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14 06:02
수정 : 2019.06.14 19:41
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오소리·수달·사슴·여우·칼새가 돼
지렁이 먹고 이끼 뜯고 쓰레기 뒤져
“다른 존재 포용·소통에 한계 없어”
그럼, 동물이 되어보자찰스 포스터 지음, 정서진 옮김/눌와·1만5800원
찰스 포스터는 수의사와 변호사 자격증, 박사학위를 소지한 영국 옥스퍼드대학 연구원이다.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전문가 자격을 세 개나 가진 그가, 지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자부심과 우월감이 지나치다면 오히려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는 동물과 인간의 인지능력에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고 여겼고, 동물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지렁이를 먹었다. 한 마리 오소리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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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물이 되어보자>는 저자인 찰스 포스터가 동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직접 동물처럼 행동하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소리(왼쪽)와 여우의 탈을 쓴 찰스 포스터. ⓒFelicity McCabe, 눌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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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물이 되어보자>에 등장하는 첫 동물인 ‘오소리’ 편은 ‘지렁이를 입에 넣으면 식도로 기어들어가지 않고 이빨 틈새로 빠져나오려고 한다’는 티엠아이(Too Much Information, ‘너무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뜻)로 시작된다. 지렁이의 맛은 “마치 생산지에 따라 맛이 다른 와인처럼” 지역별로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진다. 프랑스 샤블리와 피카르디, 잉글랜드 월드와 웨일스 지방에 각각 서식하는 지렁이 맛을 그 지역 맛집 얘기하듯 줄줄 읊는 대목에서 잠깐 헛구역질을 했더라도 저자는 십분 이해할 것이나, 그렇다고 독자의 사정을 봐주지는 않을 것이다. 타자로서 동물을 바라보며 묘사하거나 의인화하는 기존 생태문학을 넘어, 실제로 동물이 된 자신의 경험담을 최대한 자세하고 생생하게 기록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탓이다. 다행히 초반의 충격을 벗어나면 저자의 기상천외한 이야기와 자조적인 유머에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
애초 다섯 종의 동물을 선정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고대의 4원소설에 따라 흙, 불, 물, 공기와 각각의 원소를 대표하는 동물을 고른 것인데, “땅에 굴을 파는 오소리와 대지를 달리는 사슴은 흙을 대표하고, 휘황찬란한 도시의 여우는 불을 상징하며, 수달은 물을 나타낸다. 밤에도 상승 온난 기류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잠을 자고 땅에 거의 내려오지 않는 칼새는 공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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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물이 되어보자>는 저자인 찰스 포스터가 동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직접 동물처럼 행동하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소리 탈을 쓴 찰스 포스터. ⓒFelicity McCabe, 눌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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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동물의 신체적 특징이나 생활환경, 먹이와 습성 등을 파악해야 한다. 저자는 생리학, 생물학, 심리학 전문서적을 통해 동물들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탐독하고 서식지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며 관찰과 실험을 병행했다. 지금의 저자에겐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한때 사냥에 열광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사냥은 “진화의 시계를 되감는” 일이고, 도시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퇴화된 감각을 일깨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숲속을 기어다니거나 꼼짝 않고 누워 오랫동안 기다리기, 배설물로 동물 구분하기 등 당시 익힌 사냥기술도 유용하게 써먹었다.
여덟 살 난 아들과 함께 영국 웨일스 블랙산맥에 사는 오소리 부자로 변신한 저자는 깊은 굴을 파서 보금자리를 만든 뒤 “깨물고, 핥고, 구역질하고, 코를 킁킁대고, 어기적거리며” 다녔다. 잠꼬대를 하는 오소리는 무슨 꿈을 꿀까 상상해보고, 시각이 발달한 인간에겐 탁 트인 벌판이 오소리에겐 거대한 ‘냄새의 벽’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수달이 되었을 때는 하루 18시간 잠을 자고 6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사냥하는 수달이 대체 똥을 언제 싸는지 몰라 애를 먹었는데, 관찰과 계산을 통해 물 속에서도 똥을 쌀 거란 결론을 내리고 따라해봤지만 실패했다. 한여름 울창한 숲속에 들어가 사슴처럼 이끼를 뜯어먹고, 도시에 사는 여우가족을 따라 한밤중에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졌다. 칼새가 제일 힘들었다. 영국에서 서아프리카에 이르는 수천㎞를 자동차로 따라갔고 스카이다이빙도 해봤지만 칼새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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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동물이 되어보자>는 저자인 찰스 포스터가 동물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직접 동물처럼 행동하는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사냥에 빠졌던 시절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동물의 삶에 접근한다. ⓒFelicity McCabe, 눌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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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말미에 가서야 저자는 수줍게 고백한다. “나는 이 동물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경계를 지우고 소통하고 싶었으며, 결국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고. 그리고 1장으로 되돌아가 “우리는 계속 시도해야 한다. 서로 친해지기를 포기하는 순간 비참한 인간 혐오자가 되고 만다”는 구절을 다시 읽으면, 유별난 그가 우리 종을 대표해 해낸 충격적인 시도와 엽기적인 행각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저자는 인간이 자신과 얼마나 다른 존재까지 포용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 실은 그 한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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