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03 06:01
수정 : 2019.05.03 19:40
노벨평화상 수상한 나디아 무라드
‘이슬람국가’의 성 노예 피해 증언
가해자 고발과 연대 중요성 일깨워
더 라스트 걸나디아 무라드·제나 크라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북트리거·1만7800원
“나의 소망은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이야기하는 모든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나디아 무라드가 2018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미투 운동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한 말이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무라드의 어머니와 형제들을 처형했고, 그를 성 노예로 삼았다. 무라드는 자신의 피해 경험을 고발했다. 무라드의 에세이 <더 라스트 걸>은 그가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내용이자, 이슬람국가의 학살로 흩어진 가족과 공동체가 정상적으로 기능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책이 시작하고 5장까지는 11남매의 막내였던 그의 성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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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무라드가 2017년 6월 전쟁 성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유엔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이라크 신자르의 쿠르드족 군인들을 만나고 있다. 신자르/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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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드는 헌사를 “이 책은 야지디를 위해 쓰였습니다”라고 썼는데, 야지디에 대한 이해는 무라드가 겪은 일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야지디는 이라크 모술, 터키 디야르바키르, 이란 일부 지역, 아르메니아 등지에 분포된 종파다.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유대교, 네스토리우스파의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적인 요소가 혼합된 종교로, 고대 일신교다. 야지디가 믿는 대천사 타우시 멜렉을, 많은 이라크인은 악마 같은 존재라고 부른다. 무라드가 살았던 코초는 작은 야지디 마을이었는데, 그들은 이라크인에게 악마 숭배자라고 불렸고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야지디는 미국이 적으로 여기는 누구에게도 충성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미국의 신뢰를 얻었고, 이라크전쟁 당시 많은 야지디가 이라크군이나 미군의 통역을 맡거나 다른 일을 도왔다. 하지만 무라드의 가족은 경제적으로는 늘 곤궁한 쪽이었다. “야지디가 이라크에서 가장 빈곤한 공동체로 꼽히긴 했지만, 우리 가족은 코초의 기준으로도 가난했다.”
이슬람국가가 코초 외곽에 들어온 것은 2014년 8월3일 해 뜨기 전 이른 아침의 일이다. 그날 밤에는 아무도 자지 않았다. 이슬람국가가 인근 마을 몇 곳을 불시에 공격해, 야지디 수천 명이 집을 떠나 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내 피난 행렬은 규모가 줄어들었다. 뒤에서 무장단체원들이 이슬람 개종을 거부하거나 피란하지 못한 이들을 마구 죽이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만이 문제였던 건 아니었다. 수니파 아랍 이웃들은 무장단체를 환영했고, 도로를 차단해 야지디의 피신을 막았으며, 텅 빈 마을들을 약탈했다. 야지디를 위해 싸우겠다고 맹세한 쿠르드족은 말도 없이 도망쳤다. 무라드가 수니파 아랍족인 학교 선생님을 믿고 전화했을 때, 도와달라는 요청이 거절당했을 때, “그 순간 내 안의 뭔가가 변했다. 아마도 영원토록. 누군가 도와주리라는 희망을 버렸다.”
코초 마을의 사람들은 집에 격리되어 얼마간 시간을 보냈다. 전사로 훈련받은 남자들은 실력을 증명하고 싶어했지만 그들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여자들은 이슬람국가 대원들이 남자들을 죽이러 오면 숨길 장소를 찾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무라드를 포함한 야지디는 이슬람국가가 그들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 남편과 사별한 뒤 이란-이라크전에서 아들을 모두 잃은 나이 든 여자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고 거의 집에 틀어박혀 지낸 사람이었다. 이슬람국가 대원들은 그 여자가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자 방에 들어가 불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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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 무라드가 2018년 10월8일 미국 워싱턴에서 노벨평화상 수상 결정 이후 첫 기자회견에 나섰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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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걸>은 모두 3부로 되어있다. 야지디의 문화와 이라크 내에서의 위치, 이슬람국가의 학살이 시작되는 부분까지가 1부, 학살이 본격화되며 무라드의 가족이 살해당하고 그가 성 노예가 되어 폭력을 당하는 부분까지가 2부, 3부는 탈출한 뒤의 이야기가 된다. 이 모든 과정이 <더 라스트 걸>에는 신중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로는 나디아 무라드 외에 제나 크라제스키가 이름을 올렸는데, 이 책이 영어로 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뉴욕에 기반을 둔 저널리스트인 크라제스키의 역할이 결코 작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크라제스키는 쿠르드족 관련 글을 다수 발표했으며 이집트 혁명을 취재하기도 했다.
2부에 이르면 야지드의 남자들을 죽이는 총성이 계속 울리기 시작한다. 이슬람국가는 여자들을 한데 모아두었다. 무라드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고, 그 일을 아직도 후회한다. 식사를 마친 뒤 무장병들은 결혼한 여자와 나이 많은 여자들, 미혼의 여자들을 구분지었다. 무라드를 포함한 젊은 여자들은 이동하는 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그 사실을 지휘관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말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너희는 선택권이 없다. ‘사비야’가 되려고 여기 왔고, 내 지시에 따라야 한다.” 사비야. 성 노예로 사고파는 젊은 여인. “그들에 따르면 야지디 여자들은 이교도로 간주한다. 따라서 노예를 강간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는 게 이슬람국가의 쿠란 해석이었다. 우린 신병 조직원을 유인하는 데 쓰이거나 충성과 선행의 보상으로 주어질 터였다.”
성 노예는 일부 대원의 일탈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병 모집을 위한 선전물에는 사비야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며, 노예가 성교에 적합하다면 사춘기 이전이어도 성교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결혼’이라고 부르는 계약이 법원에서 이루어지면, 어느 남자의 소유물인지가 공식적으로 인정된다. 무라드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벌을 받았다. 경비병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것이 그 벌이었다. 여기서 더 자세히 말해야 할까. <더 라스트 걸>은 피해를 축소하거나 괜찮은 척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일을 볼거리로 만들지도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노예가 된 야지디 여자들의 탈출은 그들을 모술의 여자들과 똑같이 입히기로 한 이슬람국가의 어리석음 덕분에 가능했다. 일단 검은 아바야와 니캅을 쓰면 야지디 여자도 모술 여자와 똑같이 보였다. 도망가는 중인지 장을 보러 가는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최근 부활절 테러로 큰 피해를 당한 스리랑카에서는 안전을 위해 히잡 착용 금지령이 떨어졌다는 점과 연결지어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무엇이 여성들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주는가? <더 라스트 걸>은 성폭력 생존자의 증언을 통해, 가해자를 고발하고 연대를 요구하는 일이 다른 피해자 구제를 위해 중요함을 역설한다. 나디아 무라드는 그렇게 자신을 구했고, 다른 여성들을 구했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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