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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7.26 06:00 수정 : 2019.07.26 20:02

밤의 이야기꾼들
전건우 지음/네오픽션(2014)

[주원규 추천 공포소설]

우리가 이해하는 한국적 공포란 무엇일까. 한이 서린 여자 귀신이 단골로 등장하는 가부장제의 희생양에서부터 시작해 과도한 입시경쟁으로 피폐해진 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예측불허의 사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상징하는 대규모 단지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까지. 한국적 공포는 주로 폐쇄된 사회 분위기, 빠른 속도의 근대화를 겪으면서 나타난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의 균열 속에 숨어 있다. 그만큼 서늘한 공포를 느끼는 무대가 우리네 일상과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한국인이 느끼는 공포 체험은 익숙하게 맞닿아 있는 일상 속 장소와 인물에서부터 시작하기 마련인데, 그런 맥락에서 한국문학에서 지금은 마이너 장르가 된 미스터리 작가와 그들의 소설이 뽑아내는 서늘한 기운이 종종 한국적 공포의 중심을 파고드는 데 최적화된 기량을 보여주곤 한다. 전건우 작가의 <밤의 이야기꾼들>은 섬세한 문체를 바탕으로 불연속적 리듬으로 전개되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곳곳에 허를 찌르듯 새겨져 있어 가히 한국적 공포의 극점을 찍었다고 봐도 무방한 작품이다.

<밤의 이야기꾼들>은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닌 다섯 가지 이야기가 하나로 연결된 구성을 가진 옴니버스 소설이다. 이야기는 폭우가 쏟아지는 밤, 계곡에서 시작된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곳에서 주인공인 소년은 엄마 아빠를 모두 잃게 된다. 그래도 아이는 꿋꿋이 어른으로 자라 한 출판사에 취직하고, 그곳에서 그가 맡은 첫 번째 임무, 바로 ‘밤의 이야기꾼들’을 취재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주인공은 일 년에 한 번, 폐가에서 벌어지는 기괴하고 섬뜩한 모임에 초대되고, 모임에 초대된 이들은 반드시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흉악스럽게 생긴 난쟁이들에게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가 한 여자의, 자신을 학대하는 남편의 실종과 연결되는 첫 소설 ‘과부들’, 자기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본다는 이유로 자꾸만 성형을 하게 되는 ‘성형중독’에 빠진 한 여자의 이야기인 ‘도플갱어’, 가족의 보금자리를 상징하는 집을 잃게 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집을 지켜내려는 한 가장의 섬뜩한 선택을 그린 이야기 ‘홈 스위트 홈’을 거쳐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따돌림을 받던 여자, 잠시라도 웃지 않으면 아버지에게 모진 매질을 당했기에 언제나 억지웃음을 지어야 했던, 그런데 그 웃음이 친구들에게 혐오의 미끼가 되어버린 ‘웃는 여자’, 마지막으로 눈의 저주를 받아 사랑조차 할 수 없었던 한 여인의 무섭도록 슬픈 이야기 ‘눈의 여왕’까지.

소설가 주원규
책 속 다섯 이야기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나의 또렷한 공통분모를 갖고 전개된다. 바로 오늘의 한국사회에 나타난 부조리와 모순투성이 일상이 이야기 소재라는 점이다. 권위적인 남편,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짓눌려 온 이 땅의 모든 아내와 딸들, 거기에 무겁게 짊어진 가장의 무게, 성형을 강요당하고 왕따를 당해야만 하는 우리 시대 청춘의 끔찍한 성장통까지. <밤의 이야기꾼들>은 사소한 일상의 틈새를 뚫고 섬뜩한 공포의 감각을 들춰내는 본격 공포소설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어딘가 모르게 아슬아슬한 이 여름, 열대야를 식히는 방법으로 한국에 몇 안 되는 공포소설 작가 전건우의 작품을 탐독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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