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 철학 전공 교수 클라우스 피베크
‘논리학’ 토대로 ‘법철학’ 재해석 하며
사회주의·시장자유주의자의 ‘자유’ 비판
“주체들 상호인정 과정이 자유 실현 과정”
자유란 무엇인가-헤겔 법철학과 현대클라우스 피베크 지음, 정대성 옮김/길·4만3000원
장인어른에게 물어봤다. 모두가 평등했다던 동독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지. 장인은 그건 아니라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자유가 없었어.” 삶의 단계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정해줬던 동독에서 가정을 꾸렸고, 통일된 독일에서는 매일 일자리를 찾아다녀야 하는 나의 장인어른은 가끔 동독 시절을 술안줏거리로 삼는다. 향수병에 젖은 눈빛을 담아서. 그러나 동독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 절대로. 동독 사회주의의 이론적 토대인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가 좋은 이념이기는 하지만, 오로지 이념일 뿐이었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나의 장인어른은 일상을 통제했던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져도, 그 자유를 누릴 시간도 없이 내일의 일거리를 생각해야 한다.
동독 사회주의와 통독 이후 신자유주의를 경험한 클라우스 피베크는 <자유란 무엇인가>에서 사회주의와 시장자유주의자들의 자유를 비판한다. 헤겔 <법철학>에 대한 세밀한 주해를 통해서 피베크는 이 양자가 자유를 잘못 해석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자가 시장의 자율성을 철저히 부정하려고 하며, 후자가 삶의 모든 영역을 오직 효율성의 척도로만 파악하려고 한다고 본다. 시장의 자율성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나의 의지, 욕구, 자유가 억압당하고,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나의 자유를 다양하게 전개할 기회를 박탈당한다. 요컨대 그는 이 양자가 자유를 끊임없이 입에 달고 살지만, 자유의 토대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사회주의적 공동재산이라는 환상과 탈규제적, 야만적인 시장구조가 위기의 시대에는 국가사회주의(나치)처럼 우리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지금, 여기”라는 현대를 사유한 최초의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개념적으로 사유한 철학자다. 1828년께 제작된 헤겔의 초상.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
그는 시장질서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시장의 부정적 효과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법치국가와 사회적 국가의 토대를 헤겔이 <법철학>에서 입안했다고 평가한다. 시장의 파괴적인 결과인 물질적 및 정신적 빈곤, 천민, 무법 상태를 저지하는 장치가 바로 사회적 국가이다. 즉 가능한 한 최소한의 통제, 필요한 만큼의 통제를 하는 그 국가만이 현대적인 국가이며, 이성적 공동체라고 한다. 이 속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공적 활동을 하는 시민은 자유의 도야, 자유로운 시민으로의 도야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자유의 사상이라는 닻을 내린 공동체를 함께 형성한다. 이러한 가운데 한 사람의 자유가 아니라, 보편적 자유, 다수 혹은 만인의 자유가 실현된다. 헤겔의 말로 하면 자유 의식이 진보하는 것이다.
헤겔은 “지금, 여기”라는 현대를 사유한 최초의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자유를 개념적으로 사유한 철학자다. 그의 책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있지만,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책이 바로 <법철학>이다. 피베크는 헤겔 <법철학>에 나타난 “자유”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역자가 밝힌 것처럼 “아마도 최초로” 헤겔 <논리학>을 토대로 <법철학> 전체를 재해석한다. 더 나아가 그는 헤겔의 자유 개념을 상호주체적 관점에서 일관되게 해석한다. 자유를 가장 현실적으로 서술하며, 다층적 차원에서 드러내는 헤겔의 <법철학>을 헛간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자유를 “~로부터”라는 실존적 해방의 의미,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멋대로 하는 개인주의적 의미,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본성적인 의미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자유들은 일면적이다. 왜냐하면, 이 자유의 주체에게는 “너”가 없기 때문이다. “너”가 없는 자유는 “가족”, “시민사회”, “국가” 등등의 영역 모두를 배제하는 고립만을 의미할 뿐이다. 자기를 둘러싼 다른 인간, 자연, 세계를 끊임없이 자기 밖으로 밀쳐낸다. 그래서 오로지 자기만 존재하고, 자기만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제 여기서 물어야 한다. 정말로 “너” 없는 고립된 자유가 자유인가를. 나와 너의 상호성, 상호 인정 관계를 토대로 하는 그러한 자유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헤겔은 자유를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머묾”이라고 말한다. 이 자유의 주체는 <법철학>에서 법적 주체, 도덕적 주체, 인륜적 주체로 등장한다. 피베크는 이 주체들이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는 상호주체이며, 바로 여기에 헤겔의 자유 개념의 핵심적인 계기가 놓여 있다고 해석한다. 즉 타자 속에 있으면서 자기가 무엇인지 알고, 알려고 하는 이 주체들의 상호 인정 과정이 자유가 실현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타자들, 즉 물건, 동물, 숲, 인격체, 공동체, 시민사회, 국가 등등과 어떻게 올바르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고찰한다. 지금처럼 자연 파괴, 인간 삶의 황폐화, 생명 경시, 인격성의 파괴, 시민사회 내의 극심한 경쟁, 개별 국가들의 끊임없는 전쟁으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
이회진 전남대 철학과 강사. 이회진 제공
|
통독 이후 항시적 불안에 노출된 노동자이자 시민인 나의 장인어른은 자유를 철학적으로, 개념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여태껏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교육받지도 경험하지도 못했기에. 그러나 나의 장인어른과 그의 친구들은 그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불안을 최소화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생각하는 이 과정이 바로 상호성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를 실현하는 과정이지 않을까?
이회진 전남대 철학과 강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