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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2 21:39 수정 : 2005.12.23 15:12

공지영·쓰지 히토나리 <사랑 후에 오는 것들>

한국 여자 ‘홍이’와 일본 남자 ‘준고’ 각각의 입장에서 따로 또 같이 써내려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 그들처럼 두 나라도 화해의 손 맞잡길…

<한겨레>에 연재했던 공지영씨와 쓰지 히토나리의 한·일 합동 소설 ‘먼 하늘 가까운 바다’가 책으로 묶여 나왔다. 공지영 편과 쓰지 편 두 권으로 나왔는데, 제목은 <사랑 후에 오는 것들>로 통일했다. 소담출판사 펴냄, 각권 9000원.

<한겨레> 창간 17주년을 기념해 지난 5월 중순부터 연재를 시작한 이 소설은 한·일 젊은이 사이의 사랑을 통해 두 나라 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해방 60주년이자 한·일 수교 40주년을 맞아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로 선포된 것과도 보조를 맞추고자 했다.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 무엇보다 두 작가의 문학적 경계를 넘어 ‘하나’의 소설을 쓴다는 일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두 작가 사이에서 번역과 통역은 물론 일종의 코디네이터(조정자) 구실까지 맡아 했던 일문학자 겸 번역자 김훈아씨의 노고가 컸다. 처음 합동 연재가 기획된 때로부터 연재를 마무리할 때까지 그 이가 작가들과 주고받은 이메일은 무려 1천 통이 넘었다. 특히 다른 연재 관계자들과 떨어져 멀리 프랑스 파리에 머물고 있는 쓰지의 편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일본에 유학 간 한국 여자 ‘홍이’와 일본 청년 ‘준고’ 사이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다루었다. 공지영씨는 홍이의 처지에서, 쓰지는 준고의 입장에서 각각 썼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두 개의 이야기가 탄생한 것이다. 독자들은 취향에 따라 남녀 작가 어느 한쪽의 버전만 읽을 수도 있지만, 양쪽을 비교해 가며 읽을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한 좀 더 풍부하며 입체적인 관점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쓰지, 한국을 애정으로 품다

소설은 작가로서 성공한 준고가 자신의 소설 한국어판 출간에 맞추어 방한하는 2005년 1월의 1주일 동안을 배경 삼는다. 그런데 그 1주일은 홍이와 준고가 일본 도쿄의 이노가시라 공원을 중심으로 나누었던 7년 전의 사랑을 ‘되살게 하는’ 추억의 1주일이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소설을 출간한 출판사 직원이 되어 있는 홍이와 준고는 운명의 부름처럼 재회하게 되며, 당연하게도 지나간 사랑과 이별의 날들을 반추하게 된다. 그 결과는? 죽은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사랑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다. 말하자면 그 1주일은 죽었던 사랑을 ‘되살아나게 하는’ 마법의 1주일이기도 한 것이다. 추억이 마법으로 몸을 바꾼 것.


공지영씨(위)와 일본 작가 쓰지 히토나리(아래).
“눈 아래 펼쳐진 서울의 조감도는 정밀한 반도체 기판, 마치 집적회로 같은 미래 도시를 연상케 한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도시는 훨씬 거대하고 그 중심을 좌우로 흐르는 한강은 에너지를 이동시키는 대동맥 같다.”

“연둣빛 트레이닝복을 한 벌 샀다. 거의 노랑에 가까운 그린빛이다. 퇴근하는 길에 지희랑 종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한 김에 가까운 지하 아케이드를 둘러보다가 그 눈부신 연둣빛을 발견했다.”

앞의 인용은 쓰지의 소설 첫 문장들이고, 뒤엣것은 공지영씨의 첫 문장들이다. 쓰지의 소설 서두에서는 일본 작가인 그가 한국과 한국 사람을 애정 속에 이해하려는 태도가 만져진다. 일본에서 잘나가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많은 팬을 거느린 록커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그가, 자신에게는 불리할 수밖에 없을 과거사의 부담을 안고 한국 작가와 합동작업을 시도한 것 자체가 가상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공지영씨의 서두는 학생운동과 여성문제 등을 주로 다루어 온 이 ‘사회파’ 작가가 새삼 젊고 감성적인 연애소설을 시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공씨는 책 출간에 즈음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서 “나로서는 문학을 처음 공부하던 80년대 초에 습득한 무거운 문학관의 꼬리표를 처음으로 떼어 버린 소설이었다”며 “몸에 밴 습관 탓인지 사랑 얘기보다는 사회적 이슈를 쓰는 게 더 쉽지만, 앞으로도 어깨에 힘을 뺀 사랑 얘기를 더 쓰고 싶다”고 말했다.

공지영, 무거운 문학관을 벗다

공씨의 소설 중후반부쯤에서 홍이는 아버지와 포장마차엘 간다. 홍이의 아버지 역시 젊어서 한때 일본 여성을 사랑한 적이 있었으나 한글학자였던 할아버지의 반대를 핑계로 헤어졌던 아픔을 지니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향해 홍이가 말한다: “나 독립운동 하려고 그 사람하고 헤어진 거 아니야.”

“홍이의 그 대사를 쓰면서 작가인 나 자신 크게 해방감을 느꼈어요. 사랑에 빠진 스물아홉 살짜리 여자애에게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게 얼마나 심각하게 작용하겠어요? 처음 소설을 시작할 때는 두 나라의 역사와 현실을 사랑 얘기 속에 녹여 보자 했었지만, 소설을 쓰면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두 나라의 역사적 상흔은 도쿄 시절 홍이와 준고가 결정적으로 헤어지게 된 싸움의 와중에서 홍이의 입을 통해 거의 유일하게 언급된다. 홍이가 준고더러 잘못을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 “너처럼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는 너희 일본 사람들”을 들먹이는 것이다.

아마도 홍이의 그런 ‘도발’이 준고의 ‘반성’을 촉발한 것일까. 홍이와 헤어지고 난 뒤 준고는 윤동주의 시를 즐겨 읽으며 “(일본과 한국의)역사의 무거운 책장을 넘기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된다. 소설 말미에서 준고는 홍이에게 “내가 잘못했어”라고 말하는데, 그에 대한 홍이의 반응은 “아니, 우리가 잘못했어”라는 것이다. 과거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 못지않게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열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 말에는 담겨 있어 보인다.

한·일 두 나라 작가의 합동 소설은 한국어판이 먼저 선보인 데 이어 내년 초 일본어판 역시 나올 예정이다. 쓰지 소설의 한국어판을 번역했던 김훈아씨가 공지영씨 소설의 일본어판 번역도 맡았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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