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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15 21:00 수정 : 2005.12.16 15:51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지음. 부키 펴냄

한겨레가 전문가와 함께뽑은 2005 올해의 책 50

머릿속 화~악 정리해주는 경제 처방전

흔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골탕 먹이려는 수작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즈음 부쩍 많이 출간되고 있는 대화집에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충돌하며 펼칠 말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일 터다. 거기에다 ‘격정대화’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그 기대치는 더 극대화하게 마련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는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꼬일대로 꼬인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나름대로 속 시원한 처방전을 내놓을 거라 예상되는 제목에,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이 한판 붙었을 테니 흥미진진할 거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전형적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논리를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받아 더 깊이있고 더 쉽게 풀어주고 있는 꼴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나서 불쾌감이 일어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인 바 머릿속에서 빙빙 돌기만 하던 개념이 확실해지고,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뜨이고, 오랫동안 얹힌 속이 확 풀리는 듯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왜 ~하면 할수록 ~해지는 걸까”라는 관용구로 요약할 수 있다. 왜 개혁을 하면 할수록 우리 경제의 종속성은 심화되는 것일까, 왜 재벌을 손보면 볼수록 외국자본만 이득을 얻는 것일까, 왜 수출이 늘어나는데 내수는 죽고 노동자는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일까 등속이 그것이다. 지은이들은 그 이유가 오늘의 정권 담당층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신자유주의에 있다고 명토를 박는다. 신자유주의는 저투자·저성장·고용불안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금융자본주의가 기업경영 시스템을 장악한 것이 신자유주의니만큼 당연하다고 한다. 이 정도는 우리의 멱을 바짝 조여 오는 세계화라는 망령의 정체를 고민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구체적 사례로 영국병을 분석하는 데 이르면, 바야흐로 ‘무림의 고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누가 영국병을 일으킨 주범이 망국적인 노동운동이라 했던가. 과격한 노동운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으니, 금융자본이야말로 병원체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보다 힘이 세다보니 파운드화가 강세를 유지하게 되었고, 제조업체들은 경쟁력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주주 민주주의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기업들이 단기이익만 좇다보니 장기투자나 기업운영을 포기하게 되었다. 어디 이게 남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던가.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과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라고 지은이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수출 느는데 왜 내수 안살까 경제 속병 해부해보니…
문제는 박정희다. 박정희 노선의 성공은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상당히 문제적이지만 설득력이 높다. 자본가들의 투자·소비·자본의 유출을 통제한, 반시장주의적이며 국가주도형 개발의 현재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이처럼 돋을새김한 데는 전략적 차원의 발상이 끼어들어 있는 듯싶다. 시장에 정부가 개입할 때 비로소 신자유주의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을 위해 흔들어 깨운 유령 때문에 과거의 생채기가 다시 돋아났다.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는 없었고 임금이 많이 올랐다는 데서 위로를 찾으라는 말은, 지난 시대의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다. ‘면죄부’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재벌이다. 재벌이 경제성장을 위한 시스템이었다는 주장부터 반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소액주주 운동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이 외국투자자들과 금융자본에게만 이익을 준다는 분석 역시 논쟁을 유발한다. 또한 안기부 도청사건에서 볼 수 있듯 정치권력마저 장악하려는 재벌의 형태를 염두에 둔다면, 지은이들의 주장은 빛이 바랜다. 게다가 정책당국자들이 이 대목만 편의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할 때 벌어질 일을 가상한다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러나 지은이들의 현실론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유럽식으로 재벌 시스템의 일부는 인정하되,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보수혁명’의 시대다. 지은이들의 말대로 “신자유주의는 과거에 민주주의로 인해 빼앗긴 권력을 되찾자는 이론”일 뿐이다. 그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무리가 누구일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을 지은이들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 명명하고 있다. “시장과 공공성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적인 정권일수록 (양극화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적 안정망을 확충하고,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이다.

일부러 좋은 책이 무엇인가 정의한다면, 읽고나서 지은이와 논쟁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무엇을 올해의 책으로 뽑아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뜨거운’ 책이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보기 드물게 이 두 조건을 두루 만족시키고 있다.

이권우/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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