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08 06:01
수정 : 2019.03.0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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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에서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남성약물강간 카르텔의 패배’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여성을 대상으로 약물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판매자 포함), 약물 범죄를 방관하고 동조한 정부, 여성을 상품화해 재화로 거래한 클럽, 클럽에서 뇌물을 받고 피해자의 증언 및 고발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찰 등을 규탄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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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이민경의 유연하고 단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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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앞에서 ‘남성약물카르텔 규탄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남성약물강간 카르텔의 패배’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최근 버닝썬 사건과 관련해 여성을 대상으로 약물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판매자 포함), 약물 범죄를 방관하고 동조한 정부, 여성을 상품화해 재화로 거래한 클럽, 클럽에서 뇌물을 받고 피해자의 증언 및 고발을 의도적으로 은닉한 경찰 등을 규탄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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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한 사람이 홍대 미술학원 휴게실에 나체로 누워 있던 남성의 몸을 동의 없이 촬영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여느 불법촬영 사건과는 다르게 사건을 신속히 처리했고 촬영자를 포토라인에 세웠다. 남성이 피해자인 사건에만 응답하는 국가에 여성들은 분개했다. 분개한 여성 모두는 불법촬영의 피해자였다.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불법촬영의 대상이 되어 피해를 겪은 여성이 수없이 많은 까닭이고, 여성 가운데 그런 경험이 없는 이라고 하더라도 일상에서 항상 그것을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전자에 속하는지 후자에 속하는지 결코 알아낼 수 없다는 데 있었다. 이 사건 전에는 아무리 피해를 호소하고 대책 마련을 요구해도 외면당하기 마련이었던 여성들은 여태까지 들을 수 없던 응답을 듣고자 혜화역에 모였고 ‘불편한 용기’라는 이름의 시위를 여러 차례 벌였다. 남성이 피해자일 때에만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규탄하고 평등한 수사를 촉구하기 위함이었다. 불법촬영 의제로 혜화역에 군집한 여성의 수는 약 10만명이었다.
올해 2월,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한 남성이 클럽 내부에서 성폭력을 저지하려다 남성 경찰들에게 폭행당했다. 이 사건은 만약 한 여성이 클럽에서 약물 강간을 당한 일이었다면 결코 이슈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민간인 남성이 클럽 내부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막으려다 되레 남성 경찰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전말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던 흔히 ‘물뽕’이라 불리는 약물의 유통과 그를 사용한 강간을 부각시켰다. 지난 5월과 마찬가지로 여성들은 분개했다. 클럽에 발을 디딘 여성 가운데 약물 강간을 당하지 않은 여성은 있어도 그것이 자신을 한 발 차이로 비껴갔음을 모르는 여성은 없기 때문이었다. 여성들은 지난 2일, 같은 장소인 혜화역에서 이번에는 약물 범죄를 규탄하는 첫 번째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모인 여성의 수는 약 2천명이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의제를 불러일으킨 두 사건이 같은 장소에 여성들을 불러 모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루가 지날수록 점점 더 그 거대한 실체를 드러내는 ‘버닝썬 게이트’ 혹은 ‘약물 카르텔’은 ‘웹하드 카르텔’과 똑같은 것을 매개로 똑같은 것을 얻기 때문이다. 바로 여성의 몸과 돈. 피해자의 성별에 따라 수사의 속도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어떤 공간에서 어떤 성별의 안전만이 침해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며 부정의인지, 절대로 차치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애써 제쳐 두고 볼 때 실체는 무척이나 선명해진다. 이 나라에서 남성은 푼돈을 얻기 위하여, 돈을 쌓기 위하여, 돈을 쓰게 하기 위하여, 돈을 돌게 하기 위하여 여성의 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돈은 여성의 몸을 통과하여 끊임없이 불어난다. 우리, 여성의 몸은 동의는커녕 고지도 없이 팔려 나간다. 그렇게 불어난 돈은 팔려 나간 여성의 주머니 아닌 어떤 남성들에게로 흘러 들어간다. 이곳은 오로지 남성만의 나라다. 정의와 평등은 고사하고 교환된 대가도 제게 돌아오지 않는 나라를 어떻게 나라라 부르겠는가.
작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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