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5 06:00
수정 : 2019.03.15 20:03
드론·엘리베이터·하수구 등 다루며
높고 낮은 곳에 무엇들이 있는지
사회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 살펴
‘새 마천루 필요하다’ 주장 비판도
수직사회-새로운 공간은 어떻게 계층의 격차를 강화하는가스티븐 그레이엄 지음, 유나영 옮김/책세상·2만8000원
초고층 아파트가 있다. 슈퍼마켓부터 은행, 수영장, 초등학교까지 편의시설이 완비된 하나의 도시와 같은 공간이다. 사는 층수에 따라 입주자의 계급이 나뉘는데, 상층부의 내려다보는 자와 하층부의 올라가고자 하는 자 사이의 계층 대립을 수직적으로 구현한다. <하이-라이즈>(2015)라는 영화 내용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가 계층을 기차라는 수평 공간으로 보여준 것과 비교해 생각해보라.
경계를 논할 때 전통적으로 지정학이라는 이름의 국가 지리의 정치학이 자주 동원되는데, 지정학은 지도와 지구본 상에 배치된 국민국가들의 각축에 대한 연구다. 하지만 건축학자 에얄 와이즈만은 “지정학은 평평한 담론”임을 지적한다. 수직적 차원을 거의 무시하며 경관을 ‘펼쳐서’ 둘러보는 이런 평면적 전통은 현대 국민국가를 수립하고 제국주의 확장의 기반이 되고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유효한 도구였으나 이제는 수평에서 수직으로 이해를 넓혀야 한다. <수직사회>의 스티븐 그레이엄은 영국 뉴캐슬대학 글로벌도시연구소의 도시와 사회 전공 교수이자 도시설계자다. 이 책에서 그레이엄은 수직적·단면적 조망의 힘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삼차원 세계의 정치학을 도시생활과 도시와 지리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 편입시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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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앤드리아 스타 리스의 ‘도시 동굴' 프로젝트는 미국 뉴욕 맨해튼의 수천명 규모의 터널 거주민을 다룬 작품이다. 터널 거주민인 척이 거리 밑 지하 깊숙한 곳에 마련한 보금자리. 책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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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사회>는 공학과 역사학, 사회학, 지질학, 고고학, 철학 분야의 논의를 동원해 수직화하는 사회의 물리적 핵심 구조에 대한 논쟁을 이어간다. 언어학적으로 볼 때도 높고 낮음은 감정적이고 계급적인 층위에 있다. 언어학적으로 ‘낮음’은 부정직함, 무력함, 저속함, 부도덕을 암시한다. 상층과 하층으로 계급을 지칭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4000년 묵은 힌두 율법에 따라 머리부터 발까지 신체의 가장 높은 부분부터 계급을 나누어 설명한다. <수직사회> 1부는 ‘위’를 논하며 인공위성(수수께끼의 존재), 폭격기(위에서 떨어지는 죽음), 드론(로봇의 제국), 엘리베이터(수직상승), 마천루(허영과 폭력), 고층주택(호화로운 하늘), 공기(죽음의 돈) 등을 다루고, 2부는 ‘아래’를 말하기 위해 지하실(도시의 땅 밑), 하수도(사회학과 똥), 벙커와 땅굴(지하의 피신처) 등을 다룬다. 높고 낮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 사회의 다른 부분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를 살핀다.
엘리베이터-마천루-고층주택으로 이어지는 논의는 한국의 대기업과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와 관련해 참고할 만하다. 엘리베이터는 최소한 2000년의 역사를 지녔다. 로마 콜로세움에서 야생동물과 검투사를 경기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예들이 윈치를 감아 작동시키는 엘리베이터를 12대 썼다. 인간이나 동물의 동력 이상을 사용할 수 있기까지는 1850년대까지 시간이 필요했지만. 더 빠르게, 더 크게, 더 안전하게 발달해온 엘리베이터는 건축과 공학에서 하늘 높은 곳으로의 이동에 근본적 요소였다. 엘리베이터가 생김으로써 다층주택 환경의 사회지리가 바뀌었다. 서유럽 구도심의 주택에서 꼭대기 층은 기피되기 마련인데, 그 이유는 엘리베이터의 부재와 관련 있다. 화장실과 수도시설이 부재했던 때에는 특히 그랬다. 한편 엘리베이터는 공적이면서 사적이고, 폐쇄되었으나 침투할 수 있고, 주변 건축 공간과 분리된 동시에 통합되어 있다. 영화와 실생활에서 엘리베이터는 기업 내의 서열, 사회경제적 출세나 성적 내통(혹은 약탈)의 욕망, 공용 공간의 민주화 등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다. 경제지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경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국내총생산(GDP) 보고서, 고용 통계, 소비지출 흐름을 건너뛰고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가?”에 답하면 된다고 했다.
엘리베이터 덕분에 점점 늘어나는 마천루의 경우는 어떨까. 도시 밀집을 개선하고 무질서한 거대도시화를 억제하고 나아가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등의 목적으로 새로운 마천루들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프랑스 도시학자 장마리 위리오에 따르면 속 빈 강정이다. 일반적 빌딩과 비교할 때 초고층빌딩의 건축 및 운영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든다. 최근 초고층건물에는 실제 면적은 줄고 엘리베이터 승강로와 배관 등이 매설되는 공동구만 간신히 들어가는 ‘허영의 높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에너지만 잡아먹는, 개발업자나 초부유층의 오만에 바치는 기념비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오사마 빈 라덴은 토목공학을 전공했는데, 2001년 9·11 테러 중 뉴욕 쌍둥이빌딩 테러에 갈채를 보내며 “이 테러가 겨냥한 건축물이 수직으로 솟아오른 것을, 전능한 이슬람의 신이 지상의 인류를 천상에서 지배한다는 그의 근본주의적 우주지리 개념을 모독하는 예로 들었다.” 고층건물이 갖는 상징성이 테러의 목표물이 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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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도시계획가 하비 와일리 코벗이 미국 잡지 <포퓰러 메카닉스>에 발표한 미래 도시의 상상도. 책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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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주택은 수익 마진이 저가 주택 시장의 수익을 훨씬 초과하기 때문에 도시는 초고가 주거용 타워로 포화상태가 된다. 하지만 <수직사회>가 일방적인 비판이나 비난을 위해 쓴 책은 아니다. 고층 공동주택에 대해 이 책에서는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를 언급하는데, 두 곳 다 (한국처럼) 땅이 부족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중 싱가포르의 사례를 주목할 만하다. 싱가포르는 우수하고 비교적 저렴한 공동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여러 재정 지원책과 엄격한 규제에 나섰고, 현재 550만 싱가포르 인구의 80%가 공공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수직사회>는 아래보다 위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데, 이런 부분마저 역설적으로 사회가 어느 부분에 사유라는 자원을 더 많이 쓰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초고층건물만큼이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하수구와 하수구의 거주자들 이야기는 소설과 영화를 동원한 오싹한 논픽션이 된다. 드론과 벙커 대목은 ‘위’와 ‘아래’가 군수산업 엘리트들에 의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앞서 도시공학적 측면을 중심으로 한 탐구보다는 다소 가볍게 훑고 지나가는 정도로 언급될 뿐이라는 사실은 아쉬운 점이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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