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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5 06:00 수정 : 2019.02.15 19:50

에센스 B국어사전
편집부 지음, 황상준 그림/프로파간다·1만5000원

‘2018년 신조어 테스트’라는 제목이 궁서체로 적혀 있다. ‘#3개 이상 모르면 넌 그냥 아재’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함께 붙었다. 아래 신조어 중 의미를 아는 것을 체크하란다. 심심하니까 한번 해보자. ‘①댕댕이 ②갑분싸 ③혼코노 ④띵작 ⑤별다줄 ⑥롬곡 ⑦렬루 ⑧TMI ⑨애빼시 ⑩엄근진’ 이 정도는 전부 알고 있다고? 자신은 금물이다. 곧 올해 탄생한 ‘2019 신조어 테스트’가 나올 테니까.

신조어 테스트가 아재력 검증의 척도가 된 지 오래다. 매년 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그해 나온 신조어들과 친절한 해설이 우후죽순 등장한다. <에센스 B국어사전>은 최근 나타난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어휘만 뽑아 설명한 사전이다. ‘갓 구운 빵을 보자마자 동공지진’, ‘신나게 질렀더니 통장이 텅장...ㄸㄹㄹ’처럼 상황에 맞는 충실한 예문도 덧붙였다. 사전에 실린 거의 대부분의 어휘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생활 속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표현이다보니 가히 사전 아닌(非) 사전, 비(B)급 단어만 모은 사전이라 할 만하다.

사전에 등장하는 신조어들은 그 자체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법+미꾸라지’의 줄임말인 ‘법꾸라지’의 뜻은 해박한 법지식을 이용해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우병우와 같은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의 행태를 꼬집으면서부터 쓰였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문레기’(문과+쓰레기), ‘문레기노답’(‘문과쓰레기는 답이 없다’의 줄임말) 등 문과 출신이 스스로를 비하하고 자조하는 단어에는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운 인문계 학생들의 현실이 담겼다.

사전은 ‘소추’(소(小)+고추. 가슴크기가 작은 여성을 비하하는 일부 남성들의 발언 패턴을 따라한 것)처럼 첨예한 젠더 갈등에서 비롯된 신조어들도 그 단어가 만들어진 배경을 비교적 충실히 설명한다. 그러나 ‘차별적 표현’들이 구체적 설명 없이 쓰인 신조어도 없진 않다. ‘병신이 따로 없네의 줄임말’로만 설명한 ‘병따없’처럼, ‘병신’에서 파생된 신조어 8개(병따없, 병맛, 병맛짤, 병먹금, 병설리, 병신미, 병신타임, 병크) 가운데 ‘병신’이 장애인을 비하하는 용어라는 해설은 없다. 뿐만 아니다. 사전에서는 ‘스시녀’를 ‘일부 한국 남성들이 한국 여성보다 순종적이라며 일본 여성을 추어올리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스시녀라는 단어가 보통 ‘기가 센’ 한국 여성에 빗대어 사용되는 맥락을 고려하면, 이는 일본 여성들을 ‘추어올린다’기보다는 ‘남성의 말을 잘 따르는 여성’으로 대상화하는 여성 혐오적 표현에 불과하다.

‘일밍아웃’, ‘덕밍아웃’이 보편적인 신조어로 쓰이기 시작했을 때, 한켠에서는 이같은 신조어가 성소수자들의 언어인 ‘커밍아웃’을 가볍게 소비하는 행태는 아닌지 고심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처럼 신조어 하나에도 이를 둘러싼 배경과 의미는 복잡다단하다. <에센스 B국어사전>은 신조어들이 왜 나타났고 어떻게 쓰이다 소멸했는지, 그 과정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구성원들이 성찰할 지점은 무엇인지 곰곰이 짚을 수 있는 재미있는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황금비 기자 withbee@hani.co.kr

열쇳말

동공지진: 동공이 마구 흔들리는 상태.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사물이나 사람을 봤을 때, 혹은 당혹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나타나는 현상.

ㄸㄹㄹ: 또르르. 눈물이 흐르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일밍아웃: 일베+커밍아웃(coming-out). 자신이 온라인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활동한다는 것을 주변에 밝히는 행위. 또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

덕밍아웃: 덕후+커밍아웃. 숨겨왔던 덕후(오타쿠, 오덕후)로서 정체성을 주변 사람들에게 밝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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