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리뷰’ 실린 작가 인터뷰 발췌
왜 글을 쓰는지, 작가의 삶 어떤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답은 천차만별
작품·작가의 세계관 필연적으로 닮아
작가라서-303명의 거장, 34개의 질문, 그리고 919개의 아이디어 파리 리뷰 엮음, 김율희 옮김/다른·2만6500원
불완전한 것, 예상치 못한 것, 기묘한 것을 세상에 내놓는 이를 작가라 부른다. <파리 리뷰>는 작가를 그렇게 정의하며 자신들도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파리 리뷰>는 미국의 저명한 문학계간지다. 1953년 봄 파리에서 창간되었는데(1973년 뉴욕으로 본사를 옮겼다), 잭 케루악, 비디아다르 네이폴, 필립 로스, 이탈로 칼비노, 네이딘 고디머를 비롯한 작가들의 작품을 게재해왔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문학지답게 <파리 리뷰>는 20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의 현대 작가들의 시와 소설, 그리고 인터뷰로 명망이 높은데, <작가라서>는 1989년까지의 작가 인터뷰를 발췌해 엮은 책이다. 이번에 출간된 <작가라서>는 2018년 개정판으로, 추가된 인터뷰는 200여개. 책의 부제를 빌리면 이렇다. “303명의 거장, 34개의 질문, 그리고 919개의 아이디어”.
인터뷰 과정에서 공통된 질문을 피하기는 어렵지만, 1부는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를 묻는다. 왜, 어떻게 글을 쓰십니까? 최고의 독자는 누구이며, 당신에게 편집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책을 즐겨 읽었습니까? 2부에서는 ‘어떻게’ 쓰는지에 대한 자세한 질문이 이어진다. 등장인물은 실제입니까, 가상입니까? 좋은 대화를 쓰는 비결은 무엇이며 술이나 약물이 글에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묻는다. 3부는 ‘작가는 무엇을 쓰는가’라고 해서 전기, 비평, 시나리오, 비소설, 소설, 단편소설, 연극으로 장르를 나누어 답변이 이어진다. 4부는 작가들의 사적인 삶에 대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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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네이딘 고디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잭 케루악, 제임스 엘로이. 사진 한겨레 자료,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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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이 작가가 될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잔혹하게 살해당한 어머니의 죽음(범인을 끝내 찾지 못한)에 대해 <블랙 달리아>라는 소설을 쓰기도 한 제임스 엘로이는 작가의 삶 중 자극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언론을 한평생 겪었다. “많은 기자에게 제가 주립 교도소에 복역했고, 가택침입 전력이 있는 관음증 환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물건을 훔치고 남의 사생활을 엿볼 때보다는 책을 읽을 때가 훨씬 많았다고도 말했어요. 그 내용은 기사로 실리지 않더군요. 와인 한 병을 들고 도서관에 숨어 들어가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보다는 어머니의 죽음, 방탕했던 청소년기, 징역 생활 같은 내용이 훨씬 자극적이기 때문이죠.”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단편을 쓰기도 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매일 밤 국립도서관에 있는 사무실에 가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구판을 꺼내 읽곤 했다. 이른바 ‘활자중독자’였던 작가들도 있다. 백화점 카탈로그(어스킨 콜드웰), 상표나 요리법, 광고, 그리고 매일 뉴욕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전부(트루먼 커포티)를 읽어댄 것이다.
<백년 동안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아는가? 어느날 밤, 친구가 그에게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집을 빌려주었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하숙집으로 돌아가 <변신>의 첫 문장을 읽고는 침대로 쓰러질 뻔했다. 문학사에 가장 유명한 첫 문장 중 하나. “그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불편한 꿈에서 깨어나, 침대에 누운 자신의 몸이 거대한 곤충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충격을 받은 이유는 이랬다. “이런 내용을 써도 된다는 사실을 몰랐구나, 진작 알았다면 오래전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텐데”. 그래서 그는 즉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떻게’ 글을 쓰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천차만별이며 특히 흥미롭다. 유명한 작가의 노하우를 따라 하는 일이 불가능함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각자 아무 말이나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일할 때 필요한 도구로 종이, 담배, 음식, 위스키 약간을 꼽은 윌리엄 포크너, 일기 쓰기를 신봉한다고 고백하는 존 파울스, 일상과 꾸준히 접촉하며 글을 써야 한다는 네이딘 고디머, 양치질이 효과가 좋더라는 조지프 헬러, 아침 동이 트자마자 쓴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금은 그냥 글을 쓰기가 싫습니다”라는 잭 케루악. 400편이 넘는 소설을 쓴 조르주 심농은 소설을 쓰는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쓰기만 했다. 닷새나 엿새가 지나면 견딜 수 없을 지경이 되는데, 자기 소설이 짧은 이유가 그것이란다. “열하루가 지나면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는 소설을 시작하기 전에 앞으로 열하루 동안 약속이 없는지부터 확인한다. 존 어빙의 담당 편집자는 ‘관장 이론’이라는 표현을 만들었는데, 집필을 가능한 한 오래 미루며 글쓰기를 시작하지 ‘않도록’ 꾹 참고 이야기를 비축한다는 뜻이다. 존 어빙은 실제로 <사이더 하우스>를 그렇게 정보수집, 관찰, 연구 이후에 썼다고 한다. “글을 쓸 준비를 마쳤을 때, 저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작가라서>의 4부 ‘작가의 삶은 어떠한가’는 작가에 대한 21세기적 관심사를 (다른 챕터보다) 더 잘 보여준다. 다른 작가들과 친하게 지내는지, 경제적 안정이 장점이라고 생각하는지, 정치적인 작품의 역할은 무엇이며 여성 작가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피부색이 작품에 영향을 미치는지, 초보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는지 등을 묻는다. 프란신 뒤 플레시 그레이는 작가들이 겪는 갈등을 훌륭하게 요약해 표현했다. “우리의 작품이 비옥해지도록 세상과 친밀하게 지내는 동시에, 우리의 창조력을 보호하고자 세상의 접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의견은 다양하다. 작가들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창작을 하고 있고, 어떤 작품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쓰인다. 예후다 아미하이는 “시인이 온실에서 차를 마시는 내용을 쓰더라도, 그 시는 정치를 반영합니다”라고 단언한다.
당신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되고, 책 말미의 작가 색인을 찾아 좋아하는 작가의 말만 골라 읽어도 되며, 목차를 살펴 관심이 가는 주제를 따라가도 된다. 분명한 사실은, ‘작가는 이렇다(혹은 저렇다)’는 일반론으로 묶는 일이 불가능하며, 작가의 작품과 그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닮아 있다는 것이다. 부디 이 책의 독서가 책 속 많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독서로 이어지기를.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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