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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08 06:00 수정 : 2019.03.08 20:16

일러스트 장선환

[책과 생각] 이숙인의 앞선 여자

일러스트 장선환
논개(論介, ?~1593)는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의녀(義女)다. 1593년 7월, 왜적에 맞선 진주성은 군관민의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함락되고 말았다. 이 참사로 성 안에 있던 군인과 민간인이 전멸했는데, 죽은 사람의 수가 조선 쪽 기록으로 6만 명, 일본 쪽 기록으로 2만 명이었다. 어느 쪽을 택하든 당시 인구를 감안할 때 전투의 참상을 전해주기에 충분한 숫자다.

성이 함락되자 왜군은 촉석루에서 전승 축하연을 벌이게 되고, 기생 논개는 그들의 여흥을 돕게 된다.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 강 가운데 있는 바위 위에서 마주 춤을 추다가 춤이 한창 무르익어 갈 즈음에 그를 껴안고 시퍼런 강물에 몸을 던져 함께 죽는다. 그녀의 거사는 승리에 도취된 왜군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논개의 순국 사실은 바로 다음해인 1594년 순안어사로 하삼도의 피해상황을 살피러 온 유몽인에게 전해지고, 나중에 그의 저서 <어유야담>(1621)에 수록된다. 지역사회에 파다했던 논개의 순절이 기록으로 등장한 것은 일이 있은 지 30여년이 지나서이다. 당시만 해도 여자가 나라의 충신이 되는 상황이 어색했다. 남자는 나라를 위해 존재하고 여자는 남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원화된 성별 구도에서 논개의 거사에 이름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열녀라고 해야 할지 충신이라 해야 할지, 이후에 전개된 논개 담론의 역사에는 이런 고민이 들어 있다. 아무튼 당시 순국한 장수들은 충렬의 이름을 얻어 사당으로 들어가지만, 논개의 넋은 150여년이 지난 1740년(영조 16)에 비로소 사당 의기사(義妓祠)에 안치된다.

충렬로 나라의 승인을 받은 논개는 대부분의 역사 인물이 그렇듯 각색되고 첨가되는 과정을 거친다. 최초의 기록 <어우야담>에서 진주 기생이던 논개는 전북 장수 출신의 주논개(朱論介)로 보완된다. 진주성 3장사의 한 사람인 황진(黃進)을 따라 왔다고도 하고, 의병장 최경회의 후처 또는 첩으로 함께 왔다고도 한다. 최근 해주 최씨 종회에서는 최경회 장군의 부실 ‘주논개 부인’으로 확정하고 있다. 즉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 최장군이 전투의 패배로 자결하자 기생으로 가장, 적장에 접근하여 남편의 원수를 갚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논개는 충신이 아니라 충신의 아내 열녀가 되는 것이다. 논개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이런 이야기들이 짓밟힌 나라의 자존심에 몸을 떨었을 한 어린 여성의 정당한 분노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지역이든 문중이든 논개를 자신들 가까이 두려는 것은 그녀를 ‘소유’함으로써 얻게 될 이익도 이익이려니와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가 귀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 인물 논개는 많은 사람들을 흥기시켰다. 무엇보다 그녀는 진주 기생들의 자존심이었다. 논개를 사모한 시를 남긴 진주 기생 산홍(山紅)은 을사오적 이지용을 향해 “내가 비록 기녀지만 어찌 당신 같은 역적의 첩이 되겠느냐”며 꾸짖었다고 한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온세상이 매국노 앞에 무릎을 꿇고 금과 옥이 지붕보다 높지만, 산홍을 얻기는 어렵구나!’라며 이지용을 기롱한다. 황현은 논개를 기리는 시에서 “천년의 기생 역사에 한 줄기 빛을 발했다”고 썼다.

논개의 신분이 양반인지 천민인지, 기생인지 부인인지를 따지는 것은 논개 담론의 곁가지에 불과하다. 지속적으로 논개를 소환하는 우리의 의미, 그것이 본가지다. 1780년 진주를 방문한 다산 정약용은 <진주의기사기>(晉州義妓祠記)라는 글에서 논개 시대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에 의하면 성이 함락되려고 할 때 이웃 고을에서는 군사를 끌어안고만 있을 뿐 보내주지 않았고, 조정에서는 공을 세운 이들을 시기하여 지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그래서 아주 튼튼했던 진주성이 왜구의 손에 떨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논개의 등장은 황현의 말처럼 한 줄기 빛이 아닐 수 없다. 당파적 이익에 빠져 적군을 응원하는 믿지 못할 상황이 옛 기록인지 어제 자 신문인지 분간하지 못하겠다. 어디에 희망을 걸어야 할까. 옛날에도 그랬다면, 지금도 이름 없는 어떤 논개는 공동체를 위해 마음을 다 하고 있지 않을까.

이숙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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