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2 06:01
수정 : 2019.02.22 19:14
싱글여성 둘과 고양이 넷의 동거
삶의 질을 위해 시작한 한집살이
‘다름에 촉 곤두세우기’도 중요해
‘조립’하니 부품과 다른 완성품돼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김하나·황선우 지음/위즈덤하우스·1만4800원
비혼과 관련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비혼이 1인 가구를 뜻한다는 생각이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1인 가구가 가장 기본적인 형태임은 분명하지만, 한국처럼 집값이 비싼 곳에서, 특히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에 머무는 경향이 있는 상황에 1인 가구만을 고집한다면 삶의 질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집에서 사용하는 소모품은 묶음으로 구매해야 저렴해지고, 반려동물이 있다면 출장이든 여행이든 집을 비우기가 쉽지 않으며, 집을 구입하려면 혼자 힘으로는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비상시에 발생하는데, 일상적으로 서로 돌보며 만일의 경우 응급처치를 위해 병원에 함께 가 줄 사람이 필요해진다. 이쯤에서 “그러니까 결혼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면, 이 책부터 보시라.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김하나, 황선우 두 사람의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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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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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인 두 사람이 함께 살기로 하고 은행의 도움(대출)을 얻어 아파트를 구입했다. 마음에 맞게 인테리어를 손봐 각자 함께 살던 고양이 두 마리씩 모두 네 마리를 데리고 여섯 식구의 동거를 시작했다. 하쿠, 티거, 고로, 영배는 그 고양이들의 이름.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이 둘이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동거 2년차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묶은 에세이다. 둘의 글이 번갈아 실렸고, 곳곳에 집의 여섯 식구 사진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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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우.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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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을 받아 집을 사 같이 살기로 했다고? 둘은 오랜 절친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같은 성별에 동향 출신, 출신학교도 같고 나이도 한 살 차이인 두 사람은 트위터를 통해 만나, 알고 지낸 지 6년 정도 됐다. 김하나는 카피라이터 출신으로 현재 작가, 팟캐스트 진행을 하는 프리랜서이며, 황선우는 <더블유 코리아>(W Korea) 에디터로 오래 일한, 현역 직장인이다. 둘을 묶은 끈이 지연도 학연도 아닌 취향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취향의 공동체에 공간을 부여한 셈. 결혼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작은 쉽지”라며 고개를 저을지도 모른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산다는 것은 두 세계가 합쳐진다는 것이고, 이 두 사람은 사십여 년간 고정된 생활습관의 절충이라는 큰 산을 넘어야 했다. 빈 틈이 있으면 물건으로 채우는 황선우의 짐 규모를 김하나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감각(“물건들의 대왕릉”)에 웃음이 나는가 하면, 각자가 가져온 테팔 전기주전자 중 어느 것을 남기느냐 같은 어이없는 일로 싸운 일에는 둘 다 신선은 아니었군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테팔 전기주전자는 결국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비혼공동체를 확산시키는 데도 적극적이다. “김하나는 친구들의 중심에서 모임을 만들고 이끄는 작은 대장 같은 사람이었다”는 책 속 말처럼, 새해 첫날에는 같은 아파트로 이사 온 친구들을 불러 떡국 4인상을 차리고, 친구들이 뭉쳐 함께 휴가를 가거나, ‘망원 스포츠 클럽’이라고 이름까지 붙인 운동 모임과 음주를 곁들인 뒷풀이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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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황선우는 자신의 집에서 자주 파티를 연다. “‘더 큰 가족’,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이 책이 나오면 우리는 또 파티를 할 것이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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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읽다보면 동거인으로 서로에게 헌신하는 만큼 서로의 다름에 촉을 곤두세우고 살아가는 일 역시 중요하구나 싶어진다. “둘만 살아도 단체생활이다.” 황선우의 옛 직장 상사가 한 말이라는데, 혼자 살기 베테랑이라 해도 여섯 식구 살림은 말할 것도 없겠다. 특히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두 사람의 금전 감각이 다르다는 부분도 눈길을 끄는데, 일단 직장인 명의로 대출을 받고, 프리랜서는 매달 이자 납입과 상환에 더해 목돈이 들어오면 비정기적으로 크게 갚기로 했단다. 이 모든 과정에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필요함은 물론인데, 대출을 받고 나니 돈갚기의 즐거움을 알게 되어 쇼핑을 끊고 악착같이 대출금을 갚아 1년 만에 대출의 절반을 상환했다고. 함께 살기로 결정한 첫 순간의 믿음은 실생활에서의 실천이 없이는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의 부제는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이다. 조립하고 나니 크기만 달라지지 않고 부품의 생김과 완전히 다른 완성품이 태어났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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