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6.28 06:01
수정 : 2019.06.28 20:08
200년간 자전거가 바꿔놓은 세계
여성들은 코르셋 벗고 바지 입어
“페달 밟을 때마다 인간의 삶 전진”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한스-에르하르트 레싱 지음, 장혜경 옮김/아날로그·1만4000원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하고 2년이 지난 뒤 유럽에선 자전거 열풍이 불었다. 화산재가 유럽까지 날아들어 흉작과 기근이 계속되자 말을 기르긴커녕 잡아먹어야 할 판이었던 것이다. 무관심 속에 사장될 위기였던 독일 발명가 카를 폰 드라이스의 ‘달리는 기계’(드라이지네)가 말을 대체할 교통수단으로 주목받으며 순식간에 최신 유행상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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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불어닥친 자전거 열풍을 짐작케 하는 토머스 위스의 삽화 “벨로시패드 마니아-무슨 일이 일어날지!” 1865년 5월1일자 <하퍼스 위클리>. 미국의회도서관 자료, 아날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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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권이 확립되기 전이라 유럽 곳곳에서 ‘기계 좀 만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신문에 실린 드라이스의 설계도를 참고해 너도나도 자전거를 만들었다.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영국의 마차 제작공 데니스 존슨은 드라이지네를 변형한 ‘퍼데스트리언 커리클’(보행자용 마차)을 출시했고 프랑스에선 ‘벨로시패드’라 통칭되는 다양한 자전거가 등장했다. 주요 이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저먼 호스’, ‘호비 호스’, ‘댄디 호스’라고도 불렸다. 이중 ‘댄디 호스’는 한껏 차려 입은 영국 사교계 청년들이 값비싼 자전거를 뽐내며 타고 다니면서 생긴 이름이다. 귀족과 중산층, 유행에 민감하고 도전정신이 강한 젊은이들이 앞다퉈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 강습소가 생기고 라이더 협회가 결성됐다. 곳곳에서 열리는 자전거 경주대회에서 제조업체들은 새 모델을 선보였고, 인기스타와 프로선수들이 출현했다.
최초의 자전거인 드라이지네는 페달이 없었다. 나무바퀴 두 개를 축으로 연결하고 그 위에 올라탄 채 발로 땅을 구르며 달렸다. 그런데도 우편마차로 4시간 걸리던 곳을 1시간도 안 걸려 도착했다. 물리학자이자 역사학자, 유명한 자전거 애호가인 한스에르하르트 레싱은 자전거 탄생 200주년을 맞아 집필한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에서 인간이 두 발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멀리, 더 빨리 갈 수 있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군 자전거의 기술적 혁신과 진보의 자취를 힘차게 따라간다. 자전거가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 가치관을 얼마나 크게 바꿔 놓았는지를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기사, 광고, 삽화 등을 토대로 생생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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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 세이프티 바이시클 광고. 두 바퀴의 크기가 같고 차체가 낮은 로버 세이프티는 1885년 런던 자전거 박람회 스탠리쇼에서 첫선을 보였고, “세계의 유행을 선도한다”는 광고 속 문구 그대로 남녀노소가 즐기는 세계적인 인기 자전거가 됐다. 아날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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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질주하는 드라이지네를 바라보던 작가 카를 아우구스트 엥겔하르트는 자전거가 몰고올 변화를 이렇게 예측했다. “빌어먹을 드라이지네가 가정과 아내의 의무를 등한시하고 그보다 더한 짓도 저지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많은 거친 여자들이 아마존 복장을 하고서 안장에 앉아 돌아다닐 테지만, 고귀한 숙녀와 아가씨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70년 뒤 그의 불안한 예감은 현실이 됐고 고귀한 숙녀에게 걸었던 마지막 희망도 무너졌다. 귀족 아가씨들이 앞장서서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더니 도심을 지나 교외로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1896년 파리에만 5천명의 여성 라이더들이 있었다. 영국에서는 여성 라이더들이 ‘바지 회의’를 열어서 반바지를 입고 모여 함께 식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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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기록된 여성 자전거 경주는 1868년 11월1일 프랑스 보르도의 한 공원에서 열린 것으로, 4명의 여성이 출전했다. <르몽드 일뤼스트레>는 고드프루아 뒤랑이 그린 삽화와 함께 당시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자료, 아날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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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질주에 겁먹은 이들은 <여성 라이더를 위한 안내서> 같은 교재로 ‘예의범절’을 가르치려 들었다. “숙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외모가 흐트러지거나 흥분해서는 안 된다”거나 “자전거가 고장 나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지나가는 남성의 도움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여성들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1897년 <드라이제나>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한 숙녀가 무례하게 공격하는 남성을 만났다. 그러자 단호하게 자전거에서 뛰어내려 개 채찍으로 몇 번 휘갈긴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 자전거 안장에 오른 여성들은 코르셋을 벗고 ‘니커보커스’나 ‘블루머’ 같은 바지를 만들어 입고는 자유의 페달을 힘껏 밟았다. 미국의 여성 라이더들은 여성참정권이라는 평등의 깃발까지 그대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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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 미국의 리비 밀리가 디자인한 것을 지인인 아멜리아 블루머가 신문에 홍보하면서 ‘블루머’라 불리게 된 바지. 당시엔 조롱의 대상이었으나 여성들이 자전거를 타면서 다시 주목받고 널리 보급됐다. 아날로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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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자전거를 사기 시작하자 사치품과 보석, 피아노가 안 팔렸다. 마차와 달리 자전거에선 담배를 피울 수 없으니 담배 매출이 급감했고, 술 대신 코카콜라가 인기였다. 교외 음식점과 호텔이 북적이는 반면 도심의 공연장과 서점은 한산했다. 자전거가 달리면서 산업과 경제가 바뀌었다. 사람과 세상이 변했다. 지난 200년간 “페달을 밟을 때마다 인간의 삶도 앞으로 나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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