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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5.17 06:01 수정 : 2019.05.17 19:46

디지털 중독 시대의 ‘읽기’ 다뤄
종이책만 편드는 건 이미 불가능
스크린 읽기·종이책 읽기 겸하려면
‘천천히 읽기’ ‘다시 읽기’ 중요해

다시, 책으로-순간접속의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
매리언 울프 지음, 전병근 옮김/어크로스·1만6000원

“친애하는 좋은 독자 여러분, 천천히 서둘러, 집으로 오세요.” 당신이 <다시, 책으로>의 마지막 문장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부터 큰 영감과 깨달음을 얻으리라. 하지만 이런 책들이 대체로 그렇듯, 정말 <다시, 책으로>가 필요한 많은 (젊은) 독자는 이 책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공산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이 성장기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일독을 권하고 싶다. 타인의 삶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바꿀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성인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인지신경학자이자 아동발달학자인 매리언 울프가 2018년에 출간한 책 <다시, 책으로>는 0~8살 아동의 디지털 기기 접근율이 75%로 상승한 시대의 읽기를 다룬다. 성인 역시 디지털 중독에 시달리는 오늘날 아동청소년만을 근심하는 책인 것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이 지닌 고민의 방향성은 분명하다. “뇌가 주의를 사로잡는 것들 사이를 옮겨 다니는 일은 생물학적인 의미에서나 문화적인 의미에서 성인에게는 약한 호우 같은 것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퍼펙트 스톰에 해당합니다.” 주의가 산만한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를 쥐여주면 조용해지는데, 그것은 ‘집중’이 아닌 자극을 찾는 ‘주의산만’이라는 뜻이다.

<다시, 책으로>는 0~8살 아동의 디지털 기기 접근율이 75%로 상승한 시대의 읽기를 다룬다. 스크린 읽기와 종이책 읽기를 겸할 수 있으려면 천천히 읽기, 다시 읽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울프는 <다시, 책으로>를 아홉 통의 편지 형식으로 썼다. 책을 읽는 동안 뇌에서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가를 자세히 알려준 뒤, 종이책 읽기와 화면 읽기를 비교하고, 화면 읽기의 특징과 문제점, 디지털이 키우는 요즘 아이들에 대해 논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어떻게 읽기를 가르칠지까지를 다룬다. 이중 두 번째 편지는 읽을 때의 뇌를 설명하는데, 잘 읽히지 않는다면 한번 의식적으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천천히 읽어볼 만하다. 왜냐하면 그 뒷부분에 바로, 스크린에 익숙해진 독자들의 읽기 패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 등장하는데, 그 핵심적인 방식이 ‘훑어보기’이므로. 이해가 가지 않는 글을 이해를 했는지 못했는지도 생각 않고 그냥 쓱 읽고 다음 장으로 넘기는 식의 읽기다. 정보 과학과 읽기를 연구하는 지밍 리우의 연구가 여기 등장하는데, “리우와 안구 운동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디지털로 읽을 때는 흔히 에프(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텍스트상의 ‘단어 스팟’(흔히 스크린의 왼쪽에 있습니다)을 재빨리 훑어 맥락부터 파악한 다음, 맨끝의 결론으로 돌진했다가, 가끔은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세부 내용을 골라 보기 위해 본문으로 되돌아가곤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순차적으로 읽지 않고 눈동자는 글의 처음과 끝을 보고 결론을 유추한 뒤 중간의 관련 자료를 찾듯이 읽는다는 것이다. 그렇게만 읽어도 충분히 이해된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최근 한국 언론에도 자주 소개되는 프린트로 읽기와 스크린으로 읽기의 차이를 보여주는 실험들이 있다. 십대 학생들이 좋아할 만하다고 연구진이 판단한 단편소설(성적 욕망으로 가득한 프랑스 연애 소설)을 읽고 질문에 답하게 했다. 학생들의 절반은 전자책으로, 나머지 절반은 종이책으로 읽었다. 그 결과 종이책으로 읽은 학생들은 스크린으로 읽은 학생들보다 줄거리를 시간 순으로 재구성하는 능력에서 더 뛰어났다.

여기서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인간은 읽는 능력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울프는 문해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가장 중요한 후천적 성취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하는데, 읽기를 통해 인류의 두뇌에 완전히 새로운 회로가 추가되었다는 말이다. 그 결과 인간 사고의 본질에 변화가 일어났다. 읽기의 방식이 바뀐다는 것은 그렇게 후천적으로 얻어낸 능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뜻이며, 그 여파는 읽기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타임>이 20대의 미디어 사용 습관을 조사한 결과, 정보를 얻는 매체를 전환하는 빈도가 시간당 27회라고 한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횟수는 하루 평균 150~190회에 이른다. (참고로, 아이폰에서는 ‘스크린 타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지난 1주일간 하루 평균 7시간26분을 스마트폰을 보는 데 썼으며 ‘화면 깨우기’는 하루 평균 147번 한다.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보다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시간을 스마트폰에 쓴다는 말이다.)

보고 듣는 것은 언제나 너무 많고, 우리는 과다한 정보에 익숙하며, 더 많은 정보를 추구한다. 이 모든 일의 결과, 문학 수업을 이끄는 대학 교수들은 장편 소설이 아닌 단편 소설을 수업 교재로 쓰는 경향이 늘었다는 말도 책에 등장한다. 학생들이 긴 소설을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체 길이만이 문제는 아니다. 긴 문장을 쓰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한탄이다. ‘요즘 학생’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울프 자신도 삶에서 종이책이 사라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아, 한때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저는 텍스트를 조금 천천히 읽어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매일 기가바이트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빠른 속도에 익숙해진 탓에 헤세의 메시지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던 거지요.”

매리언 울프는 디지털 중독 시대에 스크린 읽기와 종이책 읽기를 겸할 수 있으려면 천천히 읽기, 다시 읽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가짜뉴스의 확산 메커니즘도 이 연장선에서 파악할 수 있다. “허구에서 진실을 가려내려면 시간과 정보 이해력, 열린 마음이 필요한데 주의가 분산된, 양극화된 문화에서는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곧바로 공유하고 싶어한다. 바로 그 점이 조작을 쉽게 한다.”

울프는 종이책과 스크린 사이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종이책의 편을 들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이젠 마치 양손을 다 사용할 수 있는 사람처럼 스크린 읽기와 종이책 읽기를 겸할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의 외부 플랫폼과 내부 플랫폼이 둘 다 중요하다. 외부 플랫폼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내부 플랫폼이 잘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종이책 읽기, 천천히 읽기, 다시 읽기가 중요하고 유효하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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