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1 05:59
수정 : 2019.06.21 19:55
가혹한 노동에 자살·사고로 숨져간
김동준·이민호 등 현장실습생의 삶
가족·학생·교사들 인터뷰로 담아 내
이 아이들이 살고싶은 사회는 어떻게…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돌베개·1만5000원
“야, 이 새끼야. 나도 마시고 싶어서 마시는 거 아니야. 그냥 처마셔. 나도 가고 싶어서 가는 거 아니야.” 열아홉 살 김동준은 씨제이(CJ)제일제당의 진천 육가공 공장에서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던 어느날, 회식 자리에서 2차를 가기 싫다고 했다가 여덟 살 위의 선임에게 폭언을 듣고 뺨을 맞았다. 설 명절 준비로 공장 근무는 하루 열두 시간이나 된다고, 게다가 선임들에게 맞기까지 한다고 어머니, 삼촌들, 담임선생님에게도 말했지만, 김동준 입장에서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 회사 가지 마라. 안 가도 돼”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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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자기 구제로서 죽음을 택한 청소년·청년 노동자가 더 이상 없는 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임진실,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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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작가가 쓰고 임진실 작가가 사진을 찍은 논픽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실제 있었던 김동준의 죽음을 중심으로 현장실습생 제도와 사고 혹은 자살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현장실습생들의 삶을 인터뷰를 통해 담은 책이다. 이 책의 1부는 ‘김동준’, 2부는 ‘김동준들’이라는 제목 아래 엮였다. 1부는 김동준의 자살이 왜, 어떻게 산업재해였으며 그 사실이 인정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2부는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다 사고로 숨진 이민호의 아버지 이상영씨를 비롯해 특성화고 교사,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의 산재 사망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06년과 2011년을 제외한 23년간 1위다. 이 사망자에 특성화고 출신 현장실습생인 청소년부터 20대의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포함되어 있음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뉴스를 통해 알려졌다. 장인을 양성한다는 취지의 특성화고는 그 악화일로의 노동현장 한복판에 있었다. 김기배 노무사의 설명은 이렇다. “마이스터고는 이명박 정권 때 만들어졌는데, 장인을 양성하겠다는 취지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가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학력을 채우지 못하고 하층계급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요.” 마이스터고가 만들어진 원래 뜻대로라면 졸업생들은 학력이 갖고 있는 계급성과 별개로 노동자로 적정 임금을 받고 살아가야 하지만, 한국사회는 그런 곳이 아니다. 현장실습생들은 안전교육도 없이 위험한 현장에 투입됐고, 욕설을 비롯한 비인격적 처우에 노출됐고, 자신의 고통을 공적으로 문제삼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그 결과 사고를 당하거나 자기 구제로서 죽음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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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실,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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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생의 사망이 산재사고임을 입증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김동준의 이모 강수정씨는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학교폭력, 성폭력 예방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조카의 죽음을 접한 직후부터 보도자료를 써서 매일 언론에 알리고, 노무사에게 연락한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이민호의 아버지는 회사에서 7년간 노조 일을 한 경험이 있었다. 다른 말로 하면, 현장실습생으로 일을 하러 간 십대의 가족이 사고나 자살로 갑작스레 사망했을 때, 회사의 조치가 충분했는지, 문제제기를 위해 어떤 방법이 필요한지, 어떤 전문가의 자문을 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수많은 유가족은 회사의 합의 요구에 따르고 말았을 것이다. 특히 자살의 경우가 그렇다. 김기배 노무사는 공론화 대신 합의를 택하는 가족을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개인의 죽음을 사회적인 죽음으로 의미화해 싸우려면 용기가 있어야 하고 담대함이 있어야 하는데, 설령 누군가 그 담대함이 있다면 고맙고 힘써서 같이 바꿔보자 하겠지만, 없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도와드렸어요. 유가족 분들은 조그만 가정을 꾸리던 사람들이니까요.”
앞으로 뭘 어떻게 신경써야 할까. 유한고등학교 3학년 임현지, 공업고등학교 졸업생 서동현(가명),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 이은아, 이천제일고등학교 교사 장윤호씨의 말은 특성화고의 상황과 학생들이 실제 일하는 환경, 그들이 미래에 대해 갖는 전망의 의미를 한층 가까이서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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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실, 돌베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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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생 사고 뉴스를 학생들도 본다. 임현지 학생의 말이다. “제주도 현장실습생 사건이 났을 때(이민호 사망 사고) 선생님은 부당한 일이 있거나 심한 일을 시키면 빠져나오라고, 원래는 현장실습생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면 안 되는 거라고 했어요. 그렇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발생해도 선생님에게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친구들끼리 말했단다. 학생들은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고 다치고 죽는 순간에조차 담임선생님 외에 누구에게 상의를 해야 좋을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견뎌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 일밖에 없을지도 모르니까. “원래 현장실습생은 노동자 겸 학생이었는데 노동자 성격이 없어져버렸어요. 원래는 학생용 표준근로협약서랑 노동자용 근로계약서를 같이 썼어요. 노동자 신분 겸 학생 신분이고 학교 보호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실습생을 위한 표준근로협약서만 쓰니까 20만원을 받아도 학생이라서 괜찮은 거예요.”(이은아 노조위원장)
현장실습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원래 사회는 그런 곳이라고, 좋은 일은 학벌이든 능력이든 더 가진 사람들이 갖는 게 당연한 곳이라고 말하며 성인들이 일하는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 설교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단단히 잘못된 증거가 될 것이다. 약자들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급여를 보장받는 사회는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일하고 싶은 사회, 살고 싶은 사회이리라.
마지막으로, 김동준의 어머니 강석경씨와 이민호의 아버지 이상영씨 글은 천천히 읽으시기를. 사회적 죽음이 너무나 잦은 이 나라에서 타인의 고통을 듣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세를, 은유 작가의 글이 보여준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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