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8.23 06:01
수정 : 2019.08.24 12:18
하버드 로스쿨 포기하고 야생으로
4개월 만에 숨질 때도 ‘참된 삶’ 고민
“행복은 나눌 때만이 진짜” 말 남겨
야생 속으로-홀로 그 땅을 걸어 존 크라카우어 지음, 이순영 옮김/리리·1만5000원
고결한 이상주의자였을까? 허황된 철부지였을까?
1992년 8월 미국 워싱턴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한 청년이 알래스카의 숲속에 들어가 자급자족의 삶을 살다 시체로 발견되었다. 기사가 나가자 이 청년을 히치하이킹 해줬다는 사람들, 잠시 함께 일을 했다는 사람들의 제보가 잇따랐고, 유명 논픽션 작가는 1년간 이 청년의 여정을 그대로 쫓으며 관련 인물들을 모두 만나 그의 삶을 복원해냈다.
|
|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 <야생 속으로>는 숀 펜 감독의 영화 <인투 더 와일드>(2007)의 원작이 됐다. 사진은 영화 속 장면. 출처 아이엠디비
|
청년은 대학을 갓 졸업한 24살의 크리스 맥캔들리스. 아버지는 항공우주국(나사)의 저명한 공학자 출신으로 성공한 사업가였고, 아들도 어려서부터 수재였다. 에모리 대학에선 만점에 가까운 학점을 받아 미국 대학 우등생들의 모임 가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대학 졸업식 날, 크리스의 입은 귀에 걸렸다. 가족들과의 졸업 축하 식사 자리에서 하버드 로스쿨 진학을 계획 중이고, 한동안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그의 ‘진짜 계획’을 눈치채지 못했다.
가족과 헤어지자마자 그는 이름을 바꾸고, 로스쿨 학비로 가지고 있던 2만4000달러를 기아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자동차를 비롯해 대부분의 물건은 버리고 현금을 불태웠다. 그리고 2년간 히치하이킹을 하며 알래스카를 향해갔다. 노숙과 야영을 하고 중간 중간 임시노동직으로 번 돈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틈틈이 노련한 사냥꾼을 찾아 사냥하고 요리하고 고기를 저장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도착한 알래스카의 숲에서 철저한 야생의 삶에 몸을 내던졌다. 다람쥐와 오리, 거위를 잡아먹고 산 열매를 따 먹으면서 사진을 찍고 일기를 썼다. 10㎏ 남짓한 그의 가방에 든 9권의 책과 카메라, 작은 소총과 칼이 소지품의 전부였다.
|
|
존 크라카우어의 논픽션 <야생 속으로>는 숀 펜 감독의 영화 <인투 더 와일드>(2007)의 원작이 됐다. 사진은 영화 속 장면. 출처 아이엠디비
|
<야생 속으로>는 이 청년이 왜 자신의 기득권과 탄탄한 미래를 버리고 야생으로 들어갔는지를 파헤친다. 어려서부터 자연에 매료된 크리스는 부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톨스토이와 <월든>, <시민불복종>의 저자 데이비드 소로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또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하고 원시 세계를 찬양하는 잭 런던의 책을 탐독했는데, 특히 알래스카와 유콘에서의 삶에 대해 쓴 <야성의 부름>, <늑대개>, <북극의 오디세이> 등을 거듭 읽었다. 고교 시절 주말이면 친구들이 워싱턴의 시내에서 맥주 파티를 벌일 때, 그는 빈민가를 돌면서 노숙인과 성매매 여성들을 만나 음식을 나누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떤 노숙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지내게 하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큰 저택과 요트를 가지고 있었고 유럽 여행과 스키 여행, 크루즈 여행을 즐겼지만, 십대의 크리스는 그걸 매우 불편해했다. 부란 부끄럽고 해로운 것이며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학 때 집중적으로 들은 수업도 기아 문제, 불평등, 인종차별 등에 관한 과목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소 유난한 자기 철학을 가진 청년이었던 크리스로 하여금 가족마저도 등지고 세속을 버리게 만든 계기는 따로 있었다. 권위적이고 성공 지향적인 아버지가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왔다는 걸 알게 되면서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두 명의 아내를 다 속이며 두 가정을 꾸려왔고, 양쪽에서 아이들을 여럿 낳은 사람이었다. 크리스는 아버지가 그러했듯 자신의 계획을 완벽히 숨기고 야생에서의 삶을 차곡차곡 준비해나갔다. 덕분에 아들이 잠시 여행을 간 줄만 알았던 부모가 아들이 사라졌다는 걸 알기까지 몇 달 걸렸다.
|
|
크리스 맥캔들리스가 생전에 머물던 버려진 버스 앞에서 찍은 사진. 리리 제공
|
안타깝게도 대자연 속에서 그의 삶은 4개월 만에 끝이 났다. 그의 일기를 보면, 그는 실수로 독성이 있는 열매를 따 먹고 급격한 건강악화로 점점 기력을 잃게 된다. 더는 사냥이나 수렵채취를 할 수 없게 되면서 굶어 죽어갔다. 하지만 죽는 그 순간까지 책을 읽고 메모를 하고 일기를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진짜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했고 자신의 선택에 한 줌의 후회도 없었다.
미국에서 이 청년의 죽음은 큰 논쟁을 낳았다. 한쪽에선 그의 용기와 이상을 칭송했고, 한쪽에선 위험천만한 치기라고 손가락질했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찍은 그의 얼굴 사진은 해골처럼 말랐지만 눈빛은 영롱하고 미소는 화사했으며 표정은 평온 그 자체였다. 저자는 그가 영웅도 철부지도 아닌 자기 인생의 순례자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말은 “행복은 나눌 때만이 진짜.”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