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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30 06:00 수정 : 2019.08.30 19:57

북한미술과 분단미술
박계리 지음/아트북스·2만2000원

북한에서는 캔버스에 어떤 그림을 그리며 무엇을 아름답다고 여길까? 우리처럼 미술계에도 유행이 있을까? 어떤 미술작품이 좋은 작품인가에 대한 미학적 논쟁도 오고 갈까? ‘아이스크림’과 ‘얼음보숭이’ 혹은 ‘도넛’과 ‘가락지빵’의 차이만큼 북한 미술과 남한 미술은 어떻게 닮았고, 어떻게 다를까?

국내 최고의 북한 미술 전문가로 알려진 박계리 통일교육원 교수가 펴낸 <북한미술과 분단미술>은 오직 사회주의 혁명의 도구로만 쓰였을 것 같은 북한 미술이 어떻게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고 정권에 따라 어떤 변천을 거쳤는지 보여준다. 물론 북한 사회 초기의 그림과 조소는 철저히 김일성 일가를 우상화하는 데 복무했다. 김일성의 머리 위에 아우라를 줌으로써 영웅처럼 그린 <보천보의 횃불>이나 진지하게 국사를 논하는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그린 <언제나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 등은 노골적인 우상화의 사례다.

리동건의 <언제나 인민을 위한 길에 함께 계시며>는 김일성 사후 강조된 ‘수령영생미술’의 일환으로 제작된 그림이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손을 든 김정일에게 먼저 시선이 가도록 구성했다는 점에서 김정일 시대에 만든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아트북스 제공
정관철의 <보천보의 횃불>(유화, 1948년)은 북한미술계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정관철은 1949년 평양시 미술동맹 선전부장을 거쳐 이후 35년간 조선미술가동맹 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아트북스 제공
그렇다고 북한 미술가들이 정권의 교시에 따라서만 작품 활동을 했던 건 아니다. 김일성 동상을 중심에 둔 유격대원들의 행군을 형상화한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은 탑의 크기와 규모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다, 건립을 반대하던 이들은 ‘반혁명분자’로 찍혀 척결됐다. 조선 시대 사군자를 그릴 때 주로 쓰인 몰골법은 묘사하는 대상의 모양·색감·질감 등을 한 번의 붓질로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기법인데, 이 기법은 ‘봉건사회의 잔재’이기 때문에 쓸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30년 이상의 논쟁을 겪었다. 북한 미술에 사회주의 리얼리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서정적이면서 강렬한 색채로 표현된 정물화와 풍경화들은 다른 서구 미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자기만의 미학으로 눈길을 끈다.

북한 미술가 한상익 전 평양미술대 교수가 그린 <국화>(유화, 53×68㎝, 1985년). 아트북스 제공
탈북화가 선무의 <김정일>(캔버스에 유채, 194×130㎝, 2008)은 나이키와 아디다스 로고가 박힌 제품을 착용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그린 ‘정치 팝’ 작품이다. 선무는 <김일성화>와 <조선의 태양>을 2008년 부산비엔날레에 출품했지만, 주최 측에서 오픈 전날 이 작품들을 철거했다. 아트북스 제공
책은 분단의 트라우마가 남긴 북한 밖의 예술도 조망한다. 탈북화가 선무가 팝아트로 완성시킨 그림 <김정일>과 탈북여성들의 여정을 다룬 임흥순 감독의 영화 <려행> 등은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비디오 아트로 승화시킨 ‘서울 데카당스’ 등은 보안법의 모순을 발랄하게 꼬집는다. 책은 그림, 조소, 비디오, 팝아트, 행위예술까지 망라하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무엇보다 저자의 이데올로기적 편견 없는 사실적이고 담백한 평론이 더욱 그 의미를 더한다.

금강산에 틀어박혀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창작에만 몰두하다 지도부의 눈 밖에 난 한상익 평양미술대 교수, 조선미인대회에서 1등 없는 2등으로 당선된 이력을 가진 유학파 출신으로 김일성의 곁에서 초상화를 그렸던 정온녀 등 북한 화단을 주름잡던 예술가들의 생애와 사랑 이야기도 읽는 재미가 적지 않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ari93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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