌베개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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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관계’를 키워드로 본 <시경>에서 <중용>까지 워낙 글을 귀히 여긴 나라다보니 ‘글을 쓴다’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존재한 지는 오래되었다. 다만 글을 넘어 ‘저자 의식’을 가지고서 책을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저술가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한 사람으로는 다산 정약용을 꼽을 수 있을 테다. 그가 남긴 방대한 <여유당전서>에는 본인이 손수 수정하고 첨삭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다산이 저자라는 의식을 갖고 책을 썼던 것은 출판시장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유배라는 혹독한 시련을 견뎌 살아남기 위한 한 방편이었다. 과거 성현들과의 만남을 미래의 독자들에게 ‘강의’하는 방식으로 써내려간 것이 그의 글이다. “200년 후의 독자들은 내 뜻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며 글을 맺는 대목들에서 저술에 임한 그의 마음가짐을 헤아려 볼 수 있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는 제목에서 잘 나타나듯 학생들에게 동양고전들을 강의하는 형식으로 짜여진 책이다. 저자는 젊은 시절을 몽땅 감옥 속에서 보낸 사람이다. 그러니 이 책 속에는, 마치 다산의 글들이 그러하듯 고독과 괴로움을 버텨내던 체험이 곳곳에 배어 있다. 다산이 후세를 향해 과거의 지혜를 논했듯, 저자 역시 ‘과거 속에 깃든 미래’를 젊은이들에게 강의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절망의 강을 건너본 사람들의 글은 깊고 온유하다. 외골수의 쇳소리가 아니라 겹겹으로 쌓인 삶의 진실을 꿰뚫는 그윽한 눈길이 깃들어 있다. 저 멀리로는 사마천의 <사기>가 그러했고 또 다산의 글이 그러한데, <강의> 역시 그러하다. 부드럽되 강직하며, 옛 것을 논하되 미래로 난 길을 가리키는 팽팽한 긴장이 책 전체를 감싸고 있다. 사실 동양고전을 강의하기는 쉽지 않다. 수 천 년 묵은 동양사상의 진실을 오늘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몇 겹의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우선 한문으로 된 원문을 한글로 풀어야 한다. 또 옛날 동양이 농경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사회였던 반면 오늘 우리는 개인적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으니 번역은 또 한번 해석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글로 풀어놓긴 하였는데 무슨 말인지 통 알아먹지 못하는 일이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더구나 저자의 지적처럼 “오늘날 당면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기” 위해선 현재 우리네 삶의 문제에 대한 통찰력도 겸비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의 손가락은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 “일과 놀이와 학습이 함께하는 세계”, 즉 미래를 가리키고 있기까지 하다.이토록 세 겹 네 겹의 고개를 넘어 동양고전을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기란 정녕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동양고전의 면면들을 깊숙하면서도 요령 있게 해설하고 또 전달하는 데 이 책이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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