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15 22:33
수정 : 2005.12.1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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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골드
가일스 밀턴 지음. 이충섭 옮김. 생각의나무 펴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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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이슬람 해적에 납치
23년간의 노예살이 모험담
영화로운 술탄 궁전 ‘재발견’
1715년 여름. 영국 남서쪽 바닷가 펜린 마을. 학교가 싫증 난 11살 토머스 펠로우는 바다로 내빼기로 작정하고 이탈리아 제노바로 가는 삼촌의 배에 탄다. 돌아오는 길, 이슬람 해적의 포로가 되어 모로코의 수도 메크네스로 끌려간다. 이슬람으로 강제 개종한 뒤 술탄의 노예군으로 복무하다가 왕비의 눈에 들어 할렘 문지기가 된다. 밤에는 모든 방문객을 내쳐야 한다는 명령을 받은 그는 마침 저녁때 그곳에 들어오려는 술탄을 총을 쏘아가며 되돌려보낸 사건 뒤 충성심이 인정되어 술탄의 수행원으로 발탁된다. 그곳에서 결혼해 아이를 낳고 반란군을 토벌하는 선봉에 서는 등 23년동안 노예살이를 하다가 1738년 천신만고 끝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가호’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화이트골드>(생각의나무 펴냄)는 이런 스토리의 얘기다. 화이트골드는 몸값이 비싼 백인노예의 별칭. 그의 이야기는 생환 2년 뒤인 1740년 <토머스 펠로우의 남부 바르바리에서의 오랜 억류생활과 모험에 관한 이야기>로 출판된다. 이 바탕에 당대의 대사·사제의 기록, 편지, 일지들을 참조해 재구성 한 게 이 책이다.
읽는 법은 대략 세 가지. 첫 머리처럼 주인공의 잡힘과 고난 그리고 귀환이란 줄거리를 따르는 것.
두번째는 ‘해적의 나라’ 모로코가 엄연한 술탄국가였다는 발견으로서의 읽기다.
수도 메크네스의 왕궁이 화려하고 장대하기는 베르사유 궁전에 비할 바 없었다. 궁전수비를 하자면 1만2000명이 병사가 필요했다. 궁전 건물을 일렬로 세우면 65킬로미터쯤. 가장 큰 궁전은 알 만수르 궁. 4가 넘는 높이에 초록색 광택 타일로 장식된 스무 개의 대형 천막이 얹혀졌다. 공사는 끊임없어 매일 3만명의 인력과 1만마리의 노새가 동원됐다. 성벽은 세 겹, 맨 바깥쪽 벽엔 총안을 낸 탑이 만들어졌다. 왕의 창고는 모로코 전역에서 거둬들인 1년치 수확량을 보관할 만큼 컸고 마구간에는 최대 1만2000마리의 말을 수용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말은 거룩한 오줌이 땅에 떨어지지 않게 노예들이 그릇을 들고 대기했다. 술탄은 극단의 공포와 변덕을 수단으로 한 전제군주. 그의 심심풀이는 노예 머리 자르기, 노예 짝짓기. 한번은 800명을 모아놓고 짝을 맺어주었다. 흑백을 조합해 자녀들의 피부색이 어떻게 나오나 즐겼다.
쿠데타 실태도 상세하다. 술탄 물라이 이스마엘이 80세로 사망하면서 형제간 살육이 벌어진 것. 둘째아들 에데헤비가 정권을 잡지만 금요 모스크에서 포도주를 토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친위대가 형 압델말렉을 술탄으로 옹립한다. 결국 형과 아우는 치열한 전투 끝에 나라를 반분키로 하고 휴전하나 동생의 텐트에 들렀던 형이 감금 살해된다. 하지만 그 역시 나흘 뒤 독이 든 우유를 마시고 사망한다. 권좌는 배다른 동생 물라이 압달라한테 넘어간다.
세번째 방식은 숨은 그림 찾기. 주인공이 모로코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때는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하던 때와 일치한다. 모로코에 잡힌 유럽 백인은 인간이어서 구출 대상이었던 반면 아프리카 노예는 사냥과 부림의 대상인 짐승에 불과했다. 유럽인들은 모로코에 여러차례 협상단을 보내 몸값을 내고 백인노예를 풀어내는 한편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 아메리카로 팔아넘겼다. 이러한 모순은 세네갈에서 맞닥뜨린다. 주인공 펠로우가 술탄의 명으로 1731년 원정대를 이끌고 2,400km 사하라 사막을 건너 세네갈에 이르러 노예 사냥을 할 때 프랑스인들 역시 노예 수집원정대를 이곳에 보냈던 거다. 가증스럽기는 마찬가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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