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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4 05:59 수정 : 2019.06.14 19:45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막스 에른스트 지음, 이두희 옮김/이모션북스·1만9000원

“축제는 나뭇가지에 팔찌처럼 매달려 있다.” “프로메테우스.” “백 개의 머리를 가진(머리가 없는) 여인은 귀족적인 옷소매를 연다.” “이 원숭이는 혹시 가톨릭인 걸까?” “마음의 동요여, 나의 누이여, 백 개의 머리를 가진(머리가 없는) 여인이여.”

수수께끼 같은 이 문장들은 각각 위에 놓인 그림의 설명이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이어지는 이야기다. 신비롭고 어두운 기운의 동판화 그림은 꿈과 현실을 콜라주한 것처럼 낯설고 기괴하면서도 유심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20세기 초 유행했던 대중소설 삽화와 박물도감, 상품 카탈로그 등을 오리고 다시 붙이는 작업으로 실제 ‘콜라주’해 완성한 이 도판 147개는 미술 애호가들이라면 눈치챌 수도 있다.

작가의 고전적 개념인 ‘오리지널리티’를 지우기 위해 기성의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콜라주’를 하나의 예술적 과정으로 정립한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이론가였던 막스 에른스트의 1929년 작품이다. 에른스트는 이 작품에서 이미지뿐 아니라 서사의 콜라주까지 도전한다. 각각 도판 아래 적힌 위의 문장들은 처음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이루지만 통상적인 내러티브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어떤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암시하는 첫 문장의 그림과 “끝 그리고 계속”이라고 끝나는 마지막 문장의 그림이 같은 것도 영원히 끝나지 않는 서사라는 걸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몇 가지 단서들로 어렴풋한 이야기를 유추해보면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 즉 도판마다 다른 머리(얼굴)로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은 작가의 누이. 새인간 ‘로프로프’는 에른스트가 다른 작품 속에서도 줄곧 표현했던 자기 자신이다. 이 괴상한 새인간 로프로프가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을 위해 소동을 일으키고, 이 소동은 파국으로 발전하며, 마지막에 이르러 여성은 남자들의 눈을 도려내고, 모든 것은 비밀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이러한 선형적인 이해를 거부하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을 터.

이 책의 서문을 쓴 시인 앙드레 브르통은 “우리가 고대하는 것은 (…) 인쇄 잉크와 활자 이외에는 어느 것도 다른 책과 공통된 것을 갖지 않으려 하는 기괴한 한 권의 책이었다”면서 “결국 고대하고 있던 것은 요컨대 <백 개의 머리를 가진 여인>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 책이 “모든 거실들이 ‘호수 아래로 가라앉고’, 거기에 이걸 강조해야 하는데, 이 고기들의 광택, 그 금박을 입힌 별들, 그 수초들의 무용, 그 물밑의 바닥과 그 반영의 장식 등이 명백해지는” “우리 시대의 그림책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에른스트의 이야기만큼 난해하지만 당시 초현실주의 그룹이 추구했던 예술세계와 일탈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글이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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