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2.22 18:53
수정 : 2006.02.2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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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101가지 철학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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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깝다 이책
철학이라는 단어 앞에서 보이는 반응으로 사람을 나누면 대체로 두 부류다. 지루하고 고리타분하지만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외경을 갖는 부류와, 길흉화복을 예견하는 주역을 연상하며 부박한 호기심을 나타내는 부류. 어쨌건 철학은 지독한 오해와 편견을 받아왔다.
<101가지 철학체험>는 이러한 철학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대한, 작지만 분명한 저항이다. 2003년 6월 첫선을 보인 이 책은 초판 1쇄 3,000부, 8개월 뒤 2쇄 1,000부를 찍고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그렇게 비극적인 운명으로 마감하기엔 지니고 있는 미덕이 너무 매혹적이다. 이 책은, 철학을 가리켜 일상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실제적인 체험이라고 말한다. 철학적 행위 101가지를 일상에서 어떻게 실행할까를 가이드북처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요체는 고정관념을 깨고 상상의 세계에 자신의 존재를 열어놓는 것이다. 저자는 일례로 ‘자기 이름 부르기’를 제시한다. 자기 이름을 닫힌 공간에서 수십 번 반복해 부르면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객관화가 가능해지고 자신을 타자화하는 단계에 이른다. 이를 통해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의 의미와 삶의 외부적 조건이 강제하는 자신의 한계를 이해하게 된다. ‘곧 죽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도 훌륭한 철학적 체험에 속한다. 자신의 죽음의 필연성을 상상하면서 생과 사의 가운데에 서 있다 보면 삶의 가변성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어디 가는 데도 없이 지하철 타기’ ‘오늘 아침에 어디에 있었는지 생각해 내기’ 등 일상 속에서 철학적 환기가 가능한 행위들을 소개한다.
“철학은 거창한 게 아니다. 너무나 평범한 상황들, 너무나 일상적인 몸짓들, 그리고 우리가 끊임없이 수행하는 행위들이 놀랍게도 철학을 낳는 출발점이 되는 경우가 많다”라는 저자 로제 폴 드르와의 말은 이 같은 의도를 충분히 보충 설명하고 있다.
아쉬운 건, 책의 발간과 더불어 의욕적으로 런칭했던 샘터의 ‘거리의 인문학’ 시리즈가, 책의 판매 부진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거리의 인문학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인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과학적 시도를 인문학이라고 부른다면, 인문학이 있어야 할 장소는 반드시 대학이나 연구소의 도서관 서가는 아닐 것”이라는 신념이 기획의 취지임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거리로 나온 인문학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프랑스 현지 언론의 호의적인 서평도 전혀 먹히질 않았다. 그런 외면 속에서 한여름 연탄창고에 처박힌 불쏘시개 같은 운명을 맞이하는 것이다. 비단 샘터가 아니더라도, 출판사가 더 쉬운 수익을 바랄 수 있는 전문 분야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 분야를 런칭했을 때 그에 따른 격려와 보상이 주어진다면 우리 문화의 토양은 얼마나 건강해지겠는가. 쓴맛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샘터는 여전히 인문학이 보통사람들이 지혜롭고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정표라는 걸 확신하고 또 그렇게 되길 희망한다.
김도언/(주)샘터 출판사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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