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09 05:59
수정 : 2019.08.09 20:50
일본 최초의 소녀가극단 ‘다카라즈카’
다카라즈카 교훈 ‘맑게, 바르게, 아름답게’
제국주의와 결합한 ‘소녀 이미지’ 추적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소녀가극이 재현한 제국 통합의 이데올로기 배묘정 지음/소나무·2만3000원
가장 대중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 될 수 있을까? 가장 정치적이지 않을 법한 이미지 혹은 예술 작품이 정치적인 선동에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가. 배묘정의 <정치의 가극화, 가극의 정치화>는 1913년 일본 최초로 소녀가극을 선보인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을 통해 일본 근대가 어떻게 ‘소녀’의 이미지를 제국주의와 결합해 대중화했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걸그룹의 기원으로 소녀가극단을 살피는 시각을 제공하며, 동아시아의 가부장제와 교육제도 아래에서 ‘소녀’ 규범이 어떻게 자리 잡는가를 보여준다.
근대 일본에서 창조된 소녀가극은 춤, 노래, 연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중적인 음악극 양식이다. 소녀가극은 여성 단원으로만 구성된 연극이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 역할까지 도맡아 한다. 이전에 여성이 무대에 오르는 일이 금기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녀 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는 것은 ‘사건’이었던 셈이다.
‘소녀’는 만들어진 개념이다. 근대 이전에는 어린아이가 결혼과 동시에 성인이 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사회 전반적인 인식 및 구조의 개편으로 결혼 연령이 늦춰지는데, 사춘기는 이렇게 결혼이 유예된 시기를 분리 지칭하면서 만들어진 용어다. 일본에서 소녀 개념은 19세기 말 메이지 시대, 공교육 제도가 실행되면서 자리 잡았다. 젊은 미혼 여성을 칭하는 ‘아가씨’(무스메·娘) 같은 기존의 호칭과 분리된, 국가에 의해 조직되고 사회화된 존재를 특정한다. 1913년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이 창단된 이후 일본 각지에 수십 개에 달하는 소녀가극단이 난립하며 경쟁했고, 1920년대 이후 일본의 소녀가극단들은 조선과 중국 일대로 활동 범위를 넓혀갔다. 20세기 전반 최고의 신식 오락물이었던 셈인데, 다카라즈카 음악학교의 교훈은 “맑게, 바르게, 아름답게”였다. 생도들은 창립자 고바야시 이치조를 교장선생님이자 아버지로 존경하며 모범적인 딸로 성장해 배우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데, “이와 같이 규범 교육을 내면화한 소녀 배우들은 청순의 이미지와 결부되는 일이 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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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깃발>은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의 일본·독일·이탈리아 추축국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 작품으로 1941년 제작됐다. 이 작품은 한 독일 중산층 가정의 자매가 히틀러 유겐트에 입단한 뒤 농촌에서 근로 봉사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새로운 깃발> 각본집 표지. 소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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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무해한 이미지. 이것은 탈정치의 영역으로 간과되기 쉽지만 1930년대 이후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이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기관으로 정체성의 일대 전환을 일으키는 과정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정치와 무관해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더 큰 효용을 가진 프로파간다로 작용하는 과정을.
가부키나 유럽 희곡을 번역해 무대에 올리는 신극(新劇) 등과 달리 다카라즈카는 저렴한 요금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민중예술로서의 가극을 목표로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만이 아니었다. 상업적인 소녀가극 양식은 민족주의 계열의 소녀가극을 앞지르며 조선의 오락문화로 자리잡는데, 저자 배묘정은 소녀가극 양식의 초국가적 확산과 일본 제국주의의 통합 이데올로기의 접점을 “‘소녀’라는 근대적인 신체”에서 찾는다. 식민지배를 위해 일찌감치 부설된 철도를 통해 무대 위 소녀의 신체가 광범위한 지역에서 소비될 수 있었으며, 대중들의 욕망과 자본의 논리가 그 밑바탕이 되었다.
이 책의 2부는 1931년 만주사변 발발과 함께 공연이 늘어난 프로파간다 작품들을 분석한다. 각본을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악보를 중심으로 음악적 특징을 보여주는데 이탈리아의 파시즘을 전하는 <이탈리아의 미소>(“이탈리아와 무솔리니 총통을 위해 신체를 봉공한다”), 독일의 나치즘을 하켄크로이츠와 함께 알리는 <새로운 깃발>(“독일에의 봉사야말로 우리들 남자의 우리들 여성의 최고의 권리, 지고의 의무”)에 더해 ‘대동아공영권 시리즈’ 작품들이 무대에 올랐다. 여행이라는 형태로 구현된 식민주의적 욕망(<몽골>), 동양의 구원자로서의 일본(<북경>) 등이 소녀들의 노래와 춤, 연기로 선보였다. 배우들의 국적이 다양하게 꾸려지는 일도 있었으며, 또한 대본이나 노래에 중국어나 조선어가 사용되는 일도 있었다.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에 의해 각색된 조선의 서사 <숙향전>의 한 대목에서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라고 노래하는데, 원래의 <아리랑> 번역이 아니라 새롭게 창작된 <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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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에 즈음하여 일본은 전체주의 국가인 독일·이탈리아와 방공협정을 체결했다.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은 일·독·이 추축국 시리즈 1편인 <이탈리아의 미소>를 협정 체결 다음해인 1941년 초연했다. <이탈리아의 미소> 제4경 “전진” 공연 장면을 촬영한 사진. 소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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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상언어가 부재하던 시기에 국민 또는 국가라는 근대적인 공동체 형식이 “신체적 감각의 공유”로부터 끌려 나온다고 주장한다.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의 몸이 보존해야 할 대상이었다면 메이지 이후의 신체란 운동과 단련(국민체조, 신체검사, 체력장 제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엄격한 규율 속에 배우로 성장하는 다카라즈카 소녀 생도들은 춤추는 신체, 노래하는 신체에서 1930년대 전쟁 본격화와 맞물려 행진하는 신체로 무대에서 구현되었다. 언어적 텍스트는 물론 무대의 요소들이 빚어내는 환상적 효과, 명랑한 정서, 행진곡 리듬 등은 정치의 가극화 혹은 가극의 정치화를 이루어냈다. 탈정치의 영역으로 보이는 대상을 동원해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전파한다.
과거의 사례 연구로 오싹한 동시에, 현재 이러한 프로파간다가 된 매체가 무엇일지 생각하게 하는 저작으로, 배묘정의 2018년 8월 문학박사 학위 논문을 거의 그대로 출판했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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