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31 06:02
수정 : 2019.05.31 19:51
‘가상현실’의 아버지 재런 러니어
타인의 행동 조종 알고리즘 분석
“진실한 삶 살려면 SNS계정 삭제”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실리콘밸리 구루가 말하는 사회관계망 시대의 지적 무기재런 러니어 지음, 신동숙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어떤 서비스가 무료라면, 당신은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다”라는 말이 있다. 소셜미디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무료로 사용하는 대신, 당신은 당신이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어떤 식으로 당신의 관심사를 조종하는 게 가능한지(당신이 고양이 이미지를 본 뒤 어떤 물건 광고를 노출시켜야 구매율을 높일 수 있을까?), 어떤 ‘싸움판’을 더 자주 노출해야 당신이 소셜미디어에 더 오랜 시간 머무는지 등의 정보를 돈 한푼 받지 않고, 당신의 시간을 할애해 소셜미디어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재런 러니어는 소셜미디어가 유료서비스가 되기 전에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무료 서비스란, “우리가 당신을 감시할 수 있게 해주면 대신 당신은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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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과학자 재런 러니어는 덜 조종받고, 피해망상을 덜 겪으려면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하라고 한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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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니어는 컴퓨터과학자다. 그는 가상현실(VR)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고안하고 상용화했다. 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를 이용해 가상세계를 탐험하는 첫 프로그램과 그 시스템 안에서 이용자를 대신하는 최초의 ‘아바타’를 개발하고, 의료 수술 시뮬레이션 같은 가상현실 응용 프로그램을 최초로 도입했다. 그는 ‘가상현실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2014년에는 <프로스펙트>와 <포린폴리시>가 공동 선정한 세계 100대 지성으로 꼽혔는데, <지금 당장 당신의 SNS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는 그의 2018년 저작이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면 “구속에서 벗어나고, 더 진실한 삶을 살고, 덜 중독되고, 덜 조종되고, 피해망상을 덜 겪으려면 (…) 이 모든 훌륭한 목표를 이루려면, 소셜미디어 계정을 삭제해야 한다.” 소셜미디어 사용을 줄이라는 다른 많은 책들과 비교했을 때, 이 책은 컴퓨터과학자의 시선으로 해설한다는 데서 내용과 재미에 차이를 보인다.
러니어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비난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타인의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돈을 낼 준비가 된 고객들을 찾는 비즈니스 모델에 이용”되면서 시작된다.
러니어는 사회학자나 심리학자가 아닌 컴퓨터과학자의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불러오는 악영향을 다룬다. 알고리즘이 어떤 식으로 사용자의 행동을 수정하도록 유도하는가를 분석하는데, 그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문제는 소셜미디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제적 거대기업들이 ‘어떤 광고주를 위해’ 알고리즘을 수정하는지를 이용자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정치적으로 좌편향이나 우편향이라는 뜻이 아니다. 러니어의 표현을 빌리면, 소설미디어 알고리즘은 중독과 조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 즉 “아래쪽을 향해 있다.” 러시아 정보기관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개입해서 사회 분열을 조장하려 했을 때 그에 연루된 글로벌 정보통신(IT) 기업의 변호사들은 광고주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특히 ‘논점3-소셜미디어는 당신을 꼴통으로 만들고 있다’가 흥미로운데, 도널드 트럼프가 트위터 중독자가 되면서 성격이 바뀌었다는 분석, 나아가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에 반복해 휘말리면서 “당신도 꼴통이 된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들려주고 있다. ‘논점8-소셜미디어는 당신의 경제적 존엄을 바라지 않는다’는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정보로 인해 직업을 잃게 될 미래에 대해 논한다.
이 책은 ‘더 잘’ 소셜미디어를 사용하기 위해, 덜 잃고 더 얻기 위해 살펴야 할 논쟁적 지점들을 다루는 책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남는다. 소셜미디어가 있기 전의 당신은 구속되지 않고, 진실한 삶을 살았고, 중독되지 않았고, 조종되지 않았나? 중독의 문제는 소셜미디어만의 문제는 아니며, 밀레니얼세대는 소셜미디어가 ‘있는’ 세상만을 알고 있다. 80년대부터 산업에 있었던 ‘구루’에게 이 이상의 논의는 기대하기 힘든 것일까. 다만 “실리콘밸리 아이들 상당수가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는데,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자기기의 사용을 금한다”는 (이런 유의 책에서 항상 등장하는) 말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사용 제한 시간을 늘려서 안 좋을 것은 없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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