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8 18:40
수정 : 2019.02.28 19:39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민음사·1만3000원
창작 수업찰스 부코스키 지음, 황소연 옮김/민음사·1만3000원
“최악의 숙취는/ 정신을 차려 보니 자동차 안, 낯선 방, 어떤 골목, 감방일 때/ 찾아온다.// 최악의 숙취는/ 깨어 보니/ 간밤에 악랄하고 무지하며/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게/ 분명한데/ 그게 무엇인지 통 기억나지 않을 때/ 찾아온다.// 깨어나면 여러모로/ 무질서한 상황에 있기 마련./ 몸은 여기저기 멍들었고 돈은 없어졌고 차가 있다면 차도 사라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숙취’ 부분)
찰스 부코스키(
사진·1920~94)의 매력은 거침없는 솔직함과 도발에 있다. 실제 삶에서나 글에서나 남들이라면 삼가고 피할 만한 언행을 그는 주저 없이 펼쳐 보인다. 자신의 치부를 과감하게 까발리고, 마찬가지로 신랄하게 남들을 씹는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수컷’의 향기를 풀풀 풍기는 부코스키를 가히 문학적 ‘멸종 위기종’이라 할 수도 있겠다.
민음사 세계시인선 48번과 49번으로 나란히 나온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와 <창작 수업>은 부코스키가 죽기 2년 전 ‘지구를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의 시: 창작 수업’(The Last Night of the Earth Poems: Creative Writing Class)이라는 제목으로 낸 생전 마지막 시집을 두 권으로 분권한 책들이다. 말년의 시들이라고는 해도 그답게 거칠고 씩씩한 어조는 여전하다. 술과 담배, 고속도로 속도 경쟁, 경마, 세차와 주차,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청년기 등 사소하다 못해 진부한 일상사에서 건져올린 소재, 이른바 시적 장치와 형식 실험 없이 평이하면서도 날카로운 어조로 일관하는 문체 역시 반갑다.
“새파란 애송이 시절/ 내 삶은 술집과 도서관으로 양분돼 있었다./ 그 외에는 일상을 어떻게 꾸려 갔는지 모르겠다./ 그쪽으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책이나 술이 있으면 다른 생각은 나지 않았다./ 바보들은 자신의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법이다.”(‘면도날 같은 낮, 쥐들이 들끓는 밤’ 첫 연)
인용한 시에서 보듯 술집과 도서관은 ‘주정뱅이 작가’ 부코스키를 만든 두 축이었다. 그가 소모적인 알코올 중독자나 처세에 능한 위선적인 문사가 되지 않은 비결이 술집과 도서관 사이의 ‘균형’ 덕분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낮과 밤을 도서관과 술집으로 나누어 살며, 가난과 시련을 글쓰기로 승화시킨 부코스키의 문학관은 ‘시’라는 제목을 단 작품에 간명하게 요약되어 있다.
“헤아릴/ 수/ 없는// 절망// 불만// 환멸을// 겪어야/ 나오는/ 것이// 한 줌의/ 좋은/ 시.// 시는/ 말이지// 아무나/ 쓰는/ 것도/ 아니지만// 아무나// 읽는/ 것도// 아니라네.”(‘시’ 전문)
그처럼 날것으로서의 생체험에서 우러난 시를 주창한 그가 문예창작 수업에 부정적이라는 사실은 당연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는 절대 창의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것”(‘창작 수업’)이 대학 문예창작 강의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최재봉 기자, 사진 민음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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