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1 06:02
수정 : 2019.06.21 19:57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
‘아담과 이브’ 이야기 탄생부터
서양 문명사에 끼친 영향력 탐구
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스티븐 그린블랫 지음, 정영목 옮김/까치·2만3000원
기원전 597년 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예루살렘의 작은 왕국 유다를 무너뜨리고 히브리인들을 바빌론으로 보내 노예로 삼았다. 그로부터 10년 뒤 또 한 차례 공격이 있었는데, 상황이 훨씬 심각했다. 히브리인들이 믿는 유일신 여호와의 신전이 무너지고 왕궁이 불탔으며 포위된 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먼저 노예가 된 이들과 함께 바빌로니아의 신 마르두크에게 바치는 까마득히 높은 신전을 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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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라자르 성당의 문에 있는 12세기 이브의 형상은 회개와 도발의 중간에 있는 느낌이다. 기슬레베르투스의 ‘이브의 유혹’, 1130년경. 까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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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정복하면서 히브리인들은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갔고, 그간의 고통과 분노를 가슴에 품은 채 구전되던 여호와 이야기를 집대성한 책을 펴냈다. 이 책들을 통해 히브리인과 예루살렘의 신이던 여호와는 온 세상을 창조한 유일무이한 존재로 거듭났고 아담과 이브는 인류의 조상이 됐다. 기원전 5세기경 편찬된 <모세5경> 중 <토라>에 저 유명한 에덴동산 이야기가 처음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이야기는 이렇다. 하느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들고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어 기쁨의 동산에 살게 했는데, 뱀의 꼬임에 빠진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고 아담에게도 권했다. 하느님은 크게 노했고, 뱀은 땅바닥을 기며 흙을 먹는 형벌을, 여자들은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고 자신을 다스리는 남자를 원하게 되는 형벌을, 남자들은 살아가기 위해 땀 흘려 노동하는 형벌을 받고 동산에서 쫓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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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로 보이는 아름다운 여자가 구경하는 가운데 생명의 불꽃이 하느님의 손가락에서 아담의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1508~1512년. 까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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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의 모든 것>을 펴낸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인문학 교수는 “자유를 주는 동시에 파괴적이며, 인간 책임성에 대한 찬가이자 인간의 사악함에 대한 어두운 우화이고, 과감한 행동에 대한 찬사이자 폭력적 여성혐오 선동”인 이 이야기가 왜 수천년에 걸쳐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탐구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우리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왜 우리는 사랑하는가, 왜 우리는 괴로워하는가 하는 문제들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애초 설계될 때부터 그렇게 광범한 영향력을 가지도록 계획된 듯하다”고 감탄한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전작 <1417년, 근대의 탄생>에서 우연히 위험한 책을 발견한 수도사 이야기로 르네상스의 시작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던 저자는, 이번 책에서 아담과 이브 이야기에 이끌린 사람들의 생애와 그들이 남겨놓은 서양문명사의 의미 있는 장면들을 촘촘히 짚어나간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교의 사상적 토대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이브 이야기가 인간의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소개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과 이브가 실존인물이며 그들이 죄를 지어 낙원에서 추방된 것도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에게도 권한 이브는 인류가 짊어질 모든 죄의 근원으로 지목됐고, 이는 중세 마녀사냥을 비롯해 유구한 여성혐오와 학대의 근거가 됐다. 그린블랫 교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서전 <고백록>을 토대로 그의 유년기와 부모와의 관계, 젊은 날의 방탕한 생활과 신학자가 된 뒤 다른 학파들과 논쟁한 일화 등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왜 성경을 실화로 여기고 유독 아담과 이브에 집착했는지, 그를 기점으로 ‘이브 죽이기’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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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초의 아담과 이브는 그려지고 나서 오랜 뒤인 17세기에 무화과 잎을 얻게 됐는데, 1980년대에야 비로소 제거됐다. 마사초의 ‘추방’, 1424~1428년. 까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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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예술가들은 아담과 이브를 뼈와 살이 있고 붉은 피가 흐르는 생생한 인물로 만들었다. 최초의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신체를 가진 이들로 묘사(알브레히트 뒤러 <아담과 이브>)하거나, 수치와 고통, 외로움의 상징(유니우스 바수스의 석관)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425년경 이탈리아 화가 마사초의 프레스코화 <추방>을 보면, 수치심과 비통함에 휩싸여 황급히 낙원을 떠나는 아담과 이브의 얼굴에서 금세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다. 영국 시인 존 밀턴은 문학작품을 통해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한 대표적인 작가다. 그는 <실락원>을 통해 “창세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명령을 전례 없이, 심지어 충격적으로 이행”했는데, 그린블랫 교수는 밀턴의 이 작품이 순결을 최고 덕목으로 삼았던 그의 짧은 결혼생활과 변화무쌍한 생애, 르네상스라는 시대의 산물이라고 분석한다.
18세기에 등장한 계몽주의자들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조목조목 반박하기 시작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아담과 이브는 애초 그들의 자리였던 종교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그런 복귀가 이야기의 매력을 파괴하거나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잃어버린 행복을 향해 돌아가는 꿈을 열어두고 있으며, 문학의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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